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요양병원 의사의 눈으로 바라본 늙음과 죽음의 문제
도시에서 살아온 노인들, 도시로 자식들을 내보내고 농촌에서 홀로 살던 노인들이 삶의 마지막 기간을 노인요양병원에서 보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어느 자식도 모실 수 없고 돌아갈 고향도 사라진 노인들은 자식들이 면회 오기만을 기다리며 요양병원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다가 죽음을 맞는다. 현대의 고려장이 되어가는 노인요양병원에서 원장으로 일하면서 저자는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채 병원에서 그저 죽기만을 바라고 있는 노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보려고”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분들이 삶을 마무리하면서 남기고 간 흔적들을 모아 놓은 것”이자, “낡고 쇠락한 몸을 의탁 받은 의사가 그들의 몸과 마음을 대변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취지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늙음’을 격리시키는 사회
고령화사회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노인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병들고 늙은 몸과 죽음은 일상에서 격리시켜 드러나지 않도록 서둘러 처리해야 할 문제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늙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의 삶에서 늙고 낡은 것은 배척당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격리되고 있다. 전통 사회와 달리 노인들의 위상이 하루가 다르게 추락하고 있는 오늘날, 저자는 ‘늙음’과 ‘늙은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을 분석한다. “늙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을 하는 현대인들의 의식에 깔린 사회·문화적인 배경을 천착한다. 그리고 노인들과 노인병에 대한 의료계의 최근 경향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부정적인 효과들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고자 노력한다.
의료 현장에서 늘 노인 환자를 만나는 의사로서 저자는 격리 중심의 노인 환자 대책과 열악한 노인 복지정책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치매를 비롯한 각종 노인성 질환으로 요양병원에 격리 수용되어 있는 노인 환자들의 사례를 하나하나 돌아보며, 노인 환자에게 과연 격리 수용이 유일한 대책일까,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일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그 의문은 지금 우리 시대의 삶의 방식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노인문제로 고통받는 노인들의 생생한 목소리
저자는 자신이 매일 맞닥뜨리는 노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노인문제를 경제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언론과 정부대책에 대해 그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바로 오늘을 살고 있는 젊은 사람들의 내일의 문제이고, 죽음 또한 내일 이후 곧 닥쳐올 문제”인 노년의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경제적인 시각과 해법에서 벗어나 사회·문화적인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노인문제가 심각하지만 누구보다 심각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은 바로 노인들 자신이다. 하지만 노인문제와 관련해서 노인 자신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듣기 어렵다.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저자가 의료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노인들의 목소리와 속마음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요양병원에 격리되어 있는 노인들, 갖가지 아픔으로 병원을 찾는 노인들, 가난과 외로움으로 고통받는 노인들의 목소리를 독자들은 이 책에서 간접적이나마 들어볼 수 있다.
세대와 세대, 미래와 과거, 삶과 죽음이 함께하는 길에서 나이 들기
이 책은 멀리 떨어진 병원에 아버지나 어머니,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모셔 놓은 우리들, 찾아뵐 때마다 자꾸 늙어가시는 부모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두드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잊고 사는 나이듦과 늙음, 자연과 죽음의 문제를 다시 기억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렇게 《나이듦의 길》은 세대와 세대, 도시와 농촌, 미래와 과거, 삶과 죽음, 사람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로 가는 길에서 함께 나이 들기를 꿈꾸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