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륭

장훙제 ·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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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실질적인 통치 기간이 가장 길었던(63년 4개월) 제왕이자, 가장 장수한(89세) 군주 중 하나. 인자하면서도 잔인했고, 상냥하면서도 냉정했으며, 검소하면서도 사치스러웠고, 겸손하면서도 거만했던 인물. 일생 동안 위대한 정치적 업적을 쌓았고, 재임 기간에 태평성대를 이룬 성공한 황제이자, 말년에 정치적으로 중대한 실수를 범하면서 스스로 태평성대를 무너뜨리고 청나라를 아편전쟁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은 실패한 황제. 그는 바로 청나라의 고종 건륭제다. 복잡하고 모순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 정치가와 학자, 시인, 여행가, 사냥꾼 등 다양한 모습이 합쳐져 있는 별종 황제에 대하여 가까이 다가가 그의 성공과 실패를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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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강 건륭의 이력서 2강 남다른 사주팔자 3강 미리 물려받은 황위 4강 뜻을 거스른 후계자 5강 권력을 손에 쥐다 6강 대신들을 다루는 법 7강 황제의 사랑 8강 불길한 건륭 13년 9강 황제를 모시는 것은 호랑이와 함께 있는 것 10강 장정옥의 죽음 11강 태평성대의 절정에 이르다 12강 변화와 위기 13강 기이한 사건들 14강 문文으로 다스리다 15강 나이 든 황제 16강 화신의 등장 17강 부정부패에 물든 관료들 18강 황제와 신하의 대결 19강 청나라를 찾아온 영국인 20강 영국의 선물 21강 아편전쟁의 씨앗 22강 물려주고 물려받기 23강 건륭제 사후 주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성공한 황제인가, 실패한 황제인가 사료로 고증하고 분석한 건륭성패! CCTV 백가강단 인기 강연! 인류 역사상 실질적인 통치 기간이 가장 길었던(63년 4개월) 제왕이자, 가장 장수한(89세) 군주 중 하나. 인자하면서도 잔인했고, 상냥하면서도 냉정했으며, 검소하면서도 사치스러웠고, 겸손하면서도 거만했던 인물. 일생 동안 위대한 정치적 업적을 쌓았고, 재임 기간에 태평성대를 이룬 성공한 황제이자, 말년에 정치적으로 중대한 실수를 범하면서 스스로 태평성대를 무너뜨리고 청나라를 아편전쟁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은 실패한 황제. 그는 바로 청나라의 고종高宗 건륭제乾隆帝다. 복잡하고 모순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 정치가와 학자, 시인, 여행가, 사냥꾼 등 다양한 모습이 합쳐져 있는 별종 황제에 대하여 가까이 다가가 그의 성공과 실패를 분석한다. 장훙제의 『건륭: 63년 4개월의 절대 권력』(원제: 乾隆成敗)은 청淸나라 6대 황제 건륭(재위 1735∼1795)의 초년 시절부터 사망할 때까지 거의 80여 년에 달하는 기간을 밀착하여 취재하듯이 모든 것을 세밀하게 지켜보는 책이다. 숨죽이며 마련된 무대에 올라간 건륭이라는 배우의 몸짓과 목소리의 억양, 이마에 맺힌 땀방울 하나까지 디테일하게 파고들어 세계 제1의 제국을 통치한 지도자의 내면과 사생활, 즉 다양한 취미생활, 심리적 콤플렉스와 경향성, 공부와 학습의 역사 등은 물론 주요 정책들이 결정되고 시행된 과정, 청나라 만주족 권력의 생리, 관료체제의 운영, 국내외 정세 변화에 대한 대응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권륭이라는 한 권력자의 성공과 실패를 조목조목 짚어보고 있다. 그를 위해 총 23개의 강의로 이뤄져 있으며, 황위를 물려받기 전 살떨리는 경쟁 시스템에 대한 소개와 타고난 사주팔자의 행운, 일찍이 강희제의 눈에 들어 부친 옹정제의 황위 등극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점, 황위에 오른 뒤에는 부친이 시행한 큰 정책들을 과감하게 폐지하는 모습, 대신들을 다루는 방법, 황후의 사망에 따른 중년기의 고통, 태평성대의 절정에 이르는 과정까지가 책의 전반부를 이룬다. 나머지 후반부는 변화와 위기, 기이한 사건들, 관료들의 부정부패와 이를 상징하는 화신이라는 인물의 등장, 신하들과의 대결 국면, 영국의 통상요구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대응 끝에 서서히 쇠망의 길로 접어드는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주요 내용 건륭제의 성은 청나라 황실의 성씨인 애신각라愛新覺羅이며 본명은 홍력弘曆이다. 청나라 초기에는 황족 이름을 짓는 데 특별한 규칙이 없었다. 그래서 황족 이름을 아무렇게나 지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족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강희제康熙帝는 황자皇子와 황손皇孫들의 이름을 짓는 규칙을 마련했다. 이제 황자들은 이름 첫 글자는 반드시 윤胤자로 쓰고, 두 번째 글자는 보일 시示 변이 있는 자를 써야 했다. 그래서 윤진胤禛, 강희의 뒤를 이어 황위에 오른 옹정제雍正帝의 이름 등의 이름이 나온 것이다. 황손들은 이름의 첫 번째 글자는 반드시 홍弘, 두 번째 글자는 날 일日 변이 있는 글자를 써야 했다. 건륭의 이름인 홍력의 ‘역’은 ‘曆’이다. 건륭의 생일은 강희 50년인 1711년 음력 8월 13일이다. 띠는 토끼띠이고 별자리는 천칭자리다. 태어난 곳은 베이징 옹화궁雍和宮으로 알려졌지만 이를 두고는 이론이 분분하다. 건륭의 아버지는 알려진 대로 옹정제고, 어머니는 만주족 유호록鈕祜祿 씨다. 혈통으로 보면 건륭제는 만주족 피 81.25퍼센트와 몽골족 피 6.25퍼센트, 한족 피가 12.5퍼센트 섞인 사람이다. 건륭의 외모는 외국인의 기록이 신뢰할 만하다. 건륭제 말년에 영국의 사신 매카트니George Macartney가 청나라를 방문했을 때 그는 눈짐작으로 건륭제의 키가 약 5.2피트 정도 된다고 말했다. 이는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60센티미터 정도다. 자금성에는 건륭이 여름에 입었던 십이장十二章, 중국 황제의 예복에 붙어 있던 열두 가지 장식 조포朝袍가 남아 있는데 이 옷을 근거로 했을 때 그의 키는 166센티미터 정도였을 거라고 본다. 건륭제는 평생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성과를 얻었는지, 바꿔 말하면 건륭제의 주요 업적과 역사적 지위에 관한 것이다. 건륭 말기 중국 인구 3억…그 전대보다 2배 늘어 첫째, 인구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청나라 이전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기록한 바에 따르면 인구수는 아무리 많아도 7000만 명을 넘지 않았다. 물론 역사학자들은 일정 시점에는 중국의 인구수가 잠시 1억을 돌파한 때도 있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런데 건륭제 초기인 건륭 6년에 실시한 인구조사에서 중국의 인구수는 이미 1억4000만 명에 달했다. 건륭 60년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얼마나 나왔을까? 3억에 가까웠다. 건륭제가 나라를 다스린 50여 년 동안 중국의 인구수가 몇 배나 늘어난 것이다. 이는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둘째, 경제 규모가 세계 제일을 차지했다. 건륭제 시기 중국의 GDP는 전 세계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당시 중국 제조업의 총 생산량은 영국의 여덟 배, 러시아의 여섯 배였다. 1990년대에 독일의 유명한 경제학자인 안드레 귄터 프랑크Andre Gunder Frank는 『리오리엔트』에서 당시 중국은 동아시아 국제 무역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서도 막강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셋째, 청나라 영토를 최대로 넓혔다. 건륭 24년 중가르准噶爾, Jungar, 17세기 초에 일어나 18세기 중반까지 존속한 몽골 오이라트족의 부족집단과 그 국가를 평정한 뒤 청나라 영토는 145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했다. 현재 중국의 면적이 960만 제곱킬로미터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크기다. 또한 중국의 역대 왕조와 황제들이 회유하거나 느슨한 제도로 변방을 거느렸던 것과 달리 건륭은 변방을 정치적 관할구역에 포함시키고 군사적으로 엄격하게 다스렸다. 역대 다른 황제들은 전혀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다. 넷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문화적 기록을 남겼다. 건륭제 때 만들어진 『사고전서四庫全書』는 중국 역사상 글자 수가 가장 많은 책이다. 책은 약 8만 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글자는 9억 9600만 자에 달한다. 중국에서 가장 방대한 규모의 총서라 할 수 있다. 이 네 가지 기록은 건륭제가 중국 역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룬 황제 중 하나라는 사실을 확실히 증명한다. 경제와 정치뿐만 아니라 군사와 문화 방면에서도 그는 역사의 정점을 찍었다. 최장 재위기간, 최장수, 신친 7대…기록 갱신의 제왕 이 외에도 건륭은 몇 가지 특별한 역사적 기록을 만들어냈다. 우선, 그는 전 세계에서 실질적으로 권력을 장악했던 기간이 가장 긴 군주였다. 건륭제는 60년 동안 황제 자리에 있었고, 그 후 3년간 태상황太上皇, 자리를 물려준 뒤 살아 있는 황제의 부친 자리에 올라서도 최고 권력을 행사했다. 정리하자면 건륭이 실질적으로 권력을 잡고 청나라를 통치한 기간은 63년 4개월로, 이는 전 세계 통치자들 중 가장 긴 기간이다. 강희제의 통치 기간이 더 긴 것이 아니냐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연호가 강희는 61년, 건륭은 60년까지였다. 하지만 강희는 태상황에 오르지 않았고, 또 황제 자리에 올랐을 때 겨우 여덟 살이었기 때문에 직접 정치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실질적으로 통치한 기간은 55년에 그친다.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72년 동안 왕의 자리에 있었지만, 왕위에 올랐을 때가 겨우 다섯 살이었고 스물두 살이 되어서야 직접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실제 통치 기간은 50년에 불과하다. 이란의 국왕 샤푸르 2세Shapur II는 총 70년간 왕위에 있었지만 그가 왕의 자리를 물려받았을 때는 아직 어머니 배 속에 있었다. 따라서 실제 정치에 참여한 기간은 60년이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재위기간이 64년이지만 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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