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가 페미니즘이다!
‘진정한 페미니스트’ 프레임에 던지는 날렵한 돌직구
‘진정한 페미니즘을 모른다’고 훈계하거나 ‘진짜 페미니스트다’라고 추켜세우는 목소리는 왜 똑같이 불편할까? 이 책은 무엇이 ‘진짜’와 ‘가짜’인지 논하는 대신, ‘진짜’가 언급되는 맥락을 살피는 데 집중한다. 이를 통해 진짜란 애초부터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억압된 목소리가 다양하게 분출되는 것은 페미니즘의 중요한 특징이고, 일단 ‘눈치 없이’ 활발하게 말할 수 있어야 페미니즘 논의 자체도 진전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불편하고 할 말 많은 여성의 몸과 공간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는 일이다.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에서 한국 사회의 소수자 이슈를 시원하게 해설해주며 인간 존중의 의미를 환기시켰던 예술사회학자 이라영이 신문과 블로그에 발표한 글들과 새로 쓴 글들을 한 권으로 묶었다. 폭발적인 ‘미투’의 흐름 속에서 페미니즘 입문서를 인상 깊게 읽었지만, 일상에서는 여전히 답답함을 느끼며 페미니스트라고 밝히기 주저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씩 뜯어본다.
저자에게 페미니즘은 정체성이기에 앞서, ‘보편’이라고 일컬어지는 많은 지식, 문화, 권력에 질문을 던지고 해체하며 재구성하는 통로다. 이 책은 그러한 통로로 바라본 한국 사회의 풍경을 가감 없이 전한다.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상식과 논리는 책의 중요한 무기다. 이를 통해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도록 제안한다.
‘진짜’를 말하는 사람들이
절대 말하지 않는 것
사그라들지 않는 ‘미투’의 바로 옆에는 페미니즘을 평가하는 근엄한 얼굴이 함께한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라고 칭찬하든 아니라고 비난하든, 정반대처럼 보이는 이 두 가지 말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웬만해서는 페미니스트와 같이 지내기 불편하다는 마음이다.
그래서 이 책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보다는 ‘진짜’가 왜 이토록 강조되는지 따져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를 통해 ‘진짜’란 지금껏 없었을 뿐 아니라 있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늘 ‘나중’으로 밀려났던 다양한 목소리들이 들리도록 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중요한 정신이고, 페미니즘 논의의 ‘질적’ 발전 또한 목소리들이 ‘양적’으로 쌓인 뒤에야 따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페미니스트를 강조하지만, 때로 ‘진짜’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스트를 비난하는 언어다. 너는 늘 화가 나 있는 ‘진짜’ 페미니스트 같지 않아, 라고 말하는 것이다. 불편하지 않은 페미니스트를 선호하는 이들은 사회 개혁보다는 페미니스트 재교육에 관심이 많다. 페미니스트 감별사가 되어 페미니스트를 얌전하게 길들이려 한다. 태도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내용을 무시할 수 있어서다. 나에게 공손하기만 하다면 너의 말을 들어주겠다는 뜻이 아니다. 너의 말을 교양 있게 무시할 수 있다는 뜻이다.” _ 27쪽, 1장 ‘진짜’는 없다
‘진짜’를 구별하고 싶은 욕망은 차별과 이어져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원래’의 ‘자연스러운’ 여성이라는 말은 트랜스젠더 여성 등은 설명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언어고, ‘진정한’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남성 중심으로 짜인 현실을 외면한 채 페미니스트가 되려면 말과 행동을 조심하라는 암묵적 주문이다. 현실에는 수많은 삶만큼이나 수많은 페미니즘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욕망은 부당할 뿐 아니라 무의미하다. 그렇기에 ‘진짜’가 아니라 날마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말한다.
“하나의 진짜 길만 있는 사회보다는 여러 종류의 다른 길이 있는 사회가 옳다. 물론 ‘잘못된’ 길에 이르거나 위험한 길에 다다를 수 있으며, 길을 더럽힐 수도 있다. 때로는 막다른 길에 이르러 다시 돌아와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수많은 오류와 실패를 반복하며 길을 알아갈 권리가 있다. 누구도 그 권리를 박탈할 수 없다. 실패를 쌓아 균열을 만들 권리가 있다. 실패조차 하지 못하면 영원히 고립된다. 완벽하지 않아서 부정당할 필요는 없다.” _ 42쪽, 1장 ‘진짜’는 없다
페미니즘의 렌즈로 바라본
여성의 몸, 일상, 정치
‘진짜’, ‘혐오’, ‘진보’, ‘칭찬’, ‘실수’ …… . 이 책의 단어들은 작은따옴표 인용(quotation)으로 가득하다. 오랫동안 남성의 시각이 ‘보편’과 ‘일반’으로 여겨지면서 여성의 몸, 일상, 정치를 둘러싼 많은 현상들이 ‘원래’ 그런 것으로 취급되고, 심지어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서조차 무감각해진 상황에서 저자가 단어들을 하나씩 뜯어보며 이야기를 풀어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누군가가 인간으로서 기본적 권리를 주장할 때 그 권리가 자신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동안 ‘특권’을 누려왔다는 뜻이다. 조심과 불편은 정의롭게 분배되지 않았으며, 안전은 특권화되었다. “어디 여자가”라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말은 여성살해까지 그 고리가 이어져 있다. 언어 하나하나를 붙들고 집요하게 싸워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익명으로 사라진 수많은 ‘○○녀’들의 ‘원통한 혼’과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이다.” _ 67쪽, 1장 ‘진짜’는 없다
누군가는 페미니즘이 이미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냐고, 과거 조선시대나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곳과 비교하면 지금 한국 사회는 여성이 살기 좋은 곳이 아니냐고 반발할지 모른다. 그러나 저자가 날카로운 문제의식으로 짚어낸 현실은 여전히 참담하다. 여성의 몸은 언제나 남성이 차지해야 할 공간(처녀막, 구멍, 자궁, 땅, 꽃 등)으로 대상화된다. 성을 이야기할 때는 ‘잘하니’가 아니라 ‘해봤니’라고 질문받으며, 나이듦에 공포를 느끼게 되는 등 남성과 달리 경험 자체를 조롱당한다.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나는 한 중년 남성에게서 제 자식들이 ‘빨리 손주 안겨줄 여자’를 데려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빨리 안 데려오면 자기 마음에 드는 처자를 골라 결혼시키겠다는 말까지 듣고 나면 표정 관리가 어려워진다. 아들의 파트너는 나의 성을 물려받는 핏줄을 낳을 재생산의 도구다. 이러한 사고는 상당히 지배적이며, 일상에서 ‘손주 낳아줄 여자’라는 표현은 거의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유통된다. 축사에서 인간의 먹이 생산을 위해 학대받는 암컷 가축들처럼, 인간 암컷인 여성은 빨리 다음 세대를 낳으라고 재촉받는다. 이를 에둘러 ‘가임기 여성’이라고 문명의 언어로 표현한다.” _ 86쪽, 2장 몸이 된 여성들
여성은 공간으로 취급받지만 공간의 주인은 아니다. ‘어울리는’ 자리가 정해져 있기에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도 ‘왜 거기에 혼자’ 있었냐고 추궁당한다. 영화에서는 흔히 남성들 간의 분노, 연대, 정의를 표현하는 매개물로 등장한다. 아울러 여성의 생계공간은 여전히 직장-가정의 고된 ‘2교대’ 노동으로 점철되어 있다. ‘진짜’를 논하기 전에 여성의 공간을 둘러싼 이야기부터 해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다른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사회의 약자는 ‘보이지 않기 위한 노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가리고, 숨고, 돌아다니지 말고,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 이 노동을 소홀히 하면 비난이 날아온다. 장애인이 왜 돌아다녀, 애 엄마가 왜 돌아다녀, 노인네가 왜 돌아다녀, 계집애가 어딜 돌아다녀.” _ 148쪽, 3장 장소를 향한 폭력
‘객관적 비판’이라는 말에
숨겨진 비겁함에 대하여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는 말이 모든 페미니즘이 무조건 옹호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 책은 어떤 페미니즘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페미니스트들의 발언을 두고 앞뒤 맥락을 자르거나 일관성 없는 잣대로 평가하는 ‘비겁함’이다.
예를 들어 ‘여자라서’ 박근혜를 찍겠다고 했던 어느 페미니스트의 말에 대해 한창 비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