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프리카 요리는 없을까?”
‘먹기, 쓰기, 사랑하기’ 문명을 읽는 척도가 바뀐다
문명을 읽는 프레임을 바꿔 놓은 역사인류학의 거장,
한층 넓어진 인식의 지평으로 세계 문화를 조망하다
수많은 문화와 문명들을 해석하는 데 이용되는 ‘서양’과 ’동양’이라는 조야한 이분법과, 늘 서양 문명과 사회를 우위에 두는 이제까지의 문화 연구에 날카로운 비평을 던지기로 정평이 나 있는 잭 구디. 이 책은 ‘가족, 음식, 사랑, 글쓰기 문화’라는 보편적 키워드들로 세계 문화의 발달과 개성, 공통점을 읽어가며 유럽에서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문명의 교류와 진보를 편견 없이 발견해낸다.
구디는 근대화에 관한 현대의 역사학·사회학적 관념들은 물론이고 고전적인 이론가들의 사상에서의 사회 발전에 관한 논쟁들을 훑어 내리며, 우리 삶의 가장 내밀한 과정 속에 깔려있는 역사와 문명의 흔적을 추출해낸다. 왜 어떤 음식은 ‘요리’가 되어 세계에 팔리고 요리책으로 기록되는데 어떤 음식은 그저 생존을 위한 먹을거리로 남는가? 문자문화는 어떻게 그저 남녀가 만나 ‘낳는’ 과정에 로맨스라는 옷을 입히는가? 이런 ‘문명적인’ 과정이 과연 서양에서 먼저 일어났다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문명의 지표는 동쪽과 서쪽이 아니라 ‘괭이’와 ‘문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탐색을 통해 구디는 서양의 독특성을 동양에 대한 우월성의 근거로 삼는 서구중심사관에 일침을 가하며, 서양 대부분 학문의 자민족중심주의가 동양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유럽의 과거와 현재의 발전까지 왜곡한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 잭 구디의 키워드 맛보기
-계급, ‘많이’ 먹기와 ‘다르게’ 먹기? 고급 요리는 계급의 분화가 일어난 사회 특유의 현상이다. 상층계급과 하층계급 문화가 구체화되지 않은 문화에서는 지배층은 피지배층보다 더 ‘많이’ 먹었을 뿐 피지배층과 같은 음식을 먹었다. 그러나 계급 차이가 발달한 문화에서 상층계급은 하층계급과 다른 희귀한 재료와 정교한 조리법으로 자신들만의 ‘먹는 문화’를 만들었고, 사치금지법을 통해 이 ‘다르게’ 먹는 특권을 독점하려 했다.
-왜 아프리카 요리는 없을까? 고급 요리는 일단 정교화된 계급 분화가 있고 나서 생겨나고, 문자로 기록되며 발전된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계급이 정교하게 분화되지 않았고 지속적인 문자 전통도 없었던 아프리카의 요리는 고급화되고 기록되어 세계에 선보이지 못했고 또한 레스토랑처럼 자본화되지도 못했던 것이다.
-사랑이 있은 후에 인생이 있다? ‘로맨틱한 사랑’은 일단 개인이 자아를 강하게 인식하고 자신의 삶을 한 편의 드라마, 곧 이야기로 받아들일 때 일어나는 고도로 문명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맨틱한 사랑이 개인의 삶에 이식되었을 때 비로소 인생이라는 내러티브가 생겨났다는 말로도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서양은 물론 동양에서도 로맨틱한 사랑 없는 결혼이 불명예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면 현대인의 인생에 있어 로맨틱한 사랑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문자가 있고나서 진짜 장사가 시작된다? 문자는 사람들의 문학과 역사 기록으로 정신세계를 정교화 시킨다는 ‘고상한’ 현상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다. 상인들의 손에 들어간 문자는 회계 장부와 거래 기록이라는 더없이 실리적이고 효율적인 목적을 위해 활용되고 발전되었다. 다양한 문화에서 이런 과정을 통해 회계 방식이 안정적으로 정립되자 상업 자본주의의 세계적인 발달을 촉진했던 것이다.
-이슬람 학자에게 그리스 철학을 배우다? 서구의 사상계는 그리스 철학자들의 찬란한 유산을 그대로 계승했을까? 그렇지 않다. 로마 이후 그리스도교 신앙 아래 서양은 파괴적인 수준의 지식 상실을 겪었고, 오히려 지적 전통으로 돌아가기 위해 근동의 학자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유대계 이슬람 학자인 이븐 루슈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저작을 언급하며 서양에 소개했다. 문자로 기록된 학문은 이런 독특한 발견과 계승을 가능하게 한다.
잭 구디가 주로 다루는 음식, 사랑, 문자라는 세 가지 키워드는 분절된 것이 아니라 문명 속에서 하나로 얽혀 나타나는 현상이다. 음식 만들기와 먹기는 그저 생존만을 위한 행위가 아니다. 계급과 사회 구성이라는 거시적 범주에서부터 조리법과 입맛에 이르는 미시적 범주까지 ‘먹기’의 위력은 문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척도로서 작용한다. 로맨틱한 사랑도 결코 ‘자연스러운’ 사랑의 모습이 아니다. 자아 성찰과 고급한 내러티브 형식, 그리고 여성의 지위가 확보되어야 성립되는 현상으로 사회 구성원의 정신이 어느 정도 문명화 되었는지를 나타내 주는 지표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 두 키워드는 부의 축적으로 정교화된 문명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며, 문자는 위의 두 현상을 촉진시켰다. 문자와 문명의 관계라고 하면 흔히 역사와 문학을 떠올리지만, 사실 문자의 힘은 회계 장부에서부터 요리책에 이르는 수많은 기록 문화에 그 위력을 떨친다. 자기 성찰적이고 사색적인 도구인 문자를 통해 발전시킬 수 있는 논리적 사고, 로맨틱한 사랑, 편리하고 다양한 기록 기법을 동서양은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자를 가진 문명만이 우월하다거나 이런 것들이 서양에서 태동했다는 논리를 펼치는 것은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현상들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왔으며, 문자문화에서는 물론 구술문화에서도 비슷한 현상들이 꾸준히 등장했지만, 기록하고 계승하며 그런 현상들이 표출되는 과정에서 문자문화가 조금 더 우위를 차지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구디 자신이 주로 연구했던 서아프리카 로다가족의 구전 신화를 예로 들며, 구술문화에서도 문자문화의 주요한 특징인 ‘논리’, ‘사랑’과 ‘개인주의와 회의주의’가 나타남을 역설한다. 이런 탐색을 통해 문화적 편견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유럽 학자들의 자민족 중심적인 시각의 연구 활동을 비판하고 있다. 이제 그의 키워드로 뽑아낸 사례들을 훑어보자.
잭 구디의 연구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문명이란 서로 뒤섞이고 이끌며 함께 가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눈에 띄는 진보나 뒤처짐을 볼 수는 있지만, 어떤 것이 우월하고 어떤 것이 열등하다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지배 아래 파괴된 서양의 지식 전통이 이슬람 철학자의 소개로 다시 서양에 소개된다. 유럽을 흐르는 로맨틱한 사랑의 언어는 근동의 전통적인 연시(戀詩)에서 발전의 계기를 얻는다. 도시 문화가 발달한 중국의 음식점 요리는 세계 곳곳으로 침투해 요식 산업의 표본이 되었다. 이런 현상들이 말하는 사실은 문명과 문화를 볼 때 단정과 결론이 아닌 연속과 이해의 시각을 택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어떤 사회도 특별히 뛰어나거나 앞서 있지 않으며 세계의 모습은 여러 문명이 함께 뒤섞이며 발전해 온 결과이며,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나아가며 변화해가는 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