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문장가 이덕무의 글로 만나는
나를 경영하는 지혜, 나를 바르게 하는 공부
18세기 조선의 문예 부흥을 주도한 문장가이자 북학파 실학자로 알려진 이덕무가 젊은 날에 쓴 자기 다짐에 대한 글들을 한자리에 모은 『열여덟 살 이덕무』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서얼 출신의 이덕무는 절박한 가난 속에서 스승 없이 혼자 공부하며 바른 정신을 지니고 살고자 날마다 하루하루의 다짐을 적고 또 적었다.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18세기 지성사를 탐구해 온 우리 시대의 고전학자 정민이 그중 네 편의 글을 엮고 해설을 달았다. 생활의 다짐과 공부의 자세를 스스로 끊임없이 되새기고자 적은 이덕무의 글에는 온유하고도 굳건한 품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덕무가 이 글을 쓴 나이보다 세 배는 더 산 내가 그의 젊은 시절의 글을 읽고 감상을 달면서, 나는 인간이 과연 발전하는 존재인가를 물었다. 문화가 진보를 거듭했다고 하나 삶은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도 했다.” “이덕무는 내 뼈에 새겨진 이름이 되었다. 그를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짠하고 또 따뜻해진다.”- 정민
이 책은 이덕무가 열여덟 살에서, 스물세 살 나던 젊은 5년간의 기록들이다. 메모광이던 그는 생계를 위해 엄청난 양의 책을 통째로 베꼈다. 늘 빈 공책을 놓아두고, 좋은 글귀와 만나면 그때마다 옮겨 적었다. 스쳐지나가는 단상도 붙들어 두었다. 이 과정에서 건져 올린 짤막짤막한 말씀의 언어들이 문집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세월과 정신은 한번 시들면 다시 되돌릴 수가 없으니 눈앞의 시간을 아껴 소중하게 보내야 한다는 뜻을 담은 『세정석담』, 공부하며 스스로 경계로 삼아야 할 내용을 짤막한 글로 써서 모은 『무인편』, 쾌적한 인생을 살기 위한 여덟 단계 『적언찬』, 어린 두 누이를 생각하는 오빠의 마음을 담은 『매훈』. 이 네 편의 글들은 젊은 날 이덕무의 초상 그 자체다.
우리 시대의 대표 고전학자 정민,
젊은 시절 이덕무의 인생관을 한 권에 엮다
평생 마음의 평정을 지킨 이덕무의 청신한 삶의 자세
이 책은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1부『무인편(戊寅篇)』은 이덕무가 열여덟 살 때 쓴, 자기 다짐을 담은 짧은 글 모음으로 모두 서른여덟 단락이다. 처음 썼던 글을 잃어버리고는 근 5년을 보지 못하다 문득 문서 더미 속에서 되찾은 후 이덕무는 다시 한 자 한 자 정성껏 베껴 써서 자신의 문집 속에 포함시켰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스승을 모시고 공부할 형편이 못되었던 그는 책을 빌려 읽으며 혼자 공부하며 스스로 경계하였다. 자기를 경영하는 지혜와 공부의 자세를 되새긴 이 글에는 어려서부터 노성한 그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2부 『세정석담(歲精惜譚)』은 세월과 정신은 한번 시들면 다시 되돌릴 수가 없으니, 눈앞의 시간을 아껴 소중하게 보내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 이덕무는 스물세 살 때 이 글을 썼다. 세월은 쏜살처럼 흘러가고 정신은 금세 소모되고 만다. 세상에 가장 아까운 것이 세월과 정신이다. 강물처럼 흘러가는 세월 속에 어떻게 내 정신을 바르게 지켜 아깝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약관을 넘긴 청년은 열두세 살 적부터 날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 아까운 세월에 바른 정신을 지니며 살고자 책상 위 공책에 날마다 하루하루의 다짐 같은 것을 적고 또 적었다.
3부 『적언찬(適言讚)은 이덕무가 20대 초반에 쓴 글이다. 1775년경 윤광심(尹光心, 1751~1817)이 펴낸 『병세집』에 수록되었으니, 스물셋 되기 전에 쓴 글이다. (젊은 날 가깝게 지냈던 벗 윤가기가 『적언(適言)』이란 제목의 책을 썼던 모양이다. 현재 남아 있지 않은 이 책은 인생을 쾌적하게 건너가기 위해 거쳐야만 할 단계를 모두 여덟 가지로 정리하여, 단계별로 새겨야 할 말을 정리한 내용인 듯하다. -정민) 이덕무는 윤가기의 『적언』이란 책의 여덟 장절에 얹어 각각 4언 16구로 시를 지어 벗의 책에 대한 찬사로 선물했다. 젊은 날 이덕무의 감각과 개성, 그리고 그가 꿈꾼 인생 설계가 담겼다. 쾌적한 삶을 위한 여덟 단계는 ‘식진(植眞)-관명(觀命)-병효(病殽)-둔훼(遯毁)-이령(怡靈)-누진(耨陳)-간유(簡遊)-희환(戱寰)’이다. 진실을 심되(讚之一植眞), 운명을 살피고(讚之二觀命), 잡다함을 멀리하여(讚之三病殽), 비방을 피한다(讚之四遯毁). 정신을 늘 기쁜 상태로 유지하면서(讚之五怡靈), 진부함을 배제하고(讚之六耨陳) , 벗 사귐을 잘 살펴(讚之七簡遊), 주인공으로 웃으며 세상을 건너갈(讚之八戱寰) 때 인생의 쾌적함이 내 안에 비로소 깃든다는 내용이다.
4부 『매훈(妹訓)』은 열다섯이 되어 가는 두 여동생을 위해 오라비 이덕무가 스물한 살 때 쓴 훈계의 글이다. 오누이 간에 우애가 좋아서 과일 하나도 꼭 셋으로 나누어 먹고 다툰 적이 없었다고 한다. 열여섯 단락의 훈계의 글에서 이덕무는 화순(和順)을 특히 강조한다.
네 편의 글에서 드러나는 이덕무의 삶에 대한 자세와 통찰은 오늘 우리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