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압도적인, 대폭발하는, 새로운 차원의 스케일을 보여주는 SF 작가의 출현 “시간을 역행하고 시간을 사로잡고 시간을 꿰뚫을 김필산, 시간을 책으로 엮고 그 책을 다시 시간에게 돌려줄 김필산.” _우다영(소설가) 김필산 작가의 『엔트로피아』가 허블에서 출간되었다. 김필산은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가작을 수상하며 등장한 신인 소설가로, 이 작품은 그의 첫 단행본이자 장편소설이다. 2022년 수상작을 통해 “박식한 수다스러움이 일품”이며 “기포처럼 솟아나는 질문들이 재밌”(김성중 소설가)다는 평을 받은 그의 소설은 그동안 한국 SF계에서 보기 쉽지 않았던 광활하고 폭발력 있는 스케일과 활력을 창안해 마치 우주 끝으로 내달리듯 서사를 밀어붙인다. 소설은 2200년 미래 한국에서 깨어난, 아니 죽음으로부터 일으켜져서 살아가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지구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르며 A.D. 100년 로마 제국 시기까지 2,000여 년 동안 거꾸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가 겪었던 시공간적 배경인 ‘거란’, ‘중세 동로마 제국의 코르도바’, 그리고 ‘미래 서울’에서 벌어진 일을 천일야화처럼 홀릴 듯 풀어낸다. 가히 인간의 시간에 대한 장대한 규모의 서사라고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필시 정해져 있기 마련이지만 언제고 뒤바뀔 수 있는 ‘시간’의 살아 있는 다채로운 모습을 이야기를 통해 풀어낸다. “한국에서 시도되지 않은 스타일의 작품”(김희선 소설가)이며 “고대와 중세의 자연철학과 현대의 첨예한 기술을 매끄럽게 버무”리는 “도서관의 광활한 세계를 누비는 소설”(인아영 평론가)이라는 찬사에 걸맞은 경이로운 장편소설이다. 허블에서 SF계의 이 대형 신인의 소설을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이유다. 김필산식 경이로운 천일야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나는 미래로부터 왔다네.” “첫 번째 책에 대해 흥미 있어 하고, 두 번째 책에 대해 충격과 감동을 받으며, 세 번째 책에 대해 화를 내며 분노할 것이네.” A.D. 400년경, 로마 제국의 서쪽 히스파니아에서 이루어진 한 대화 장면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한 장군과 필경사는 선지자라 불리는 사람을 찾아갔다. 제국의 앞날을 걱정하며 게르만족으로부터 제국의 영토를 지켜낼 수 있을지 물어보려는 요량이었다. 하지만 웬걸. 선지자라면 무릇 세상 이치에 도가 튼 노인의 형상이어야 할진대, 웬 아이가 서 있지 않은가. “나는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경험하고 느끼기에, 죽음에서부터 일어났고 태어남으로 가는 중이네.” _19쪽 사실 그 선지자는 1,800년 동안 살아오며 노인에서 거꾸로 점차 청년으로, 이제 아이의 모습으로 변모해 온 것. 그는 장군과 필경사에게 세 가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리라 말한다. 흥미로울 만한, 이윽고 충격과 감동을 받을, 끝에 가서는 길길이 날뛰며 분노하게 될 세 가지 이야기에 관한 책. 액자소설 형태를 띤 『엔트로피아』는 선지자가 살아온 1800년 동안의 연대기를 따라간다. 살면서 어떻게든 마주했던 시공간인 ‘거란’과 ‘중세 동로마 제국의 코르도바’, ‘미래 서울’에서 다채로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거란의 마지막 예언자’에서는 등장하는 수상한 한 남자. 모습은 서양 사람이지만, 몽골어와 한어를 쓰고 말을 거꾸로 타고 있는 한 남자. 그는 12세기 선지자의 모습일까. “미래 또한 (정해진) 역사”라는 시간관 및 시간을 반대로 느끼는 감각에 대해 솔깃하게 서술된 이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흡입력 있는 거란 황실의 궁정 활극으로, 암계와 혈투, 로맨스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며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제목 그대로 ‘책이 된 남자’와 소통하는 책 사냥꾼에 대한 이야기다. 천재 연금술사가 어떤 천재 번역가를 책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야기. 뇌를 얇게 썰어 금속 침으로 그 뇌의 생각을 측정해 종이에 옮기는, 그리하여 한 인간의 육신은 3,000여 장 분량의 책이 되는데…. 기발하고 기이한 이 이야기는 시간에 대한 서사일까. 인간 인식을 넘어서는 어떤 시간, 혹은 시간에 대한 인간의 상대적 인식. “책을 쓰는 것과 책이 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냐고요? 책을 쓰면 제 생각이 영원히 수많은 사람에게 읽히게 됩니다. 끔찍한 일이죠. 그러나 스스로 책이 된다면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_188쪽 “책은 영원하고, 그 영원한 시간 동안 너 말고 누군가가 계속해서 내 시간을 흐르게 할 것이다.” _205쪽 흐르는 시간의 변화무쌍한 모습에 대한 장대한 픽션 “미래가 없다면, 미래를 앞서 차지하자.” 이처럼 시간에 대한 서사를 다채롭게 구사하는 소설은,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그 충격적인 대미를 장식한다. 시공간은 2100년대를 전후로 한 미래 서울. 이때는 시간여행이 가능하다.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혹은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를 만날 수 있다. 시간철도를 통해서. 미국이 시간철도를 처음으로 개통한 2047년, 예상에 없던 철도 한 량이 도착했고 미래에서 온 이언 미치닉이 노트북 하나를 들고 내렸다. 그 노트북엔 앞으로 일어나게 될 세계의 역사에 대한 정보, 저자가 기재되지 않은 물리학 논문, 시간철도 인프라 설계도, 운영 매뉴얼 등 시간여행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다 들어 있었다. 과거인들은 그냥 그걸 따라 했다. 그리고 이 세계가 완성되었다. 시간여행의 세계. _244~245쪽 이 시기 서울은 과거 서울과 미래 서울로 나뉜다. 공간이 아니라 시간축으로 국가가 쪼개질 수도 있다는 것. 그리하여 과거와 미래, 부모 국가와 자식 국가가 존재하게 된다. 소설에서는 2088년 조부진 대통령이 집권한 서울은 2189년 표민준 대통령 시기의 서울을 침공한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심각한 저출산과 인구 감소, 서울 집중 현상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이 아예 소멸하여 그 거점의 제조업이 몰락하기 때문에, 서울은 오히려 고립되며 한국 사람은 소멸의 길로 접어든다. 그때 조부진 대통령은 재빨리 계엄을 선포한다. (계엄이라니?! ‘작가의 말’에서 김필산은 “2024년 12월 이후 신기하게도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 캐릭터에 현실성을 덧붙여 주었”다고 밝힌다.) 이 흥미로운 설정 속에서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될까. 고정된 미래의 역사는 바뀔까. 다중역사선은 어떻게 펼쳐질까. 웰메이드 대하 정치소설처럼 엄청난 흡입력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 유려한 문체와 위트 있는 말솜씨가 어우러진 이 김필산식 천일야화에 한동안 우리의 눈과 뇌를 맡겨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