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까지 걷기

리디 살베르
2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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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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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시리즈, 세 번째 책. 2014년에 소설 <울지 않기>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 작가 리디 살베르가 파리 피카소 미술관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살베르는 피카소 미술관에서 홀로 하룻밤을 보내며 떠오르는 영감을 글로 써보라는 출판 기획자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다. 미술관이라는 곳에는 너무 많은 경이로운 것들이 몰려 있어서 싫고, 실컷 멋진 작품들을 봤는데 출입문을 나서자마자 추한 세상과 다시 부딪혀야 하는 그 급격한 변화가 싫고, 무엇보다도 미술관이 천박한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과 한통속이면서도 우아한 척하는 것이 싫어서다. 그런저런 이유를 나열하며 단호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으나 마음 한구석에는 미련이 남아 있다. 미술관에서 오롯이 마주할 작품이 바로 자신이 오랫동안 열정을 품어온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평생 삶의 취약성과 덧없음을 그의 작품의 질료로 삼았던 화가이자 조각가, 자코메티. 살베르는 고민 끝에 '걷는 사람'과의 하룻밤을 수락하고 ‘피카소-자코메티’ 전이 열리고 있는 피카소 미술관에 들어선다. 하지만 그 밤, '걷는 사람'은 그녀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실패의 예술, 삶에 밀착한 예술을 실천한 자코메티의 예술을 사랑하는 리디 살베르의 세레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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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본문 7 옮긴이의 말 212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맹렬하게 사랑하고 맹렬하게 싸우는 순수주의자 리디 살베르,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과 하룻밤을 보내다. 스페인 독재정권에서 벗어나 프랑스 툴루즈 인근의 오탱빌에 정착한 카탈루냐계 어머니와 안달루시아계 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리디 살베르는 고향을 떠나게 만든 이데올로기의 싸움, 한때 정의를 위해 싸웠으나 집안에선 폭군인 아버지, 평생 편안하게 느끼지 못한 프랑스어 등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맞서며 쌓인 분노와 격정을 글로 다스려온 작가이다. 평생을 몸담아온 예술과 문학을 향해 느끼는 감정에도 애정과 증오가 양립한다. 오랫동안 사랑해온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이 있는 피카소 미술관의 하룻밤을 독점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마저 그녀가 보인 첫 번째 반응은 강렬한 저항이었다. 주위의 설득과 긴 고민 끝에 〈걷는 사람〉과의 하룻밤을 수락했지만, 정작 살베르는 오롯이 마주하게 된 〈걷는 사람〉에게서 아무런 감흥도 얻지 못한다. 오히려 불안감만 커질 뿐이다. 무엇 때문인가. 리디 살베르는 스위스 태생으로 이십대 초에 파리에 정착한 자코메티에게서 이주민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낀다. 예술은 모든 화려함과 풍요로움에 맞서 저항하는 것이라고 여긴 자코메티에 깊이 공감하며, 그런 자코메티의 예술을 침울한 아름다움, 아름다움에 둘러싸인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해왔다. 그토록 존중하는 마음을 품었던 자코메티의 작품과 대면하고 있는 이 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감동이 일지 않는다. 그 청동 조각상이 자신의 눈앞에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밀도 높게 존재하고 있음에도 그녀는 어떤 아찔함도 기쁨도 영감도 느끼지 못한다. 살베르는 미술관에서의 하룻밤을 홀로 지낸다는, 몹시 기대했던 예술적 시도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데에 무력감을 느낀다. 이 귀한 시간에 자신은 왜 예술에 대해 아무 관심도, 아무 욕구도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그동안 의식하지 못한 예술에 대한 혐오감이 작동하는 건가. 예술을 향한 애증과 세상을 구원하는 실패의 아름다움이 강렬하게 교차하는 시간. 지나치게 부유하고, 모든 것이 넘치는 과포화의 시대, 21세기의 풍요에 거부감을 느끼는 살베르는 ‘너무 많은 아름다움과, 너무 많은 천재성과, 너무 많은 우아함으로’ 점령된 미술관이라는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 밤의 분위기가 기대했던 것만큼 감상적이지 않자 차츰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녀는 불안을 달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미술관에 대한 반감, 예술이 수익 좋은 최고의 투자처로 전락한 세태에 대한 독설, 더없이 천박한 승부욕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쏟아낸다. 조각상의 허약한 어깨가 세상의 야비함에 대한 환멸을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이 피카소 미술관에 있는 것조차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코메티는 그런 세상과 조금도 발맞추지 않고, 실패를 겁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실패를 창작의 조건이자 소재로 삼은 ‘겸손한’ 예술가가 아니던가. “이제 나는 자코메티가 대담 때 그토록 자주 말했던 그것(무능)을 생각했다. 왜냐하면 작업의 어려움을, 모델 속의 존재를 드러내는 어려움을, 움직임 없는 몸체 속에 생명의 움직임을 재현하는(그리스인들이 참으로 잘 해낸 것처럼) 어려움을, 인간을(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을) 온전히 포착해내는 어려움을, 세상 속에서 그리고 죽음 앞에서 느끼는 지독한 고독을 표현하는 어려움을 그보다 더 잘 말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 앞에서 느끼는 불만족을 그보다 더 잘 표현한 사람도 없었다.” _ 108p 그 밤 이후, 살베르는 <걷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마주하고도 자신의 마음이 왜 굳게 닫혔는지를 곰곰이 생각한다. 감정을 토로하려는 유혹에 저항하는 일이 글쓰기라고 생각하는 작가지만 살베르는 자신을, 자신의 결핍을, 남들에게 ‘무척 겸손한’ 사람으로 비추고야 마는 그 열등감을 솔직하게 토로한다. 프랑스어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부모 밑에서, 세련됨을 배우지 못했던 환경에서 자란 자신이 프랑스어로 글을 쓰며 느끼는 옹색함을, 그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며 부딪쳐야 하는 그 열패감을, 그리고 초고속 리듬의 사회에 적응하며 사는 것이 실행 불가능한 천성을. 그런 생각의 끝에 다다르자 그녀는 그 밤의 무언가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상처를 입혔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는다. 무언가가 자신에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불안을 야기했다는 걸, 무언가가 자신의 감동하는 능력을 마비시켰다는 걸. 적막과 고립 속에서 <걷는 사람>을 대면하는 일이 자신의 죽음을 일깨웠다는 걸. 바람과 패배에 맞서 계속 걷는다. 자코메티처럼, 나처럼, 우리처럼. “〈걷는 사람〉은 나처럼, 우리처럼 죽음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을 알았다. 안다는 사실이 그의 등줄기를 휘게 했고, 무한히 겸손하게 만들었다.” _ 183p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열정적으로 매달려야 한다는 걸 인식함으로써 예술가로 존재했던 사람, 자코메티. 무한한 겸손, 완벽을 향한 지칠 줄 모르는 긴장, 고행 같은 작업 방식, 그 대가로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열정만으로 보상받는 사람. 살베르는 지친 회색이 아름다운 자코메티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모든 면면이 그를 성자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도달할 수 없는 것을 향한 그의 팽팽한 노력에서 삶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읽는다. 다가오는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자신이 그토록 품고 싶은 삶에 대한 의지를. 살베르의 작가적 역량과 인간 심리를 깊이 들여다보는 정신과 전문의의 경험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며 우리로 하여금 예술의 힘과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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