우리 시대의 작가 이문열의 역작 중의 역작
인간세계에서 찾는 구원의 길
이문열 최고의 역작! 한국 문학계 초 베스트셀러 1위! 300만 부 독보적 판매!
화려한 수식어를 지닌『사람의 아들』은 1979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책으로 출간되었다. 1970년대 작가가 군대에 입대하기 전 써놓았던 원고를 이후 장편으로 개작하여 출간된 것으로 당시 이문열의 등장은 한국 문단을 깜짝 놀라게 했다. 엄숙주의가 강하던 문학계에 그의 소설은 새로운 문법의 등장과도 같았다.
이문열은 이 책의 출간 의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신의 얘기를 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혹 하더라도 그들은 쑥스러운 듯 수근거려 말했고, 더러는 자기들의 은어로만 얘기했다. 그래서 감히 내가 말했다. 목소리는 떨리고 얼굴은 달아오른다. 그러나 신은 우리의 영원한 주제 중의 하나다.”
출간 당시부터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 책은 초판(1979), 2판(1987), 3판(1993), 출간 25주년 은경축판(2004), 5판(2020)에 이르기까지 40년이 넘은 지금도 독자들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으며 우리 시대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인간 존재의 근원과 그 초월에 관계되는 심각한 주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으면서도, 그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신’ 그리고 예수, 인간에 대하여 고뇌하고 성찰한 구도소설『사람의 아들』은, 자평 타평하듯이 이문열의 문학적 근원이자 회귀점이다.
이문열은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책에 대한 감상을 토로했다. “지금까지『사람의 아들』초판이 내게 주어온 느낌은 고마움이면서도 또한 부끄러움이요 두려움이었다. 고마움은 이 책이 나의 모든 책 중에서 문학 안에서건 문학 바깥에서건 사실상 가장 많은 것을 내게 주었다는 데서 온 것이며, 부끄러움과 두려움은 그런데도 그 책이 내게 주관적으로는 가장 불만스러운 것이었다는 데 온 것이었다.”
이문열은 이번 개정 신판 머리말을 통해『사람의 아들』의 집필 구상이, 열아홉 살 때 억지스레 읽은 날림번역 니체의 책『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였다고 한다. 그 책의 첫장 어딘가 ‘영원한 방랑자’란 말의 각주에 아하스 페르츠란 이름과 딱 두 줄로 그 행적이 나와 있는 것을 보고서『사람의 아들』의 집필은 시작되었다. 이번 개정 신판은 전체적인 내용은 그대로 유지하고 표현이 어색한 것들을 수정하였다. 또한 액자소설이라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바깥 소설과 안쪽 소설의 서체를 달리하였다.
신과 인간에 대한 고뇌는 영원한 숙제다!
지방 소도시 형사계의 남경호 형사. 그는 고시 준비를 한답시고 절간에 틀어박힌 적도 있고, 한때는 글에 미쳐 이 나라의 신춘문예 제도가 있는 신문이란 신문에는 모조리 투고도 했으나, 가난은 그를 그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손쉬운 대로 경찰에 들어왔다가 눌러앉아버린, 하루하루가 특별할 것 없는 생활을 보내던 중 살인사건 하나를 맡는다. 영생기도원에 얼마 전 들어와 숙식하던 민요섭이 뒷산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살해 동기를 알 수 없는 이 사건의 단초를 찾기 위해 남 경사는 민요섭이 다녔던 신학대학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민요섭은 촉망받던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어느 순간 실천신학에 깊이 빠져들면서 급진과 이단으로 교의(敎義)의 근간을 흔들어대며 교수들과 싸우고 학교를 뛰쳐나가 버린다.
남 경사는 어렸을 적 전쟁고아였던 민요섭이 선교사인 알렌 목사에게 입양된 후 알렌 댁의 가정부로 반평생을 보낸 육순의 할머니를 만난다. 민요섭을 돌봐준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민요섭은 알렌 목사가 남겨준 사택도 팔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고, 스스로를 위해서는 양말 한 켤레 속옷 한 장 여분으로 지니는 법이 없었고, 방학이면 고아원에서 무료봉사를 하거나 나환자촌에서 지낼 정도로 착한 아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신학대학을 뛰쳐나간 민요섭은 공사판과 교회를 전전한다. 교회에 나가서는 돈을 쫓는 부조리한 목사와 신앙을 욕하고 싸웠으며, 공사판에서는 일하며 번 돈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도왔다. 어느 하숙집에 기거한 민요섭은 그 집의 고등학생 아들인 조동팔을 만난다. 조동팔은 민요섭을 존경과 믿음으로 쫓아다니며 민요섭이 찾고자 하는 ‘진정한 신과 새로운 신앙’에 대해서 뜻을 같이하게 된다. 민요섭과 조동팔은 가난 없는 세상, 거짓 없는 하나님의 세상, 말씀에 구속받지 않는 신앙을 만들고자 했다.
남 경사는 민요섭의 발자취를 쫓기 위해 대전, 인천 등을 돌아다니며 그가 남겨둔 노트 몇 권을 가져와 읽었다. 남 경사는 노트에 쓰인 소설을 통해 민요섭이 세우고자 했던 새로운 신, 그리고 신앙에 대해서 알아간다.『사람의 아들』은 신의 아들 ‘예수’와 사람의 아들 ‘아하스 페르츠’가 등장하는 액자소설로, 남 경사는 민요섭이 마치 아하스 페르츠와 닮아 있음을 느낀다.
신은 왜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가?
자비롭고 사랑 넘치는 그 신이 맞는가?
야훼가 예언한 바에 따라 동방박사 세 명이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돌아오는 길에 검붉은 별 하나를 보게 된다. 그들은 원인 모를 공포와 전율에 사로잡혔다. 불길하면서도 음험한 유혹의 빛이었다. 그 시각 샴마이학파 율법사 집에서 진정한 사람의 아들 아하스 페르츠가 태어난다.
아하츠 페르츠는 열 살 밖에 안 됐음에도 토라를 거의 암송할 정도였고,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유대에서 제일가는 랍비로 기르고자 했다. 열두 살 되던 해, 아하스 페르츠는 동네 꼬마들이 놀려대는 데도 아랑곳 하지 않는 중년 사내 테도스를 만난다. 굶주려 보이는 그에게 빵과 고기를 건네주며 아하스 페르츠는 테도스가 자신을 메시아라고 떠벌리며 다녀서 아이들이 놀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테도스는 아하스 페르츠에게 “네가 한줄도 빼놓지 않고 외우고 있는 토라의 말씀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 것 같니?”라고 묻는다. 그러면서 테도스는 아하스 페르츠를 빈민가와 지하감옥, 처형장을 데리고 다니며 배고픔에 굶주린 사람들, 고통에 힘겨워하는 사람들, 신을 애타게 찾지만 도와주지 않아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며, 지금 이 순간도 수천수만의 많은 사람들이 말씀의 미신에 젖은 채 고통 속에 헛되이 죽어가고 있다, 라고 말한다. 열두 살의 나이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었다.
열여덟 살의 아하스 페르츠는 육신도, 지식도 완전히 성숙해 있었다. 그는 욕망에 눈 떠 아삽이라는 동네 부호의 젊은 아내를 유혹하고 스스로 성년의 여러 죄악들에 앞질러 빠져들기도 했다. 어느 날은 아내를 팔아 산 아브라함의 부귀와 형의 축복을 훔친 야곱의 간사한 지혜를 비방하다 돌팔매에 쫓기는가 하면, 다른 날은 이집트의 모든 장자들을 몰살시키고, 수많은 성읍에서 숨 쉬는 것은 모두 없애도록 조상들을 부추긴 야훼의 잔혹을 비꼬다 고발당하기도 했다. 아하스 페르츠 앞에서 늙은 제관들과 은수사들은 머리를 흔들고 탄식하며 물러났고, 뼈대 있는 율법사나 서기관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그렇게도 열렬히 믿고자 했던 신을 끝내 잃어버리게 된 자의 공허감 때문이었을까? 그는 뒷골목의 여인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렸고 거리의 건달들과 피투성이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홀연히 아하스 페르츠는 고향 땅에서 사라져버렸다.
그 뒤 십 년의 세월 동안 아하스 페르츠는 ‘신들의 고향’으로 불리는 이집트를 시작으로 중근동, 바벨로니아, 페르샤, 인도, 다시 서쪽으로 로마를 돌아다니며 ‘참된 신’을 찾고자 세계를 더듬는다. 그러다가 평생 해를 알려고 뚫어져라 해만 봐서, 두 눈의 동자가 타버렸다는 장님의 “정녕 해가 있다면 그것은 당신들이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가진 어떤 추상일 뿐이오.”라는 말에 아하스 페르츠는 크게 느끼는 바가 있었다. 본인 역시 자기가 골몰하여 걸어온 지난 십 년이 그대로 탄식할 만한 헛됨의 세월이었다면, 신을 논리와 지식으로 붙잡으려는 현재의 노력 또한 어리석기 짝이 없는 몸과 마음의 낭비로만 보였다. 마침내 아하스 페르츠는
사람의 아들
이문열
396p



이문열 최고의 역작! 한국 문학계 초 베스트셀러 1위! 300만 부 독보적 판매! 화려한 수식어를 지닌 <사람의 아들>은 1979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책으로 출간되었다. 1970년대 작가가 군대에 입대하기 전 써놓았던 원고를 이후 장편으로 개작하여 출간된 것으로 당시 이문열의 등장은 한국 문단을 깜짝 놀라게 했다. 엄숙주의가 강하던 문학계에 그의 소설은 새로운 문법의 등장과도 같았다. 이문열은 이 책의 출간 의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신의 얘기를 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혹 하더라도 그들은 쑥스러운 듯 수근거려 말했고, 더러는 자기들의 은어로만 얘기했다. 그래서 감히 내가 말했다. 목소리는 떨리고 얼굴은 달아오른다. 그러나 신은 우리의 영원한 주제 중의 하나다." 이문열은 이번 개정 신판 머리말을 통해 <사람의 아들>의 집필 구상이, 열아홉 살 때 억지스레 읽은 날림번역 니체의 책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였다고 한다. 그 책의 첫장 어딘가 '영원한 방랑자'란 말의 각주에 아하스 페르츠란 이름과 딱 두 줄로 그 행적이 나와 있는 것을 보고서 <사람의 아들>의 집필은 시작되었다. 이번 개정 신판은 전체적인 내용은 그대로 유지하고 표현이 어색한 것들을 수정하였다. 또한 액자소설이라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바깥 소설과 안쪽 소설의 서체를 달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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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신성은 언제나 당신들의 머리 위에서 빛날 것이오." 신앙과 종교에 대한 질문에 7080 형사물의 외피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그리고 고대 서아시아 신화세계를 접목한다는 놀라운 기획. 처음 읽은 뒤로 거의 칠팔 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사람의 아들>만큼 흥미로운 한국 장르소설을 찾지 못했다. 이 소설이 주요한 장르적 장치들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소설이 지니는 가장 큰 강점은 아무래도 지나칠 정도로 사변적이라는 점이다. 히타이트, 바빌로니아, 조로아스터교에 이르기까지, 잊힌 고대 신격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대목은 오만해보일 정도로 현학적이다. 그러나 소설 속의 소설이라는 장치라는 점에서는 너무도 적절하다. 과시적이면서 동시에 겸손하게 문장을 운영하는 방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옛 하나님과 그 교회로 돌아가기 위해서였소. 여자와 노예들의 종교, 그 독선의 말씀과 피학의 열정 속으로...... 쓸쓸하고 두렵다는 거였소. 웃지 않고 성내지 않는 우리의 신, 기뻐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으며, 꾸짖지도 않고 칭찬하지도 않는 우리의 신 - 그 신에게 이제 지쳤다는 거요. 선악의 관념이나 가치판단에서 유리된 행위. 징벌 없는 악과 보상없는 선도 마찬가지로 공허하다는 거였소." - 김동욱의 민요섭 살해의 변 가운데 꿈에서 깨어나는 결말도 상당히 좋다. 안쪽과 바깥쪽에서 서로 겹치던 이야기는 굉장히 투박하고 다소 무성의해보이기까지하는 통속적 독백으로 마무리된다. 그럼에도 시종일관 지속되온 작품의 흐름은 마지막에 와서 마침내 독자를 관통한다.
더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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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이 맞서는 참을 수 없는 신의 가벼움
힁숭
3.5
무교지만 (어쩌면 무교이기 때문에 더 사심없이) 재밌게 읽은 책 성서의 규율에 얽혀 굴레를 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결국 인간의 한계이자 본성일까? 영혼의 자유를 구하는 것은 오만이며, 신이 인간을 대할 때 독선적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그런 생각이 독선이었다는 결말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아래부터 스포) 결말은 아하스 페르츠-민요섭과 조동팔-의 패배다. 씁쓸하지만 결국 사람에게는 신이 필요하다. 구원을 주는 신, 용서를 주는 신은 물론 심지어는 부패를 눈감아주는 신이나 자신에게 잔혹한 심판과 징벌을 내리는 신까지도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선악을 가르지 않고 천국과 지옥을 가르지 않는 신이나 사람에게 온전한 자유만을 주는 신, 간섭하지 않는 신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속박이 아닌 자유를 주는 신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너희의 선과 지혜로 알아서 하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두려움만 일깨울 뿐이다. 아무리 교리의 부당함에 방황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인간들만의 논리를 펼쳐보아도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채로 스스로 자처해서 속고 만다. 진짜라고 생각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어서 믿는 것. 믿을 수 밖에 없어서 믿는 것이다. 신을 저버린 조동팔은 결국 여성을 폭행하고, 절도, 강도, 아내에게 자신을 죽이도록 하고, 손수 살인까지 하게 되었다. 신의 품 속과 품 밖을 두고 고뇌하던 민요섭은 결국 가장 가까이 지내던 이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되었다. 조동팔과 민요섭의 마지막 순간에 그들이 떠올린 신은 서로 다른 신이었겠지만 두 사람이 마지막까지 구했던 어떤 도덕률만큼은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팥빠진금붕어
4.5
이 책을 읽고 20년 넘도록 모태신앙으로 남아있지만 성경 한번 들춰보지 않던 내가, 이번에 성경책을 새로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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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종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다 읽고 느낀 건 민요섭과 조동필에게 꼭 “신”이 필요했을까?
감자나라고구마왕
3.5
잘 가다가 브레이크를 밟으시면 이야기가 넘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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