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최대 탄광도시 푸순의 놀라운 역사
푸순은 중국의 둥베이(東北) 지역―과거에는 ‘만주’라 불린―을 구성하는 세 개의 성(省)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는 랴오닝성(遼寧省)에 있다. 도시의 지하에는 녹색 이암(green mudstone), 유혈암(oil shale), 응회암,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지층들 사이로 막대한 양의 석탄이 들어 있다. 과거에 이 석탄은 오랫동안 삽으로 채굴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전반기에 푸순 탄광을 경영한 일본제국 기업 남만주철도주식회사(南滿洲鐵道株式會社)의 등장과 더불어 대규모 석탄 채굴 산업이 발전했다. 1933년에 푸순은 만주 석탄 생산량의 5분의 4를, 일본 본국과 식민지 전체에서 생산된 석탄의 6분의 1을 책임지고 있었다. 일본이라는 에너지 제국의 칠흑의 심장, 그곳이 바로 푸순이었다. 1928년에 푸순을 찾은 일본 시인 요사노 아키코(與謝野晶子, 1878~1942)는 노천광을 “마치 하늘을 향해 커다란 아가리를 열어젖힌 지상의 괴물과도 같은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형상”이라고 묘사했다.
《탄소 기술관료주의》는 한때 동아시아 최대 탄광이었던 푸순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화석 연료에 대한 우리의 지독한 의존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살펴본다. 이 책은 제국 일본에서 공산 중국에 이르기까지 확연히 다른 여러 정치 체제를 가로지른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정권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경로를 따른다. 바로 국제 경쟁과 경제 성장, 국가 안보, 자원 자립에 대한 국가주의적 집착 속에서 석탄 중심의 개발주의를 수용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막심한 생태 및 환경 파괴가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그것이 다가 아니다. 《탄소 기술관료주의》는 특히 석탄 에너지를 이용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노동을 해야 했던 사람들이 입은 피해를 강조한다. 과도한 탄광 굴착이 초래한 위험 속에서 언제나 높아져만 가는 채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땀 흘렸던 노동자들 가운데 너무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다.
“탄소가 만든 세계”에 대한 역사학적 비판
이 책은 “탄소가 만든 세계”에 대한 역사학적 비판이다. 《탄소 기술관료주의》는 현재 우리가 누리는 산업화한 근대 세계의 혜택 이면에 막대한 에너지 소비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전제 위에서 시작한다. 하버드대학교 과학사학과의 빅터 샤우 교수는 석탄과 석유로 대표되는 탄소 에너지를 끊임없이 퍼부어야만 유지할 수 있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세계를 “에너지 집약적 산업 근대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기후 위기, 여섯 번째 대멸종, 혹은 “인류세”를 둘러싼 최근의 논의들이 잘 보여주듯, 오늘날 우리는 지속 불가능한 이 세계의 대단원을 목도하고 있다. 샤우는 역사가로서 자신의 시좌(視座)가 갖는 역사성과 현재성을 구태여 감추지 않은 채 만주의 탄광도시 푸순으로 독자를 이끈다. 푸순이야말로 “탄소가 만든 세계”가 어떻게 동아시아에 도래해 발전하고 파탄에 이르는지를 보여주는 소우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20세기 초 제국 일본의 만주 침략과 더불어 일본인 기술관료들에 의해 “탄소 기술관료주의”라는 구조가 형성되었으며, 일제 패망 후 만주와 푸순을 뒤이어 차지한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 또한 이러한 구조를 비판 없이 답습했다고 주장한다. 샤우에 따르면, 탄소 기술관료주의란 “각종 기계 및 경영관리 수단을 통한 화석 연료의 대규모 활용을 이상화하는 기술정치 체제”를 뜻한다. 더욱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층위에서 탄소 기술관료주의는 석탄 중심의 “에너지 레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본과 중국에서 탄소 기술관료주의가 뿌리내리는 과정은 공교롭게도 근대국가의 형성 과정과 중첩되었다. 국가는 과학의 힘 및 관료주의적 계획에 대한 맹신과 푸순의 석탄 매장량이 무궁무진하다는 환상을 바탕으로, 최대한 많은 양의 석탄을 최대한 값싸게 채굴해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탄소 기술관료주의는 근대 동아시아의 과학 만능주의, 생산 지상주의, 발전주의와 궤를 함께한다. 저자에게 탄소 기술관료주의와 그 상징인 푸순 탄광은 결코 찬양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수많은 보통 사람의 땀과 피 그리고 환경을 희생시킨 이데올로기였다.
광범위한 분석 범위와 우수한 학술성
《탄소 기술관료주의》는 2022년에 발간된 저자의 첫 번째 연구서로, 미국 아시아학회 존 휘트니 홀 저술상, 미국 외교사학자협회 마이클 헌트상 등을 수상하며 그 학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광범위한 분석 범위와 중요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적색혁명, 녹색혁명(Red Revolution, Green Revolution)》의 저자 시그리드 슈말저는 “《탄소 기술관료주의》의 광범위한 분석 범위와 중요성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이 책은 중국 안팎에서 화석 연료 경제와 근대 국민국가의 부상이 역사적으로 깊은 연관이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독자는 화석 연료 중독의 뿌리와 그 대가―생태 파괴뿐만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폭력적 착취와 국가의 사회 통제 역량 강화 등―에 대해 신선한 관점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 책은 저자가 다년간 일본, 중국, 타이완, 미국에서 수집한 다량의 사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일본 관련 자료의 경우, 일본 외무성 아카이브, 동양문고, 히토쓰바시대학 도서관, 와세다대학 도서관, 도쿄대학 도서관, 홋카이도대학 아카이브 등에 소장된 문헌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중국의 자료로는 푸순시 당안관, 랴오닝성 당안관, 지린성 당안관, 상하이시 당안관, 제2역사당안관 소장 사료들을 이용했다. 그 외에 타이완의 중앙연구원 근대사연구소 아카이브(the Institute of Modern History Archives at Academia Sinica) 및 국사관 아카이브(國史館, the Academia Historica Archives)의 자료들과 미국 국회도서관과 스탠퍼드대학교 후버연구소(the Hoover Institute)의 자료들이 눈에 띈다. 이러한 아카이브 자료 외에도 샤우는 《대공보(大公報)》, 《푸순일보》, 《오사카아사히신문(大坂朝日新聞)》, 《만주일보》 등 각종 중문, 일문, 영문 언론 자료를 두루 참고한다.
문학적 글쓰기로 발견되는 역사 사건들
이 세심하고 방대한 역사책은 의외로(?) 문학적이다. 책의 서론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중국의 근대적 산업화의 기원을 찾고 싶었다. 대신 그 끝의 시작을 발견했다.” 이런 표현이 가능한 까닭은 자신의 체험적 연구를 글 속에 적극 반영하기 때문이다. 다음 문장은 이렇게 이어진다. “2011년 여름, 탄광도시 푸순을 처음 방문했다. 그전부터 나는 약 한 세기 전 일본 기술관료들이 개발한 어마어마한 푸순 노천광에 관한 역사적 사진과 문헌을 접했다. 현장은 기계가 만든 광대하고 공업화한 풍경이었다. 바위를 깎고 땅을 파내 구멍을 만드는 대형 굴착기, 전기 및 증기 동력삽, 그리고 덤프트럭. 1928년에 푸순을 찾은 일본 시인 요사노 아키코는 노천광을 “마치 하늘을 향해 커다란 아가리를 열어젖힌 지상의 괴물과도 같은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형상”이라고 묘사했다. 내 눈으로 보기에도 푸순 탄광은 과연 대단했다.”
또한 이 책의 문학적 글쓰기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지극히 인도주의적이며 세심한”(케이트 브라운) 연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각 장에 광대한 푸순 탄광을 둘러싼 정치, 경제, 기술, 사람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데, 이 이야기들은 저자의 문학적 글쓰기로 더욱 호소력을 얻는다. 그 가운데 1932년 ‘핑딩산(平頂山) 학살’ 장면은 읽는 이의 가슴을 두드린다. “마침내 군인들이 떠났다. 모더성은 몸을 일으켜 가족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담요 아래에서 온기를 잃은 어머니와 여동생의 시신을 발견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또한 무참히 죽임을 당했다. 모더성은 근처에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찾아냈다. 단지 기절한 것이기를 바라며 소년은 곁으로 다가갔다. 팔을 세게 깨물면 아버지가 정신을 차리리라 생각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제야 아버지의 목에서 솟구치는 피가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