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 영화의 정사와 기록을 발굴하고 정리하는 의미에서 제작된 극영화 가운데 우수한 시나리오를 선정하여 1983년부터 매년 ≪한국 시나리오 선집≫을 발간하고 있다. 2004년 한국시나리오 선집에는 총 10편의 시나리오가 선정되어, [귀여워], [말죽거리 잔혹사], [범죄의 재구성], [빈집], [송환], [아는 여자], [알포인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인어공주], [태극기 휘날리며]가 수록되었다. ≪한국 시나리오 선집≫은 2004년 한국 영화의 흐름을 요약하면서 동시대에 가장 뛰어난 작품성과 시나리오 완성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책의 특징]
시나리오 작가 출신 공수창 감독이 연출한 [알포인트]는 공포 영화의 이런저런 기본에 충실한 영화다. 1972년 베트남 전장의 한복판, 6개월 전 작전 지역 로미오 포인트(알포인트)에서 사망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군 부대로부터 의문의 구조 요청이 날아들고, 최태인 중위(감우성) 휘하 부대원들이 수색에 나선다. 알포인트에 도착한 이들에겐 정체불명의 사건들이 벌어지고, 부대원들 스스로의 정신착란이 펼쳐진 뒤 공포의 실체가 밝혀진다.
[알포인트]의 목적은 명확하다. 전쟁이 억압한 인간의 자아를 공포 영화의 문법으로 기술하는 것이다.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하얀 전쟁]의 이야기를 만들었던 감독의 전력으로 볼 때 [알포인트]가 지닌 현실 반영의 강한 사회 역사적 맥락은 당연한 결과다. 공포 영화는 사람 놀래키는 재주로도 비범한 장르지만, 기실 어떤 장르보다 사회적 현실을 상징적으로 반영하는 데 민감한 장르이기도 하다. [알포인트]는 공포 영화의 이 같은 본질을 충실히 따른다. 영화는 알포인트 지역에 출몰하는 원혼과 환각의 말초적 공포에서 그 뒤에 도사린 전쟁의 악마적 표정까지 어느 것 하나 잊지 않고 불러들이고, 부대원들에게 벌어진 외상적 사건과 각 개인의 심리적 착란을 균형감 있게 배치하는 데 보기 좋은 솜씨를 발휘한다. 거기엔 베트남전 당시의 알포인트라는 해당 시공간의 특정 공포도 존재하지만, 전쟁을 기제로 드러난 인간 문명의 오랜 폭력의 그림자도 담겨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정황 속에 충돌 없이 공존한다. [알포인트]는 표현되어야 할 각 요소들의 수사학적 한계와 배분에 있어 오랜 고심의 흔적을 보이는 영화다. (중략)
_[작품 해설]중에서
[머리말]
혁신과 변종을 넘나드는 다양한 실험들
2004 한국시나리오선집 심사 총평
2003년의 한국 영화는 2004년에 두 가지 유산을 남겼다. 하나는 박찬욱 감독 등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신작가주의의 징후였으며, 다른 하나는 해가 바뀌는 시점에 형성된 천만 명 관객 시대의 도래였다.
2003년엔 주목할 만한 세 편의 영화가 등장했는데, 그것은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와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였다. 이 세 편은 각각 다른 결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공통적으로 감독의 역량에 거의 모든 것이 맡겨졌다는 점에서 신작가주의의 태동을 알렸다. [지구를 지켜라!]는 영화광 세대가 배출한 감독이 자신이 흡수했던 각종 영화적 취향에 거칠 것 없는 상상력을 결부시킨 한국 영화계의 돌진적 사생아였다는 점에서, [살인의 추억]은 작가적 세공력을 2003년의 주요한 키워드 중 하나인 웰메이드 영화의 조건들과 머리 좋게 악수시켰다는 점에서, [올드보이]는 지극한 비주류 취향의 작가성이 대중의 결핍된 욕구와 결합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각각 다른 표정을 지었지만, 바로 그러한 점들의 다층적 분포로 인해 이후 한국 영화들에 연출자의 강력한 선도와 상상의 확장을 촉발시킨 새로운 형태의 작가주의를 탄생시켰다. 신작가주의의 태동은 감독의 사유 체계가 전적으로 상업영화의 논리와 이별했던 과거에 비해 관객들에게 소구될 수 있는 상업적 바탕을 유인했다는 면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20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오로지 두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전대미문의 풍경이 펼쳐졌다.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는 은폐된 역사에 대한 관객들의 공격적 분노를 신파로 마감 처리해 파장을 일으켰으며,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 영화 기술력의 진일보와 함께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대작 영화가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선포했다. 천만 명 관객 시대가 남긴 것은 이렇듯 외연적으로 확장된 한국 영화 시장의 내면을 어떻게 하면 촘촘히 다질 수 있을 것이냐에 관한 만만치 않은 숙제였다. 과연, 극장 스코어가 천만 명을 돌파함과 동시에 한국 영화 산업의 외강내핍형 부실에 관한 우려들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역설적으로 천만 명 관객 시대는 한국 영화 위기론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이제 공은 2004년으로 굴러들어왔다. 연출자들의 능력을 갈구하는 신작가주의의 분위기는 충무로에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영화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켰으며, 천만 명 관객의 성과는 영화계에 더 많은 자본이 투여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 그런데 천만 명 관객 시대의 비약적 풍요는 그 시작부터 투자자들과의 역설적인 동거를 예상하고 있었다. 한국 영화계에 진입한 금융 자본을 비롯, 각종 펀드와 자본들은 상업적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에 집중적으로 돈을 쏟아부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시점에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대성공을 거두자 자본의 촉각이 다시 곤두섰고 언제든 돈을 끌어들일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충분해졌다. 하지만 천만 명 관객을 모은 두 영화와 같은, 제작비 100억 원을 호가하는 프로젝트가 하루아침에 착수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라는 상품의 자본 단기 회수성을 눈여겨 본 자본 주체로선 대체재가 필요했고, 충무로의 입장에서도 눈앞에서 돈이 사라지는 걸 두고 볼 순 없었다.
이 간극에 등장한 것이 30억∼50억 원 제작비 규모의 중급 프로젝트들이었고, 이들이 신속히 후속작을 낼 수 있는 요충지는 바로 시나리오였다. 상업적 가능성을 인정받은 신작가주의가 극장가에 전진 배치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 역시 바로 새로운 상상력으로 무장한 신선한 이야기, 곧 답습을 벗은 시나리오였다(2004년 개봉작 중 호평을 받은 영화의 대부분에서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은 상상력의 원천이 신작가주의에 포함된 감독들 자신이었음을 말해준다). 이렇게 2003년으로부터 넘겨받은 신작가주의와 천만 명 관객 시대의 키워드는 상업적 접점을 찾는다. 2004년에 등장한 중급 제작비 규모의 다양한 영화들이 이전에 비해 더욱 강화된 시나리오로 질주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같은 요인이 작용하고 있었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