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나는 꿈꾼다, 고로 존재한다.” ―상상력의 철학자, 바슐라르의 『불의 정신분석』 이성과 몽상의 합체로서의 인간에 대해 골몰하는 상상력의 철학자 바슐라르. 학문적 이력상으로는 과학 철학자로서의 모습이 두드러지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그의 면모는 상상력의 철학자이자 그가 사랑한 무수한 시와 문학 작품들을 읽고 그것에 대해 꿈꾸며 일구어낸 문학 연구가로서의 모습이다. 과학과 상상력 혹은 문학을 통합하는 인간학으로서의 철학으로 나아간 바슐라르는 이성의 힘을 믿는 과학자로서의 긴 이력을 먼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식론적 성찰 과정에서 과학적 인식의 방해물로 여겨진 인간의 또 다른 정신 활동인 몽상, 즉 상상력의 활동과 그것의 가장 뛰어난 표현으로서의 문학 작품에 사로잡힌 바슐라르는『불의 정신분석』을 경계로 과학적 이성에서 시적 상상력으로 탐사 영역을 옮겨와 상상력의 역동성과 창조성에 주목하게 된다. 바슐라르는 전통적인 대학 교육을 받지 않았다. 중등 과정을 마친 후 독학으로 공부하여 철학 교수 자격시험을 통과하여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런 이력 때문일까? 그는 인간이란 사유하는 존재이기에 앞서 무엇보다 꿈꾸는 존재라고 주장하면서, 언제나 이성을 인간 정신의 중추로 간주해온 서구의 철학적 전통에 반기를 들었다.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모두 비이성적인 것 혹은 거짓으로 간주된 서구의 사상적 전통에서 상상력은 오랫동안 ‘거짓과 오류의 원흉’으로낙인찍혀 폄하되어왔으나, 바슐라르는 이성을 기반으로 한 객관적 과학의 세계보다 이미지와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주관적 상상의 세계가 우선함을 주장하면서, 상상력을 현실 세계의 변형과 변모를 가능케 하는 놀라운 창조성을 지닌 것으로서 종합적으로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인간 정신의 인식에 있어서 흔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비교되는 이러한 인식을 그는 어떻게 해서 이루게 되었을까? 『불의 정신분석』은 상상력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그의 일련의 저작들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처음부터 그가 상상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그 창조성과 자율성에 대한 탐구로 뛰어든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가 상상력의 원초적 힘을 발견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인식을 방해하는 인식론적 장애들을 제거하여 과학적 사유의 순수성을 보전하고자 하는 노력의 연장선상에서였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객관적 인식에 이르지 못하는가? 객관적 인식을 방해하는 오류의 원흉들은 무엇인가? 『불의 정신분석』은 그가 이러한 물음들을 제기한 『과학 정신의 형성―객관적 인식의 정신분석을 위한 기여』라는 저작의 속편의 성격으로 기획되었던 것이다. 요컨대 ‘불의 정신분석’이란 표현에는 불에 대한 우리의 심리적 반응, 불에 대한 심리적 가치 부여, 불이라는 현상의 인식과 관계된 우리의 “주관적 확신들”을정신분석함으로써, 이 억압적인 확신들로부터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탐구를 해방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인식의 토대에 무의식적인 가치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제시하기 위해, 바슐라르는 제1장「불과 존경」에서 우선 불이 어떻게 사회적 금기를 통해 존경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지, 그리고 불이라는 자연현상이 일반적 금지의 대상이 됨으로써 복합적이고 혼란스런 사회적 인식들에 연루된 결과 불에 대한 “천진한 인식”, 즉 ‘가치 부여 없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현상으로서의 불에 대한 인식’의 여지가 없어지게 된다는 점을 논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 금지를 어기고 불을 내 것으로 하여 아버지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데, 바슐라르는 이를 프로메테우스 콤플렉스로 명명할 것을 제의한다. 제2장「불과 몽상. 엠페도클레스콤플렉스」에서는 몽상의 대상으로서의 불을 논한다. 바슐라르는 인간은 필요의 피조물이 아니라 욕망의 피조물이요, 불의 유용성만으로는 불에 대한 주관적 가치 부여를 설명할 수 없음을 역설하고, 인간 정신의 형성에 몽상이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는지를 강조하면서 불에 대한 명상이 어떻게 우리의 엠페도클레스 콤플렉스를 결정짓게 되는지를 논한다. 그리고 ‘화형대의 부름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하나의 근본적인 시적 테마로 남아 있으며, 객관적 인식에게는 그것이 순전히 날조된 것에 지나지 않지만 무의식적 몽상에게는 여전히 심오하게 실재적이고 능동적으로 남아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꿈은 경험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이다. 제3장 「정신분석과 선사. 노발리스콤플렉스」에서는 ‘최초의 인간들은 불을 어떻게 만들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합리적 설명, 선사시대의 불의 정복을 설명하는 객관적 이유들의 취약점을 고발하면서, 원시인의 불의 정복 자체는 물론이요 이에 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여러 가지 설명들의 불충분과 모순과 오류도, 정신분석학적 관점, 즉 불의 성(性)화 작용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쉽게 해명된다는 점을 제시한다. 바슐라르는 정신분석학적 고찰, 말하자면 ‘마찰’에 대한 내밀한 성적 욕망, 따뜻한 품에 대한 원초적 갈망 등에 대한 고찰의 중요성을 부단히 강조하면서, 이러한 몽상과 욕망이 어떻게 전(前) 과학적인 정신들을 어지럽히고 있는지 하나씩 열거해나가다가, 이를 바탕으로 노발리스의 시를 분석하면서 “마찰에 의해 야기된 불을 향한 충동, 열을 공유하고자 하는 욕구”를노발리스 콤플렉스로 명명한다. 제4장 「성화된 불」은 3장에서 제기된 불의 성화 작용에 대한 심화된 탐구라 할 수 있다. 로비네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어떻게 불을 ‘생식력’을 가진 실체로 간주했는지를 살피고, 연금술의 불, 가장 강력한 불로 남성화된 불을 고찰하며, 불이야말로 인간의 정신이 성찰한 최초의 대상임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정신 자체가 불에 대한 명상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즈음에서 우리는 합리적 설명이나 객관적 해석의 빈약함과 시적 몽상의 풍요로움을 부단히 대비시켜나가는바슐라르의 태도에 주목해야 한다. 객관적 인식의 방해물을 제거한다는 애초의 의도는 어디로 가고, 어느새 그는 시적 몽상의 풍요로움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다. 과학의 축(사유의 축)을 시의 축(몽상의 축)에 대립시키며, 과학의 축을 바로 세우기 위해 기획된 책이 시의 축의 풍요로움과 인간 정신의 ‘형성자’로서의 몽상의 가치와 중요성을 확인하고 강조하는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이다. 제5장 「불의 화학」에서바슐라르는 탐구의 장을 ‘불’이라는 현상에서 ‘불이 낳는’ 현상으로 바꾸고, 이번에는 시인이나 몽상가가 아니라 과거의 화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을 살핀다. 지금까지는 논의의 초점이 불에 대한 우리의 무의식적 가치 부여(혹은 콤플렉스)를 살피는 데 모아졌다면, 불에 부여된 그러한 무의식적 가치들이 불이 낳는 현상에 대한 과학자들의 객관적 인식 노력을 어떻게 어지럽히는지를 다룬 이 장이야말로 어쩌면 책의 본래 기획 의도에 가장 부합하는 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의 첫머리에서부터 그는 “사유와 꿈의 연속성을 포착하고, 사유와 꿈의 그러한 결합에서 왜곡되고 패배당하는 쪽이 언제나 사유라는 것을 지각”한다고 예고하면서, 사람들이 불에 대해 품는 천진한 관념들로 인해 어떻게 불이 “과학적 사유를 방해하는 실체론적 장애와 물활론적장애”가 되는지를 하나씩 살펴나간다. 불의 원소가 도처에 하나의 실체로 실재한다는 관념이 어떤 오류를 낳는지, 불이 살아 있는 존재처럼 음식을 먹는다는 관념이라든가 불과 동일시된 전류에 대한 그릇된 실체론적 관념이 어떤 오류를 낳는지, 열과 불의 실재화는 또 어떤 오류들을 낳고, 어떻게 불이 과학의 영역에서 형이상학적 원리(삶과 죽음, 존재와 무의 원리)로 가치 부여되는지, 그리고 소화 작용의 신화가 어떻게 뱃속에 실재하는 불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낳는 데 일조하게 되는지, 또 그것이 어떻게 내밀한 불, 불꽃 없는 불이라는 관념으로 이어지게 되는지 등을 두루 살펴본 뒤, 그는 이 모든 과학적 오류들이 사실은 바로 무의식적 욕망임을 확인하고, 몽상의 질기고 질긴 그 원초적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