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황동규 · 시
1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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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황동규의 열한번째 시집. 이순(耳順)의 시인이 외로움을 딛고 견고한 서정성으로 빚어낸 "홀로움"의 시편들을 엮었다. 1997년부터 1999년 12월까지 3년여의 기간동안 다져진 시인의 감성을 담았다. 작가는 이 시집을 1997년 1월 이비인후과 수술과 그 수술후유증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곧바로 들이닥친 IMF와 전방위 자본 전쟁, 그리고 정보화. 이렇게 빠른 것만 취급하고 안보다 밖을 더 중요시하는 세상에서 시인은 편한 것보다는 편하지 않은 삶을, 빠른 흐름을 방해하는 ?汰? 여울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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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부 (1997.1~1997.7) 1. 퇴원 날 저녁 2. 재입원 이틀째 3. 지상(地上)의 양식 4. 딸애를 보내고 5. 캘커타 가는 길 6. 봄날에 베토벤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며 7. 부활 8. 산당화의 추억 제2부(1997.8~1998.1) 1. 버클리 시편 1 2. 토요일 저녁 3. 버클리 시편 2 4. 버클리 시편 3 5. 버클리 시편 4 6. 버클리 시편 5 7. 바우아 데비의 그림 8. 산책길에서 9. 외따로 핀 꽃들 10. 첫 비 내리는 저녁 11. 세일에서 건진 고흐의 별빛 12. 베르미어의 고요 13. 정선의 금강산도 14. 죽음의 골을 찾아서 15.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16. 1997년 12월 24일의 홀로움 17. 마지막 산책길 18. 안개 속의 전화 제3부(1998.2~1999.12) 1. 범종 소리, 들어갈 수 없는 2. 1998년 5월의 문답 3. 원두 커피 든 가방 4. 어려운 것들 1 5. 어려운 것들 2 6. 땅 춤 7. 옛 지도 8. 안개의 유혹 9. 황국(黃菊) 몇 송이 10. 겨울 간월도에서 11. 인간의 꿈 12. 봄비 13. 속됨이여, 나의 삶이여 14. 어느 초가을 날 15. 외옹치 16. 몸 비운 배 17. 어떤 은유 18. 혼(魂)을 쫓다 19. 봄 바다 20. 희한하다 아파트 속에서 21. 무명(無明) 속에서 22. 수련(睡蓮) 23. 기억이 지워지면 24. 소유언시(小遺言詩) -해설 : 마른 우물, 에로스, 설렘 / 이문재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개요] 황동규의 시는 정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황동규 시인이 열반 속을 걸어 열반 밖으로 나가듯이, 사람 속을 걸어 사람 밖으로 나가듯이, 우리는 진짜 우리가 되기 위하여, 자신의 ‘홀로움’과 만나기 위하여 ‘시 속을 걸어 시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해설] 마른 우물, 에로스, 설렘 이문재 열반에 머문다는 것은 열반에 속박되는 것이다. ―원효 황동규의 시에서는 건초 냄새가 풍긴다. 그러나 저 바싹 말라 있는 언어들은 정지해 있지 않다. 저 마른 이미지들은 일상적 공간에 놓여 있는 자잘한 소품들의 손을 잡고, 생/‘나’의 안팎에서 무겁도록 가볍고, 또 아득할 정도로 깊어서, 생의 갈구와 그 못미침을 눈부신 속도로 그려낸다. ‘마른 우물’에서 길어올려진 저 건조함들은 그러나, 촉촉한 습기와 환하고 은은한 빛을 바라 마지않는 것이어서 죽음의 국면을 넘어서고 있다. 바싹 말라 있음은 나이듦과 ‘홀로움’으로부터 촉발되고 있다. 리비도가 삶을 추진하는 본능적 에너지라면, 그 리비도는 흥건하게 젖어 있어야 마땅하다. 황동규의 이번 시집은 리비도의 건조한 바깥에서 다시 촉촉한 리비도의 안쪽으로 회귀하는 원환 안에 있다. 마른 우물에서, 그러니까 고장난 몸에서 시작한 그의 여정은, 뻔뻔스런 문명을 가로질러, 습지의 고향과 해후한 다음, 바닷가에서 태초의 신화와 마주한다. 그 소생과 부활의 여정의 주인공이 에로스이다. 이번 시집에는 몇 개의 키 워드가 내장되어 있다. 에로스·자동차·홀로움·극서정시(시공간의 병치)와 같은 키 워드들이 강력한 자장으로 언어들을 끌어안고 있다. 에로스적 이미지라는 자석을 들이대면, ‘마른 우물’은 역설임이 곧 드러난다. 자동차라는 렌즈를 통해서 보면, 그의 시들은 기계 문명을 놀라운 방식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시의 새로운 형식이자 내용인(형식은 내용을 부르고, 내용은 형식을 부른다) 극서정시를 염두에 두면, 그의 시쓰기 전략을 어렴풋하게나마 읽어낼 수 있다. 거개의 시집이 그렇듯이 시집에 실린 첫번째 시는 서시일 때가 많다. 음악에 견주자면, 제1테마가 등장한다. 「퇴원 날 저녁」으로 들어가 보자. 거기에는 에로스와 자동차가 있으며, 시적 자아의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제1테마가 아니라 제3테마까지 다 들어 있는 것이다. 시의 화자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흑반(黑斑) 잔뜩 끼어 죽어가는 난 잎 어루만지며” 밖을 내려다본다. 난은 생명이지만, 야생/자생하지 못하고 인간의 보살핌에 의해 생명을 부지하는 인공의 생명이다. 첫 행이 환기하는 생명의 위기는 제목 ‘퇴원 날 저녁’의 심리적 상태를 구체화하는 한편, 난이 곧 시적 자아임을 일러준다. 날은 이내 추워지고 주차장에 세워놓은 자동차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 자동차는 미등이 켜진 채 멈춰 있다. “오른쪽 등 껍질이 깨졌는지/두 등 색이 다르다.” 시집 뒷표지 글에도 밝혀져 있거니와, 이 시는 시인이 1997년에 오른쪽 귀에 메스를 댄(진주종 수술) 직후의 마음의 지도이다. 안경을 한번 벗었다 다시 낀다. 눈발이 한번 가렸다가 다시 빨갛고 허연 등을 켜놓는다. 그러니까 자동차의 오른쪽 미등은 시인의 오른쪽 눈이었다. 미등의 등 껍질은 시인의 상한 망막이었으니, 다시 켜진 ‘빨갛고 허연’ 미등은 시인의 두 눈이었다. 한쪽 눈은 빨갛지만, 한쪽 눈은 허옇다. 정상과 비정상, 생명과 죽음을 은유하는 등불이다. 허연 미등이라는 흰색의 이미지는 시집 후반부에 가서 “허연 시간의 마지막 칸”으로 변주되면서 죽음의 이미지를 강하게 드러낸다. 난 잎을 어루만지며 주인이 나오기 전에 배터리 닳지 말라고 속삭인다. 다시 만날 때까지는 온기 잃지 말라고 다시 만날 때까지는 눈감지 말라고 이 지점에서 난과 자동차는 동일한 ‘신분’을 획득한다. 유구한 시적 언어인 난과, 일상화한 지 채 20년이 되지 않은 자동차는 우리 현대시에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저 두 단어는 전근대와 (탈)근대의 상징이 아닌가. 그러나 황동규에 의해 자동차는 당당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현대시의 언어로 등재된다. 그것도 생명의 영토 안에서. 배터리에 연결되어 있는 자동차 후미등과, 인간의 보살핌에 생사 여부가 달려 있는 난초. 이 시에서 깨진 후미등과 흑반 낀 난초는 기계와 자연으로 서열화하지 않는다. 난/생명이 기계/문명 앞에서 우월하지 않다. 시인 앞에서 후미등은 “치운 세상에 간신히 켜든 불씨”이다. “이 세상에 함께 살아 있는 그 무엇의” 불씨. 퇴원한 날 저녁, 하나밖에 없는 생명의 소중함을 재확인한 시인은 인간과 생명, 인간과 기계로 이루어진 세계를 향해 속삭인다. 이때의 속삭임은 에로스의 목소리이다. 그리하여, 난이 점차 뜨거워진다. 저녁 비가 눈으로 바뀌는 차가운 세상. 눈 내리는 어둠. 안경을 벗었다 다시 끼우면서 시적 자아는 존재의 질적 변화를 예비한다. 안경으로 변주되었던 자동차 후미등은, 생명의 불씨가 사라지고 있는 캄캄한 세계를 향하여 사랑을 애원하는 에로스를 발음한다. 난이 점차 뜨거워진다. 배터리는 아직 닳지 않은 것이다. 시적 자아는 흔쾌히 질병으로부터 소생하여, 회복실 문을 열고 나가 자동차에 시동을 건다. 모두 50편의 시로 구성된 이번 시집에서 자동차가 등장하는 시가 15편.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빈도 수다. 황동규의 시에서 자동차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여행을 떠나는 도구이면서, 여행의 과정이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시인의 분신/의인이기도 하다. 그의 시는 자동차를 타고 떠나고 자동차를 타고 돌아온다. 그와 시 사이에는 자동차가 있다. 그가 올라서 있는 길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길이 아니다. 삶의 우여곡절을 은유하는 낡은 길이 아니다. 가드레일과 차선이 분명한 고속도로/국도이다. 그의 시는 길이 아니라 도로 위에서 속력을 낸다. 「퇴원 날 저녁」에서 살펴보았듯이, 그에게 자동차는 낯선 기계 문명이 아니다. 외부/타자가 아니다. 자동차는 그의 신체이다. 그에게 있어 자동차는 김유신을 술집으로 인도한 그 말이다(「어느 초가을 날」). 마른 우물에서 출발한, 아니 말라서 상처난 망막을 지닌 채 길을 떠난 에로스는 도처에서 바싹 말라 있는 것들과 마주친다. 「캘커타 가는 길」. 북인도의 새벽을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나’는 홀로 거대한 대지의 일출을 목격한다. 혼자 있고 또 말라 있는 ‘나’는 우선 진로 팩 소주와 차(茶)로 몸과 마음을 적신다. 에로스가 되기 위한 예비 동작. 일출이라는 장엄한 탄생, 생명의 스펙터클은 말라 있음으로는 맞이할 수 없는 법. 일출은 ‘나’가 젖어 있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이윽고 하늘이 해를 힘껏 끌어올린다. “나체의 해가 완전히 떴다.” 충분히 젖어 있지 않은 에로스는 차를 한 잔 더 마시고, 달리는 기차(달린다는 점에서는 자동차와 다름없다) 안에서 “마른 강 두 줄기”를 본다. 두 강 줄기는 새벽 대지를 달리는 철로를 따라 나란히 흘러가기도 하고, 불현듯 헤어지기도 하고, 문득 멈춰 서기도 한다. 마른 강 두 줄기는, 말라 있는 에로스의 내부에 있는 ‘나’일 터. 마른 우물 안에서 늙음과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려는 ‘나’와, 그것을 거부하는 ‘나.’ 마른 두 강 줄기는 시의 마지막 연에서 기다렸다는 듯 서로 바싹 마른 몸을 껴안는다. 몸의 접촉, 사물과의 접촉에서 생명을 되살려내는 에로스적 이미지는 끊이지 않고 반복과 확장을 거듭한다. 끌어안음과 같은 부드러움은 간혹 사지 절단(「부활」)이나 긁힘(「산당화의 추억」)과 같은 보다 자극적인 접촉으로 진화하면서 살아 있음의 황홀을 도드라지게 한다. 이번 시집에서 가장 빼어난 시편 가운데 하나인 「산당화의 추억」은 손을 주어로 삼아 화석화하고 있는 생의 감각을 복원하고 있다. 삶은 마음의 지휘만을 받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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