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외 인류학자의 주한미군 탐색기
한미동맹 70주년, 우리 안의 미군은 어떤 존재였을까?
세계 질서와 로컬리티를 가로지르는, 주한미군을 둘러싼 다층적 시선
쇼버의 책은 글로벌 자본주의가 전통적인 한미관계, 주한미군의 지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성별과 민족이라는 키워드로만 작동했던 기존의 기지촌 연구는 지역 경제, 로컬리티, 계급/인종/국적의 다양성과 연관되고, 국민국가 간의 기지촌 정치경제학이 국제정치와 로컬 정치로 확대·심화된다. 이른바 포스트 국민국가 체제 시대의 군사기지와 성 산업에 대한 정치한 분석으로, 기존의 시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새로운 분석이다. 그리하여 상상된 공동체로서의 네이션을 넘어, 실제적으로 작동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의 혼종성의 공간으로 한국을 입체화하는 데 성공했다. _정희진의 ‘해제’ 중에서
2007년에 연구차 한국에 온 엘리자베스 쇼버는 한국 대중이 미국과 미군에 대해 보이는 태도에 의문을 갖게 된다. 한국에서 미국은 오랜 동경의 대상이자 굳건한 ‘동맹국’이었건만, 왜 이곳에서 대중적인 반미 의식이 생겨났을까? 미군과 직접 대면해본 적 없는 많은 이들이 어떻게 미군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을까? 이러한 질문을 출발점 삼아 쇼버는 미군 주둔으로 인한 한국 사회의 변화를 문화기술지로 조명해낸다. 외부자의 시선이지만 연구자로서의 정밀함과 균형감을 갖춘 인류학 보고서이다.
저자는 우선 구한말부터 21세기 초반까지 한국의 격동적 근현대사를 압축해 조망한다. 동시대의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내재적 분석이자 국제관계의 측면도 놓치지 않은 사전 조사다. 이후 본격적인 탐색이 펼쳐지는바, 동시대 한국의 미군 유흥지(기지촌, 이태원, 홍대)를 탐색하면서 미군, 이주여성, 한국인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그 현장의 목소리를 인류학의 언어로 드러내 보인다. 대중교통의 발달로 기지촌을 벗어나 편리하게 도심 유흥지에 드나들 수 있게 된 미군, 세계화의 진척과 함께 국내의 성 산업에 유입된 이주여성, ‘윤금이 사건’(1992), ‘미선이·효순이 사건’(2002),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싼 평택 대추리에서의 싸움’(2006), ‘한미FTA 체결’(2007)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을 거치며 미국 혹은 미군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게 된 여러 한국인들(여성과 남성을 비롯해 운동가부터 펑크족까지)의 이야기가 탄탄한 장면으로 펼쳐진다. 각 행위자들의 주체성을 강조하되 이들이 타협해야 하는 더 큰 구조적 힘과 이들의 기저에 흐르는 정동을 함께 분석해냄으로써, 『동맹의 풍경』은 과거와 한층 달라진 새로운 질서를 드러낸다. 또한 이 책이 담아낸 여러 장면들은 미 제국의 전 지구적 군사주의 체제를 되돌아보게 하면서 동시에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여전히 제국의 군대와 함께 살아가는 한국 사회에 대한 몽타주이기도 하다.
한민족론, 산업 역군, 기지촌 문학……
한국의 민족주의적 상상력의 역사
서구 열강의 침략과 일본의 식민 지배는 한반도에 민족주의적 담론을 태동시켰다. 주권을 침탈당하는 위기 속에서 신채호 등 구한말 조선의 지식인들은 민족적 단일성을 강조하는 한민족론을 개진하고, 민족의 운명을 구원할 인간상을 군인에게서 찾았다. ‘고래 싸움에 끼인 새우’와 같은 조국의 현실을 타개하려면 물리적 힘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이상은 박정희의 통치 이념으로도 이어지는데, 민족 정서를 강조하면서 사회의 전 영역을 군대와 유사하게 만든 박정희 체제를 저자는 ‘병영 자본주의’라는 개념으로 압축한다. 한국전쟁 이후 상시 주둔하게 된 미군은 줄곧 경제 건설에 필요한 달러를 벌어들일 창구 역할을 했는데, 박정희 시대에 미국과의 안보동맹 역시 경제적 이익과 직결된다. 베트남전 참전으로 군인들을 비롯해 재벌 기업들이 외화를 벌어들인 것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를 향한 민중의 열망으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던 독재정권의 역사는 막을 내린다. 독재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던 시절, 미국에 대한 대중적 호의에도 서서히 균열이 생긴다. 저자는 1980년의 광주민주항쟁을 미군에 대한 한국 대중들의 의심이 시작된 기점으로 보면서, 1980년대에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가 본격적으로 전환되었다고 진단한다. 군사정권의 집권을 묵인하며 이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편에 서지 않은 미국의 태도가 문제적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와 같이 민주화의 물결은 반미주의와 결부되는데, 1992년 동두천의 기지촌에서 성 산업에 종사하던 윤금이 씨가 미군에게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은 반미주의의 기폭제가 된다. 저자는 미군 개인의 범죄 사건이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대한 알레고리로 ‘증폭’되는 양상을 살피면서, 기존에는 민족 공동체의 도덕성과 순수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낙인찍혔던 기지촌 여성들이 민족주의 서사를 강화하는 소재로 활용되었음을 밝힌다. 그 과정에서 ‘양공주’ 윤금이는 ‘미국을 꿈꿨던 우리 민족의 딸’로 탈바꿈되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좌파 지식인들이 반미주의의 흐름 속에서 써 내려간 ‘기지촌 문학’도 함께 조명된다. 미군 병사와 한국 여성의 성관계를 ‘이종교배’로 바라봄으로써 민족의 재생산이 위협에 처하게 된다는 인식이 드러나며, 문학적 상상력을 불어넣어 미군에 대한 복수로서의 강간 내러티브가 등장하기도 한다. ‘미군은 고삐 풀린 잠재적 성폭력 가해자’, ‘기지촌은 폭력적 공간’이라는 인식은 오늘날까지도 한국 대중들 속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전 여기 오고 나서야 이곳에서 원하는 일이 뭔지 알게 됐어요.”
기지촌으로 유입된 이주여성들의 이야기
2000년대 후반에 쇼버가 목격한 기지촌은 “1980~1990년대의 민족적 상상에 스며든 이미지처럼 미군이 한국 여성을 학대하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들이 특별한 풍경에서 서로 조우하는 주변화된 초국적 공간”이었다. 즉 저자는 기지촌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가면서 반미주의를 통해 각인된 ‘폭력적 상상’을 뒤로한 채 시야를 입체적으로 확장해간다. 한때 기지촌에서 접대부로 일하던 나이 든 한국인 여성들은 클럽의 일상 업무를 관리하는 일로 밀려났다. 그리고 한국인 여성들과 경합한 끝에 이 자리로 들어온 이들은 바로 이주여성이었다. 구소련과 동남아시아 등지, 특히 필리핀에서 머나먼 타국으로 온 이 여성들은 자국에서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타개하고자 한국행을 택했다. 외화 벌이를 장려하는 송출국 정부, 이들을 한국에 보냄으로써 수익을 거두려는 알선자, 성 산업에 필요한 여성을 충원하려는 한국 사회, 이 모든 것을 방관하는 한국 정부의 정책이 맞물리면서 벌어진 일이다.
2000년대에 한국은 이와 관련해 국제적 ‘망신’을 당한다. 미국의 한 언론은 한국 기지촌의 성판매 문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며, 미국 정부가 2002년에 발행한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한국은 여러 이주자들이 인신매매되어 주로 향하는 최종 도착국에 이름을 올린다. 한국 정부는 달갑지 않은 국제적 관심에 떠밀려 2004년에 여성운동 진영에서 그토록 요구해왔던 성매매특별법을 제정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이주여성들이 한국에 입국할 때 받아야 하는 E-6 엔터테인먼트 비자 발급 심사가 한층 파렴치해진다. 영사관 직원 앞에서 춤과 노래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엔터테이너임을 입증하는 과정이 신설된 것이다. 이들이 어떤 길로 들어설지 빤히 짐작할 수 있음에도 한국 정부가 만들어낸 허울의 관문이다. 물론 이주여성들을 한국에 입국시키는 알선자들이 이러한 문턱을 편법으로든 우회해서든 넘어설 수 있도록 치밀하게 돕고 있지만 말이다. 한국에 발들이더라도 이들은 타국의 법체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신분의 불안정성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난한 과정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이주여성들의 실제 삶은 어떠할까? 경기도 평택의 기지촌에서 일한 한 필리핀 여성의 말에서는 깊은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첫 남자를 생각하면 이제는 필리핀에서 나중에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