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후 8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시인 박준, 소설가 최은영 추천
개인이 밟아나간 작품 활동의 궤적을 곧 한국소설의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로 만들어내며 한국문학의 판도를 뒤바꾼 작가 김연수의 신작 장편소설. 삼십 년 가까이 작가생활을 하는 동안 김연수는 에너지와 불안으로 가득한 청춘의 눈빛을 가장 가까이에서 기록하는 한편으로 사랑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며 그만의 지적인 사랑학 개론을 펼쳐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방대한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사실로는 가닿을 수 없는 빈틈에서 개인의 진실을 발견해내는 작업을 해오기도 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후 8년 만에 펴내는 이번 장편소설은 청춘, 사랑, 역사, 개인이라는 그간의 김연수 소설의 핵심 키워드를 모두 아우르는 작품으로, 한국전쟁 이후 급격히 변한 세상 앞에 선 시인 ‘기행’의 삶을 그려낸다. 1930~40년대에 시인으로 이름을 알리다가 전쟁 후 북에서 당의 이념에 맞는 시를 쓰라는 요구를 받으며 러시아문학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는 모습에서 기행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시인 ‘백석’을 모델로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행은 원하는 대로 시를 쓸 수 없는 상황, “희망과 꿈 없이 살아가는 법”(64쪽)을 새롭게 배워야만 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시를 붙들려 하지만 번번이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시를 향한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더라도, 개인을 내리누르는 현실의 무게가 압도적이라면 그 마음은 끝내 좌절되고야 마는 걸까. 속수무책의 현실 앞에서 작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도저히 버려지지 않는 마음,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일곱 해의 마지막』은 이러한 물음을 안고 한 명의 시민이자 작가로서 어두운 한 시절을 통과해온 끝에 마침내 김연수가 내놓은 대답처럼 보인다.
“기행을 매혹시킨 불행이란 흥성하고 눈부셨던 시절,
그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의 결과물이었다.
다시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랑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불행해지는 것쯤이야 두렵지 않아서.”
순하고 여린 것들로 북적대던 아름다운 시절이 끝나고 찾아온 적막
그 세상에서 끝내 버릴 수 없던 어떤 마음과 그 마음이 남긴 몇 줄의 시
1958년 여름, 번역실에 출근한 기행은 한 통의 편지봉투를 받게 된다. 누군가가 먼저 본 듯 뜯겨 있는 그 봉투 안에는 다른 내용 없이 러시아어로 쓰인 시 두 편만이 담겨 있다. 시를 보낸 사람은 러시아 시인 ‘벨라’. 작년 여름 그녀가 조선작가동맹의 초청을 받아 북한에 방문했을 때 기행은 그녀의 시를 번역한 인연으로 통역을 맡았었다. 그리고 그녀가 러시아로 돌아가기 전 기행은 그녀에게 자신이 쓴 시들이 적힌 노트 한 권을 건넸었다. 지금은 아무도 기행을 시인으로 알고 있지 않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만 하더라도 기행은 시집 『사슴』으로 이름을 알린 시인이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세상이 바뀌어버렸고, 북한 문단은 기행에게 당의 이념을 인민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는 문학만을 쓰기를 강요했다. 당이 요구하는 시를 쓰지 않으면 평양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기행은 어떤 시도 써 내지 않는다. 당이 요구하는 시란 기행이 “평생 혼자서 사랑하고 몰두했던”(190쪽) 언어로 이루어진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벨라에게 노트를 건네며 “폐허에 굴러다니는 벽돌 조각들처럼 단어들은 점점 부서지고”(162쪽) 있다고 고백하는 기행에게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 안에서 조선어 단어들이 죽어가고 있다면, 그 죽음에 대해 당신도 책임감을 느껴야만 해요. 날마다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아침저녁으로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러지 않으면 제대로 사는 게 아니에요. 매일매일 죽어가는 단어들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게 시인의 일이에요. 매일매일 세수를 하듯이, 꼬박꼬박.”(165쪽)
그런 만남이 있은 후 기행은 북한에서는 발표할 수 없는 시를 적어 러시아에 있는 벨라에게 보냈던 것인데, 그동안 어떤 회신도 없다가 일 년이 지나 답신이 온 것이었다. 봉투에 러시아 시 두 편만이 담긴 채로. 그 봉투를 먼저 뜯어본 건 누구였을까? 벨라라면 편지도 같이 보냈을 텐데 그건 누가 가져간 걸까? 벨라는 자신이 보낸 노트를 어떻게 했을까? 당의 문예 정책 아래에서 숨죽인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기행의 삶은 벨라에게서 온 그 회신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이루지 못한 꿈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다시 쓰인다
60년 전 그에게서 시작되어 마침내 지금 우리에게 도달한 빛
『일곱 해의 마지막』이 전쟁 이후의 행보가 불확실한 백석의 삶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니지만, 이 소설이 기행이 시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전쟁 전이 아니라 그가 꿈꾸던 것들이 계속 좌절되던 그 공백의 시간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 공백의 시간 동안 “시인으로 기억되지도 못했고,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지도 못했으며, 시골 학교의 선생이 되지도 못”(83쪽)한 그는 실패자와 다름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건 195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기행이라는 한 개인의 삶만 놓고 봤을 때에만 그러하다고, 김연수는 말하는 듯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은 소설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 (…) 이것은 백석이 살아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자, 죽는 순간까지도 그가 마음속에서 놓지 않았던 소망에 대한 이야기다. _‘작가의 말’ 중에서
그러니까, 꿈꾸었으나 이루지 못한 것들, 간절히 원했으나 실현되지 못한 것들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 시대와 개인이라는 조건을 뛰어넘어 “거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 지금이 아닌 먼 미래의 언젠가”(58쪽) 이뤄지기도 한다고 말이다. 그 삶의 공백을 새롭게 채워넣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그러므로 『일곱 해의 마지막』이 1950년대의 기행의 삶에서부터 시작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로 인해 소설 속 인물은 두 가지 방식으로 살게 된다. 한 번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끝내 이루지 못하는 방식으로, 다른 한 번은 자신이 원했던 바로 그 삶의 방식으로. 완결되었다고 여겨진 삶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음으로써 두 번의 삶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계속해서 김연수의 소설에 매혹되는 이유 중 하나임을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으며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