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소설의 기념비를 세운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
사실주의 소설의 시작과 동시에 그 완결을 이룩한 작품
카프카에게는 바이블, 누보로망 작가들에게는 교과서가 된 소설
“그녀는 자신의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피가 몸 속에서 젖의 강물처럼 순환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아주 멀리, 숲 저 너머, 다른 언덕 위에서, 분간하기 어려운 긴 외침소리가, 꼬리를 길게 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샤를르 보바리는 루앙 근처의 작은 마을 용빌에서 개업한 시골 의사로, 나이 많은 과부였던 부인이 죽은 뒤 엠마 루오라는 처녀와 재혼한다. 엠마는 농가의 딸로 루앙에 있는 기숙학교에서 얼마간 교육을 받았다. 낭만적인 결혼 생활을 꿈꾸다 따분한 남편과 권태로운 시골 생활에 질려 버린 엠마는 외도를 저지르기 시작한다. 결국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로 엄청난 빚을 지고 정부들에게 버림받은 엠마는 돌이킬 수 없는 절망에 빠진다.
통속적인 소재와 그에 따른 법정 소송으로 더욱 유명해진 『마담 보바리』는 ‘보바리즘’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다. 오늘날 이 말은 ‘과대망상’ 혹은 ‘자기 환상’ 등으로 그 뜻이 일반화되었지만, 플로베르는 이 ‘보바리즘’을 통해 현실 자체를 변질시키고 외면하게 만드는 낭만주의적 몽상의 본질을 유감없이 해부하고자 했다. 『마담 보바리』는 1857년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함께 ‘현대(modern)’를 열어젖혔고, 이후 모든 문예사조,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아방가르드와 구조주의에 이르는 예술의 도저한 흐름의 씨앗이 되었다.
스타일의 기적
통속적인 불륜의 시나리오가 소설 문학의 성서가 되기까지 플로베르가 이 작품을 착안한 것은 일종의 벌서기였다. 그의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하던 친구들은 당시 신문을 장식했던 한 간통 사건을 소재로 보다 쉬운 이야기를 써 보라고 충고한다. 통속적이기 그지없는 이 소재를 앞에 두고 플로베르는 수치심을 느꼈지만 다른 한편 커다란 결단을 내리게 된다. 그것은, 위대한 문학 작품을 만드는 것은 소재가 아니라 스타일이라는 것, 즉 소재가 그 무엇이건 스타일의 힘으로 위대한 문학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자신의 확신을 증명해 보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4년여에 걸친 글쓰기 고행의 결과 이 작품이 탄생한다.
문학과 외설 시비, 그리고 문학의 승리. 그러나 소재의 통속성은 계속해서 플로베르를 괴롭혔다. 『마담 보바리』를 신문에 연재한 후, 작가와 신문 편집자 그리고 인쇄업자는 ‘공중도덕 및 종교에 대한 모독’의 죄목으로 법정에 서게 된다. 검사는 소설의 소재인 유부녀의 간통에 초점을 맞추어 논고를 펼친다. 이 소설에는 마땅히 ‘시골 여자의 간통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야 할 것이며 그것을 읽게 될 모든 젊은 여자들과 유부녀들을 타락시킬 거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명 변호사 쥘 세나르의 변론을 통해, 훗날 사실주의의 금과옥조가 탄생한다. 이 작품이 위대한 것은, 작가가 추악한 것을 그리는 데 있어서 아름다움을 그리는 것와 마찬가지의 사실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법정도 플로베르의 손을 들어준다.
‘보바리즘(Bovarysme)’의 탄생
법정 소송을 거치며 더욱 유명해진 이 작품은 ‘보바리즘’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소설의 주인공 엠마 보바리처럼 현실을 외면하고 몽상 속에서 살려는 경향을 가리키는 이 말은 오늘날 ‘과대망상’ 혹은 ‘자기 환상’ 등으로 그 뜻이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19세기 초를 풍미하던 낭만주의는 과도한 서정성과 꾸밈으로 점점 통속적이 되어 갔다. 그러한 낭만주의의 위험을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엠마 보바리의 몽상이다. 작가는 이 보바리즘을 통해 현실 자체를 변질시키고 외면하게 만드는 낭만주의적 몽상의 본질을 유감없이 해부하고자 했다. 한 걸음 나아가 플로베르는 자신의 내부에 잔존하고 있던 낭만주의적 기질마저도 완전히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마담 보바리 그것은 바로 나다.”라고 한 플로베르의 고백이 증명하듯 엠마라는 인물은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 나아가고자 하는 작가의 내적 갈등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후 마담 보바리와 ‘보바리즘’2은 시대와 얼굴을 바꿔 가며 수많은 문학 작품 속에서 재현되었으며, 프랑스 소설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형으로 자리잡게 된다.
원전을 능가하는 맛을 선사하는 김화영 교수의 번역 작업
원본에 필적하는 수사학의 보고(寶庫). 1999년 《미메시스》 선정, 우리 시대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인정받은 김화영의 번역은 원전을 능가하는 맛을 선사한다. 그것은 프랑스어 단어가 지닌 뉘앙스, 플로베르의 십자가였던 <스타일>의 모든 가능한 의미를 붙잡으려 한 역자의 노력 덕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마담 보바리』의 진정한 완역본이라 할 수 있다.
이 고단한 작업을 돌이키며 김화영 교수는 옮긴이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플로베르는 『마담 보바리』를 집필하는 데 무려 4년 반이라는 긴 세월을 바쳤다. 나는 이 작품을 번역하는 데 꼬박 3년을 보냈다. 이십 대 초반에 이 작품을 처음 접한 이후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여러 번 읽고 또 읽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그에 관한 강의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나는 이 작품에 대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매혹을 느꼈지만 그 번역에 대해서는 불만과 의문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이 작품을 새롭게 번역하고 싶었다. 마침내 민음사의 새로운 세계문학전집 기획이 내게 그 오랜 숙원을 실현하는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이 작품의 번역은 내 생애에서 각별하게 기억될 것이다.”
번역을 위한 김화영 교수의 조사 작업은 방대한 것이었다. 먼저 파리에서 간행된 다섯 개의 프랑스어 판본과 그 주석들을 참고하여 일차 번역을 완성했다. 그리고 한국어판과 영어 번역판들을 참고, 보완 작업을 거쳤다. 그러나 여전히 불확실하거나 의문스러운 점들이 남았다. 고유명사의 발음, 19세기 초엽 노르망디 지방 풍속 등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에 역자는 프랑스 현지의 플로베르 전문가들에게 질문서를 보내어 자문을 구했고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답장을 받아냈다. 이런 노력의 결과 90여 개에 달하는 주석으로 살을 찌운 이 번역본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명실공히 1857년 파리에서 『마담 보바리』가 출간되던 당시 딸려 있던 부제, 즉 ‘풍속의 연구’라는 부제에 합당할 만한 진정한 번역서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