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스마트 기기가 인간의 집중력을 무너뜨리고,
깊은 생각을 방해하며, 지능마저 떨어뜨린다…
이 말은 과연 진실인가?
2011년 출간된 니컬러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은 우리 사회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인터넷이 우리가 생각하고 읽고 기억하는 방식을 모조리 (나쁜 쪽으로) 바꾸고 있으며 심지어 뇌구조까지 바꾼다고 주장하는 이 책 이후로, 디지털 기술이 일종의 디지털 치매를 유발한다거나 인류의 생각하는 능력을 갉아먹는다는 이야기는 마치 정설처럼 굳어져버렸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에 완전히 반기를 드는 인물이 등장했다. 디지털 기술로 인해 생각의 종말이 올 거라 주장하는 이들을 두고 “첨단 기술이 문화의 기반을 흔든다고 투덜대면, 알맹이도 없는 소셜 네트워킹의 유행에 현혹되지 않는 예리한 비평가처럼 보일 테니까”라고 비아냥대는 이 배짱 좋은 저자는 신작 《생각은 죽지 않는다Smarter than you think》를 통해 우리의 통념을 완전히 흔들어댄다(실제로 그는 이 책에서 “니컬러스 카조차도 인간의 두뇌가 웹을 사용할 때 보이는 반응을 따로 조사한 브레인 스캐닝 연구를 인용한 사례는 딱 한 번뿐이었고, 그 결과도 모호했다”(p.27)고 기술한다).
새로운 기술이 우리의 사고 패턴을 바꾼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좋은 쪽으로 바꾸는가, 하는 점이다. 저자는 이 물음에 낙관적인 쪽으로 표를 던지며, 우선 글쓰기부터 인쇄술, 전신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술적 혁신이 우려를 자아냈던 웃지 못 할 역사를 소개한다. 특히 글쓰기가 그리스의 웅변술 전통을 파멸시킬 것이라 경고했던 소크라테스 등 염세주의자들을 불찰을 지적한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어떤 사실을 기억하지 않고 적으려고만 한다며 걱정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마주치는 것들을 머릿속에 저장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비로소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소크라테스가 보지 못했던 것 같다고 일갈한다.
소크라테스의 우려는 오늘날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하고, 검색이 일상화되고,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되면서 우리가 갖게 된 두려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인류는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그것에 훌륭히 적응했고 새로운 툴의 사용법을 터득했으며, 옛것의 장점은 그대로 유지했다.
저자는 이런 맥락에서 최근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이 가진 특성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그것이 인간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많은 사례를 들어 치밀하게 분석한다. 이 책은 그야말로 인터넷 시대가 인간 정신을 어떤 식으로 확장시켰는지를 집대성한 최초의 보고서인 동시에 디지털 기술에 따른 생각의 미래를 가늠하도록 해주는 유일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컴퓨터가 어떻게 우리의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어떻게 지식 습득 방식을 바꿀 것인가? 어떤 툴이 우리의 지능을 향상시키고 어떤 툴이 우리의 진보를 방해하는가? 이 책은 이러한 정보들을 조목조목 파헤쳐, 변화하는 인간 정신에 대한 비전을 도발적으로 제시한다.
인간과 기술의
초협력 시대가 온다
1997년 체스 세계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는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에게 여섯 게임을 내리 패한다. <뉴스위크>는 표지에 이 세기의 사건을 “두뇌의 한계”라고 못 박았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인간과 컴퓨터의 싸움에서 최초로 인간이 패배한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해왔다. 하지만 그 이후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카스파로프는 딥블루에 패하고 나서 낙담에 빠지기는커녕 ‘인간과 컴퓨터가 경쟁하지 않고 협력하면 어떨까?’라는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된다. 컴퓨터는 창의력은 없지만 번개 같은 속도로 수많은 경우의 수를 분석해내는 재주가 있고, 인간은 상대의 심리를 역이용할 수 있는 직관과 통찰력이 있으니, 이 둘이 손잡는다면 무적의 팀이 꾸려지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 종족의 이름을 딴 ‘켄타우로스’다. 이 인간과 기계의 협업 팀은 그랜드마스터나 고성능 컴퓨터로만 구성된 팀을 쉴 새 없이 물리쳤다.
저자가 하려는 말은 간단하다. 인간이 기술과 싸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를 잘 이용해 협업하면 질병을 진단하고, 범죄를 해결하고, 교육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똑똑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과 기술의 공생관계가 우리의 지능을 확대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실제 사례에 눈을 돌린다. 그중에는 깨어 있는 매 순간을 디지털 기록으로 남긴 덕분에 산만한 습성을 보완하고 생산적인 아이디어에 집중할 수 있었던 76세의 백만장자도 있고, 온라인 여론을 조성해 유독성 화학 물질을 뿜어낼 것이 분명한 16억 달러짜리 구리 공장의 착공을 백지화시킨 중국 학생들도 등장한다. 한편 10년 동안 에이즈 치료법에 매달려온 과학자들을 괴롭힌 수수께끼를 협업적 게임으로 만들어 한 달 만에 풀어낸 전문가와 아마추어 집단도 있다.
이렇듯 저자는 디지털 기기와 소셜 네트워크를 사용하면 어떤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단순한 임무를 줄이고, 동시에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인식하여 협업적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물증으로 보여준다.
기술은 인간을 어떻게 더 똑똑하게,
더 창의적으로, 더 통찰력 있게 만들어주었나
이 책에서 저자가 내세우는 디지털 기술의 특징은 크게 여덟 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완전한 기억’이다. 생활의 대부분을 녹화하여 디지털 기록으로 남기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라이프로거Lifelogger’라 불리는 이들은 완전한 기억을 실현한 덕분에 수십 년간의 사건과 그간 구상했던 아이디어를 즉석에서 되살려낼 수 있다고 말한다.
두 번째는 ‘생각의 공개’다. 이는 자신의 생각을 온라인상에 올려 널리 퍼뜨리는 현상으로, 평소 얼굴을 맞댄 상태에서는 쉽게 드러내지 않던 억제된 편견과 무례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온라인 글쓰기를 통해 생각을 정제하고, 타인과 의견을 교류하며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가는 순기능이 더 두드러진다.
세 번째는 ‘새로운 문해력’이다. 문해력은 전통적으로 읽을 수 있는 능력과 쓸 수 있는 능력을 의미했지만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동영상이나 사진 등 새로운 매체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능력까지 그 의미가 더욱 다양해졌다. 이는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을 생각지도 못한 영역으로까지 더욱 더 확장시키고 있다.
네 번째는 ‘분산 기억’이다. 사람들은 검색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이 기억을 상기하고 깊숙이 생각해보기 전, 모르는 것을 무조건 일단 찾고 보는 습성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인간은 예전부터 주변사람이나 책 등을 통해 지식과 기억을 ‘아웃소싱’, 즉 분산해 저장해왔다며, 최근에는 그 역할을 컴퓨터가 대행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산 기억 덕분에 우리는 더 창의적이고 중요한 일에 두뇌를 쓸 수 있게 됐다고 주장한다.
다섯 번째는 ‘협업 지능’이다. 온라인상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끼리 크고 작은 문제를 공론화시키기도 하고 때로 해결하기도 하는 예를 우리는 얼마든지 본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뺑소니사고를 일으킨 범인을 잡는 데 자동차 커뮤니티 회원들이 큰 역할을 했던 것도 큰 틀에서 보면 바로 이 협업 지능이 힘을 발휘한 예라 할 수 있다.
여섯 번째는 ‘디지털 학교’다. 여기에는 이미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칸아카데미의 사례와 함께 아이들에게 공용 블로그에 글쓰기를 하도록 독려해 큰 성과를 거둔 뉴질랜드의 이야기, ‘시빌리제이션3’ 게임을 역사, 지리, 정치 과목에 도입해 역시 깜짝 놀랄 만한 결과를 얻어낸 위스콘신대학교 게임학과의 커트 스콰이어 교수 이야기도 등장한다.
일곱 번째는 ‘주변 인식’이다. 누군가와 같은 방에 있을 때, 그들이 드러내는 산만한 신호를 통해 그들의 기분이나 생각을 잡아내는 초감각적 지각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