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옮긴이 서문
제1권 역병_ 아킬레우스의 분노
제2권 아가멤논의 꿈_ 함선 목록
제3권 맹약_ 성벽위에서의 관전_ 파리스와 메넬라오스의 결투
제4권 맹약의 위반_ 아가멤논의 열병
제5권 디오메데스의 무훈
제6권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의 만남
제7권 헥토르와 아이아스의 결투_ 시신들의 매장
제8권 전투의 중단
제9권 아킬레우스에게 사절단을 보내다_ 간청
제10권 돌론의 정탐
제11권 아가멤논의 무훈
제12권 방벽을 둘러싸고 싸우다
제13권 함선들을 둘러싸고 싸우다
제14권 제우스가 속임을 당하다
제15권 아카이오이족이 함선들에서 도로 밀려나다
제16권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제17권 메넬라오스의 무훈
제18권 무구 제작
제19권 아가멤논과 화해하는 아킬레우스
제20권 신들의 전투
제21권 강변에서의 전투
제22권 헥토르의 죽음
제23권 파트로클로스를 위한 장례 경기
제24권 몸값을 주고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 받다
<부록>
주석
주요 인명
주요 신명
주요 지명
주요 신들과 영웅들의 가계도
해설 / 호메로스의 작품과 세계
참고문헌
찾아보기
지도
일리아스
호메로스 · 역사/시/소설/인문학
840p



천병희 교수의 그리스 원전 번역의 <일리아스> 개정판이 출간됐다. 이 작품은 그리스 문학이 전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자 유럽 문학의 효시이다. 신의 뜻에 따라 트로이 전쟁을 수행하는 그리스군과 트로이군의 비극적인 운명, 즉 전쟁과 죽음과 삶에 대한 인간의 통찰을 1만 5693행에 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극찬을 받았고 오늘날 읽어도 다양한 비유와 상징, 묘사 등으로 높은 완성도뿐 아니라 그리스 문화의 시원으로까지 평가되는 이 작품은 당시 그리스에서 국민적 서사시로 모든 국민이 암송할 정도였다. 이 길고 긴 이야기가 수백 년 동안 구전되어 오다가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에 의해 집대성된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영향은 그리스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언어와 기법은 유럽 서사시의 모범으로 라틴 문학을 거쳐 유럽 문학, 나아가 유럽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리아스>는 서양 문화 가장 밑바닥에 자리한 작품이며, 이것을 기반으로 그 위에 층층이 쌓아 올린 문화적 재산의 근원으로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정신적 근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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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우
5.0
나 조정현의 아들 조영우가 말하노니, 훌륭한 역자 천병희의 도움을 받아 등장 인물들의 호칭에만 익숙해진다면 정말 멋진 서사시 한편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오. 이 노래가 만들어진지 2500년이 넘었다는 것을 무시하고서라도 말이오. 그리고 이런 말투에도 감동받고 있는 당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오.
머야 고스
읽는 중
영웅들의 뻘짓에 화가 날 때 다들 곧 죽는다는 점을 상기하면 좋다고 한다
홍준영
3.5
인간의 특권. .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역사적 오프닝에는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상륙을 준비하는 병사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부들부들 떨면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린다. 문이 열리고 기관총 세례를 맞은 그들의 시체에서는 문명이라든지 교양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피에 절은 창자가 쏟아지고 절단된 팔다리가 날아다니는 풍경은 차라리 정육점의 지하실을 연상시킨다. 가까스로 해변에 도착한 병사들은 발바닥에 불이 붙은 개처럼 을씨년스럽게 컹컹대면서 네 발로, 세 발로, 가끔은 한 발로 나아간다. 앞으로 가는 길에 마주치는 모든 생명체는 망설임 없이 몰살하면서 그들은 죽음의 해변을 누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땀을 닦던 사냥개는 체코 말로 짖으며 항복하는 짐승을 만난다. 왈왈. 멍멍. 뭐라는 거야. 총알로 그의 머리통을 관통한 사냥개는 피식 웃고 새로운 먹이를 찾아 떠난다. . 전쟁이 인간을 짐승으로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생존이 위협받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본능을 장애물 없이 있는 그대로 표출하기 때문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도 트로이 전쟁을 치르는 영웅들에게서 생각과 행동, 의지와 실천 사이의 괴리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호메로스의 영웅들은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슬프면 울음을 터뜨리며, 기쁘면 술과 고기를 먹으며 깔깔댄다. 그들은 상대를 죽이고 싶으면 눈빛과 목소리에 살의를 담아 포효하고, 상대를 살리고 싶으면 손짓과 말투에 존중을 담고 경의를 표한다. 아득한 옛날, 몸과 마음의 구별 없이 으르렁거렸던 전사들의 모습은 종종 정직하게 동물, 특히 사자에 비유된다. “이들은 산꼭대기 우거진 수풀 속에서 어미가 키운 한 쌍의 사자와도 같았으니, 사자들이 소와 힘센 작은 가축 떼를 약탈하며 사람의 농장을 쑥대밭으로 만들다가 마침내 자신들도 날카로운 청동 때문에 사람 손에 죽어가듯, 꼭 그처럼 이들도 아이네이아스의 손에 죽어 우뚝한 전나무들처럼 쓰러지고 만 것이다.”(5; 554-560) “그 모습은 우거진 수풀에서 사슴 사냥꾼에게 새끼들을 도둑맞은 수염 난 사자와도 같았다. 뒤늦게 온 사자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혹시 어디서 발견하게 될까 하고 사람의 발자국을 찾아 숱한 계곡을 헤매니, 격렬한 분노가 그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18; 318-322) . 하지만 스크린에 전쟁 그 자체를 옮겼다는 찬사를 받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도 인간은 2시간 30분 내내 짐승과 같은 상태에 머물지는 않는다. 풋내기 대학생은 적군의 탱크를 기다리는 동안 동료들에게 샹송 ‘라비앙로즈’를 번역해 준다. 시골 학교의 영어 교사였던 지휘관은 소대원들이 서로에게 권총을 겨누며 윽박지를 때 담담히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수습한다. 그는 자신의 부하를 죽였을 가능성이 큰 독일인 포로를 살려서 돌려보낸다. 라이언 일병은 형제들이 모두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집으로 돌아갈 기회를 거부한다. 함께 싸운 전우들에게 등을 돌리고 전략적 요충지를 버릴 수 없다는 이유다. 스필버그와 마찬가지로 호메로스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에서도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인간성의 향기를 치열하게 포착한다. 목숨을 건 결전을 앞두고 트로이의 헥토르는 집에서 아내와 아들을 포옹한다. “그러나 아이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놀라 소리를 지르며 예쁜 허리띠를 맨 유모의 품속으로 파고들었으니, 청동과 투구의 정수리에서 무시무시하게 흔들리는 말총 장식을 보고 겁을 먹은 탓이다. 그러자 사랑하는 아버지와 존경스러운 어머니가 웃음을 터뜨렸고, 영광스러운 헥토르는 즉시 머리에서 투구를 벗어 두루 번쩍이는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았다.”(6; 467-473) 그리스인들을 죽이던 맹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헥토르는 다정한 아버지가 된다. . 그렇다면 전쟁이 가감 없이 보여주는 동물적 본능에 대비되는, 이 ‘인간다움’이라는 희미한 불빛의 정체는 무엇인가? 호메로스의 답변은 “그건 바로 이성이지!” 따위의 낡고 고루한 답변, 서양 철학사가 수천 년 고수했던 답변으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일리아스’에서 이성의 역할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영웅들에게서 인간적 색채가 드러나는 대목들은 하나같이 생각하는 갈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앞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인간다움이 드러나는 사례로 들었던 대목도 마찬가지다. 전투를 앞두고 샹송을 흥얼거리는 병사의 모습은 객관적 상황 인식과는 거리가 멀다. 적군을 살려서 돌려보내는 지휘관의 선택은 합리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이 할 만한 것이 아니다. 살아서 집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스스로 걷어차는 라이언 일병은 비이성적 행위의 끝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장면들에서 관객은 분명 인간다움이라고 불리는 무언가를 감지하고 감동에 젖는 것이다. . 코기토의 개념 없이 호메로스는 어떻게 인간다움의 조건을 정의하는가? 호메로스는 인간다움의 하한선을 짐승으로 잡고 짐승과의 대비를 통해 인간성을 조명한 방식 그대로, 이번에는 인간다움의 상한선을 신으로 잡고 신과의 대비를 통해 인간성의 정체를 밝힌다. 그리고 이 작업을 통해 호메로스가 생각한 인간다움의 조건은 즉시 도출된다. 의기양양하게 전쟁터에서 영광을 휘두르던 그리스 장수 디오메데스는 트로이 편을 돕던 여신 아프로디테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사정없이 칼을 찔러 넣는다. “제우스의 따님이여! 전쟁과 결전에서 물러나십시오. 연약한 여자들을 속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대가 앞으로도 싸움터를 찾을 작정이라면, 이제부터는 멀리서 전쟁의 소음만 들어도 무서워 떨게 되실 겁니다.”(5; 348-351) 그러나 이를 본 아폴론은 신의 힘으로 디오메데스를 바로 밀쳐내며 이렇게 말한다. “튀데우스의 아들이여! 몸을 사리고 물러가라. 그대는 자신을 감히 신들과 같다고 생각지 마라. 불사신들과 대지 위를 걷는 인간들은 결코 같은 종족이 아니니라.”(5; 440-442) 인간은 신과 같지 않다.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죽는 존재다. 인간은 짐승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아는 존재다. 호메로스는 인간이란 이런 존재라고 단언한다. . 스필버그가 죽음의 현장을 역겨울 정도로 생생하게 보여줄 때 비로소 라이언 일병을 구하러 가는 주인공 일행의 험난한 여정은 깊은 의미를 품는다. 이 병사들이 디즈니 식으로 절벽에서 꺄악 소리를 내며 떨어질 위험을 감수하는 게 아니라, 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손으로 막아가며 어머니를 부르짖다 죽을 위험을 감수한다는 사실이 뚜렷해져야 비로소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는 그들의 임무가 얼마나 용맹하고 아름다우며 ‘인간다운지’ 관객들은 이해할 수 있다. 호메로스가 잔혹한 죽음의 장면들을 세심히 묘사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말들은 채찍을 느끼고 트로이아인들과 아카이오이족 사이로 날랜 전차를 끌고 가며 시신들과 방패들을 짓밟았다. 그리하여 아래쪽의 굴대는 온통 피투성이가 되고 전차 둘레의 난간도 말발굽과 윤철에서 튀어 오르는 핏방울에 역시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다.”(11; 532-537) 살이 찢기는 소리와 걸쭉한 피의 질감이 전달되어야 읽는 이는 전장으로 달려가는 사르페돈의 고귀한 인간성을 더듬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친구여! 만일 우리가 이 싸움을 피함으로써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을 운명이라면 나 자신도 선두 대열에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또 남자의 영광을 높여주는 싸움터로 그대를 등 떠밀지도 않을 것이오. 하나 인간으로서는 면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숱한 죽음의 운명이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고 있으니 자, 나갑시다! 우리가 적에게 명성을 주든 아니면 적이 우리에게 명성을 주든.”(12; 322-328) . 물론 인간은 반드시 죽으며, 인간 자신이 그 점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개인의 일상 차원에서는 철저히 비극일 수밖에 없다. 호메로스는 그를 잊지 않는다. 평범한 읽는 이를 대변하는, 이름 없는 병사들이 죽을 때마다 호메로스는 영화의 플래시백처럼 그의 인생을 요약한다. “다음에 그는 파이놉스의 두 아들 크산토스와 토온을 추격했다. 이들은 둘 다 응석받이인데, 아버지는 비참한 노령으로 쇠약해져 재산을 물려줄 다른 아들을 낳지 못했다. 이제 디오메데스가 이 두 아들들을 죽여 소중한 목숨을 빼앗고 그들의 아버지에게는 애통과 슬픔만 남겨놓았으니, 아버지는 싸움터에서 살아 돌아오는 자식들을 반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재산은 친척들이 나눠 가졌다.”(5; 148-158) “그리하여 그는 가엾게도 결혼한 아내 곁을 멀리 떠나 도성의 백성들을 돕다가 그곳에 쓰러져 청동의 잠을 자게 된 것이다. 그 아내를 위해 그는 재미도 못 보고 구혼 선물만 잔뜩 주었으니, 그는 먼저 소 백 마리를 주었고 다음엔 셀 수 없이 많이 갖고 있던 염소와 양을 합쳐 천 마리를 주기로 약속한 것이다.”(11; 240-247) . 그러나 ‘인류 전체’라는 거대한 개념을 다루는 문학적 차원에서(그리고 영웅들은 이 함축적 세계를 대변한다) 인간이 반드시 죽으며, 인간 자신이 그 점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축복이다. “준족 아킬레우스는 말에게 크게 역정을 내며 말했다. ‘크산토스여! 왜 내게 죽음을 예언하는가? 정말 너답지 않구나.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과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죽을 운명임은 나도 잘 아는 바다. 그렇다 해도 트로이아인들에게 전쟁이라면 신물이 나도록 해주기 전에는 나는 결코 쉬지 않으리라.’ 이렇게 말하고 그는 함성을 지르며 통발굽의 말들을 선두 대열로 몰았다.”(19; 403-424) 죽음이 있어야 인간은 용감해질 수 있다. 죽지 않는 신들은 결코 ‘죽음도 각오할 만큼’ 용감할 수 없지만, 반드시 죽는 인간은 ‘죽음마저도 넘어설 만큼’ 용감할 수 있다. 아킬레우스가 강의 신 스카만드로스와 싸웠듯, 디오메데스가 아프로디테와 아폴론을 찔렀듯 인간은 죽는 존재이기 때문에 신보다 나은 존재일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죽는다는 걸 알기에 짐승과 달리 헥토르처럼 “하지만 내 결코 싸우지도 않고 명성도 없이 죽고 싶지는 않다. 후세 사람들도 들어서 알게 될 큰일을 하고서 죽으리라.”(22; 293-305) 자신의 삶을 죽음에 비추어 완성할 수 있다. 죽는다는 걸 알기에 인간은 신보다도, 짐승보다도 나은 존재다. . 그러나 인간의 조건을 받아들인 자의 덕목이 전쟁터에서의 용기로만 증명되리라는 법은 없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결국 용맹이나 강인함에 대한 예찬이 아니라, 전혀 만난 적도 없는 어떤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험에 거는 고결함, 또는 희생정신에 대한 찬양이다. 만약 아이언맨이 슈트를 입고 라이언 일병을 구하러 간다면 거기에서는 기껏해야 좋은 성품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지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웅적 이타심을 발견할 수는 없다. 관객은 아이언맨이 가는 길에 머리카락 한 올도 다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리아스’에서 신들과 여신들이 그리스와 트로이 진영에 베푸는 도움이 이러한 종류의 행위를 대표한다. 아무것도 잃을 수 없는 불멸의 존재들은 고결한 행위마저 할 수 없는 것이다. 반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주인공들은 차례차례 죽는 과정에서 희생이 무엇인지, 그리고 희생이 얼마나 인간적인 행위인지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 장면이 모두 비석 가득한 묘지를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은, 남을 위하는 행위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언젠가는 죽는 존재이기에 의미를 띤다는 진리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같다. 스필버그는 인간의 특권을 이렇게 요약한다. 인간은 남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존재다. 인간은 자신의 삶이 남의 죽음 위에 서 있음을 알고 삶의 의미를 쟁취할 수 있는(Earn it) 존재다. . 위로는 올림포스의 신들마저 대적하고, 아래로는 사나운 사자처럼 마구 학살을 벌인 아킬레우스는 최대의 숙적 헥토르를 쓰러트린 후에 스필버그의 통찰을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의 삶이 무수한 남의 죽음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한다. 아가멤논이 자신의 전리품이었던 여자를 빼앗자 사방팔방에 성질을 내며 무수한 아군들의 죽음을 초래했던 철부지 아킬레우스는 (그 유명한 첫 구절,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이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1; 1-4)이 말했던 ‘분노’가 바로 이 찌질한 분노다!) 이제 전투에 아무 쓸모 없는 노인에게 전리품을 안겨주는 슬기로운 인격자로 성장한다. 그는 독일인 포로를 돌려보내는 톰 행크스처럼, 아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찾아온 적국의 왕에게 시신과 함께 위로를 건네고 함께 눈물을 흘린다.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가 인간다운 인간이 되면서 끝나는 이야기인 셈이다. . 최초의 문학 작품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리아스’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루고 있다는 점은 뜻깊다. 신과 인간, 영웅과 평민, 전쟁과 평화, 남성과 여성, 분노와 슬픔 등 인류가 앞으로 몇천 년 동안 씨름할 주제들을 모두 미리 제시하면서 호메로스는 이를 관통하는 화두로 삶과 죽음의 관계를 던졌고, 그 관계를 온전히 이해하는 자는 짐승에서 인간으로, 다시 인간에서 신으로 나아갈 수 있는 권능의 열쇠를 손에 쥐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일리아스’는 옷을 벗겨놓으면 돼지와도 구분하기 어렵지만, 신이 아니기에 감히 신이 되고자 하는 오만을 범할 수 있는 인간의 양면성을 밝혀냈다. 이 거대한 발견을 일상의 언어로 소화하면, 하루에 몇만 개의 죽은 세포들을 닦아내면서 천천히 죽음으로 다가가는 나의 문제가 남는다. 소나 말과 다름없이 더러운 배설물들을 매일같이 남기면서도 애써 그를 변기와 상하수도 시설이라는 문명의 이기로 감추려 하는, 스스로 짐승과는 다르다고 여기고자 아등바등 애쓰는 나는 어느 대목에서 인간이라 불릴 만한 존재인가. 나는 어떤 점에서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소개하는가. 언제나처럼 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저 바랄 뿐이다. 자신의 인간성을 입증할 트로이 전쟁이, 아니면 까짓거 제2차 세계대전이 닥쳤을 때 올림포스에서 창을 뽑아 든 나를 위해 천둥을 울려 주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이어서 그가 청동 날이 박힌 날카롭고 단단한 창 두 자루를 집어 드니, 청동이 그에게서 멀리 하늘에까지 비쳤다. 그러자 아테나와 헤라가 크게 천둥을 쳐서 황금이 많은 뮈케네 왕의 명예를 높여주었다.”(9; 43-46) ‘일리아스’는 읽는 이가 인간의 특권을 소중히 사용하고 있는지 질문하는 책이다. . +영화적 기법이 눈에 많이 띈다. 미래 시점에서 폐허가 된 트로이를 보여주다가 다시 “포세이돈과 아폴론은 훗날 이렇게 처리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나 지금은 튼튼하게 쌓은 방벽을 둘러싸고 전투와 함성이 활활 타올랐고, 날아온 무기들에 얻어맞은 탑들의 대들보들이 요란하게 울렸다.”(12; 34-37) 현재 시점의 전쟁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는 ‘오페라의 유령’의 오프닝, 먼지 쌓인 흑백 극장에 색채와 함께 과거의 영광이 돌아오는 장면이 연상될 정도로 강한 시각적 경험을 했다. +로봇에 대한 예언. “그러자 황금으로 만든 하녀들이 주인을 부축해주었다. 이들은 살아 있는 소녀들과 똑같아 보였는데 가슴속에 이해력과 음성과 힘도 가졌으며 불사신들에게 수공예도 배워 알고 있었다.”(18; 417-420)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21세기는 올림포스 신들의 시대로 보일 것이다.
Tyler
호메로스 작품의 주요 번역본을 비교 [출판사/번역가] [숲/천병희] : 서사시 형식의 그리스 원전을 그대로 옮겼고, 원전에 가장 가까운 천병희의 번역으로 제일 유명하다. [현대지성/박문재] : 같은 형식이며 그림과 부록의 내용이 조금 더 많다. [린/김성진] : 원전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엮은 것으로, 직관적이라 간편하게 읽기에 좋다.
양기연
4.0
(도서출판 숲, 천병희 역으로 읽음)
gurum
4.5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어느 작가분의 말이 떠올랐다. 마냥 영웅이고, 마냥 신 같았던 그들이 내 앞에서 마음껏 질투하고 열을 내고.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상심하는 것을 지켜보는 기분이였다. 그러니 처음엔 평면이였던 그들이 책을 덮은 시점에는 입체적으로 튀어나오는 경험을 하였다.
최일섭
4.5
인류 최초의 문학에는 신과 영웅, 인간이 함께 연루되어 있었다. 전쟁은 이들의 관계와 욕망, 한계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무대였다. 결국 우리는 인간이기에 영웅의 신적 면모를 동경하면서도 그 한계에 안도한다. 그리고 그 한계 덕분에 영웅은 신보다 더 근사하다.
윤˳
3.5
요악 과제 때문에 짜증나긴 했는데 솔직히 생각보다 재밌었음. (아킬레우스 아가멤논이랑 1권에서 싸우고 삐져가지고 19권까지 화해 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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