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기억을 일깨우며, 행동하게 만든다.
은밀하게 스며들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서점에서 숲속에 있는 것 같은 상쾌한 향이 나요!”
서점에 들어서는 순간, 특유의 향이 느껴진다. 매우 은은하고 고르게 퍼져 있어 고객들은 자신이 지금 향을 맡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쩐지 서가를 거닐수록 마음이 더 차분해지고 여유로워지는 것 같다. 이는 서점이라는 특수성 때문만은 아니다. 교보문고가 개발한 ‘책향(더 센트 오브 페이지The Scent of Page)’이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교보문고는 2015년부터 향기 마케팅에 주목하여 시그니처 향인 ‘책향’을 개발했다. 유칼립투스와 편백나무 향을 기반으로 제작된 이 향은 원래 매장 사용만을 목적으로 했으나 고객 요청에 따라 지금은 룸스프레이, 디퓨저, 종이방향제 등 다양한 형태의 제품으로 생산, 판매되고 있다. 이제 고객들은 교보문고에서 느끼는 편안함을 개인 공간에서도 느낄 수 있다.
미세먼지와 코로나19 때문에 늘어난 실내 생활,
후각의 역할이 중요해지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심각한 수준의 미세먼지와 세계를 팬데믹에 빠뜨린 코로나19 사태로 인류는 ‘숨 쉬는 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있다. 기분 좋은 쾌적한 공기를 마음껏 맡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상이었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인간의 다섯 감각(시각ㆍ청각ㆍ촉각ㆍ미각ㆍ후각) 중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던 것이 지금 시대에 가장 중요한 감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독일의 향기 콘셉트와 향 공학 분야의 개척자이자 향 관련 산업을 이끌고 있는 센트커뮤니케이션 대표 로베르트 뮐러-그뤼노브가 후각의 중요성과 기능, 향기와 인간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 발전해왔고, 기업들은 어떻게 향기를 마케팅의 중심으로 끌어오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변화할지 등 향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마음을 움직이는 향기의 힘》에 담았다.
향기는 정보 전달과 소통의 매개체,
향기 마케팅 전문가가 안내하는 후각과 향의 세계
로베르트 뮐러-그뤼노브는 조향사가 아니다. 물론 향기를 창조하기는 하지만, 향기를 정확한 곳에 정확하게 쓰일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데 더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향기 디자이너 또는 향기 마케터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가 설립한 독일 쾰른에 있는 센트커뮤니케이션(ScentCommunication)은 마케팅 컨설팅 회사로 크게 두 가지 분야에 기초를 둔다. 첫째는 브랜드에 어울리는 향기를 개발하는 것이고, 둘째는 향기를 저장하고 방출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센트커뮤니케이션은 자동차 생산 대기업, 호텔 체인, 병원, 박물관, 갤러리, 운수업, 슈퍼마켓 체인, 의류 회사, 영화사 등 거의 모든 업체와 일한다. 그들의 일을 간단히 표현하면, T.P.O(시간, 장소, 상황)에 가장 적합한 향기를 찾아 고객이 원하는 메시지를 담아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향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한다.
우리 삶에서 후각과 향기가 중요한 이유,
후각을 잃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후각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한다. 냄새 좀 맡지 못한다고 큰일이 날까 싶지만, 큰일이 난다. 우선 우리 몸에서 위험을 감지하는 중요한 센서 하나가 사라진다. 음식이 상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또는 낯선 공간에 들어서게 되었을 때 우리는 킁킁 냄새를 맡는다. 본능에 따라 무의식중에 자신의 코로 위험을 감지하려는 것이다. 또한 비행기나 기차, 버스에서 위험한 냄새를 인지하는 것은 안전과 직결된 문제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루프트한자 항공사의 냄새 인지 훈련을 돕기도 했다. 승무원들이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냄새의 원인을 파악하느냐에 따라 승객의 안전 확보는 물론이고, 불필요한 착륙을 줄여 그에 따른 비용도 줄일 수 있으니, 항공사에 후각 훈련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59쪽).
흔히 알려져 있듯이 후각을 잃으면 미각도 함께 잃는다. 코를 막고 음식을 먹으면 맛을 구별할 수 없다. 단지 미각만 잃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에도 지장이 생긴다. 먹거나 마시는 일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인간관계에서 먹는 즐거움을 잃은 사람이 그 자리를 웃으며 함께할 수 있을까? 미각을 잃은 요리사 안드레아스 레스폰데는 “옛날에 내가 아직 냄새를 맡을 수 있었을 때는 외식을 무척 자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 지나간 일이지요”라고 했다(93~98쪽).
친밀한 인간관계 형성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사랑하는 자녀의 냄새를 맡지 못하고, 배우자의 체취를 전혀 알 수 없다면 심각한 상실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체취만으로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긍정적인 인상을 주기도 한다. 영화 〈향수〉의 주인공 그르누이는 뛰어난 후각을 지녔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아무런 체취가 없다. 그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기에 살인까지 저질러가며 궁극의 향수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얻고자 한다.
종종 ‘인간을 조종한다’는 누명을 쓰기도 하지만, 향기를 제대로 활용하기만 한다면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의료 분야다. MRI 촬영을 위해 좁은 통 속에 누워 있어야 하는 경험은 일반 환자에게도 불편함을 줄 뿐 아니라 폐쇄공포증이 있는 환자에게는 더욱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저자는 한 병원의 의뢰를 받아 진정작용을 하는 게라니올과 라벤더 등을 조향해 MRI 촬영에 활용했고, 환자들의 흥분과 불안을 줄일 수 있었다. MRI 촬영 시간이 단축된 것은 물론이다(112쪽). 또한 양로원이나 요양원에도 감귤류, 그레이프프루트, 베르가못, 꽃 또는 상쾌한 빨래 냄새 같은 향기를 은은하게 주입해 곳곳에 향이 퍼지게 함으로써 긍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치과나 병원 대기실에 좋은 향기를 이용해 편안하고 쾌적한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다.
“구매 욕구를 자극하고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 새겨라!”
전자제품 ? 자동차 ? 호텔 ? 항공사… 향기 마케팅에 주목하는 기업들
미세먼지와 코로나19로 쾌적한 실내 공간이 중요해진 상황과 맞물려 기업들이 향기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시각과 청각이 즉각적인 반응을 끌어낼 수 있었다면, 기억과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후각은 더 깊이, 더 오랫동안 이미지를 각인하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이미 이러한 후각과 향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향기 마케팅에 뛰어든 로베르트 뮐러-그뤼노브는 이 책에서 자신의 실제 경험과 업계의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오늘날 향기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식품이나 욕실, 주방용품에서 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건축물처럼 언뜻 향기와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분야에서는 어떨까? 이들 분야는 제품 그 자체의 향보다는 ‘공간’에 관심을 기울인다. 전자제품 전시장이나 박물관, 미술관, 호텔, 백화점 그리고 자동차 실내까지, 이른바 향을 이용한 공기 디자인을 통해 그 공간에 들어선 고객들에게 쾌적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자사 고유의 향을 퍼뜨림으로써 브랜드 이미지를 기억 속에 남기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 삼성 전시장에서 나는 혁신의 향
저자 로베르트 뮐러-그뤼노브는 몇 해 전 글로벌 기업 삼성의 의뢰를 받아 베를린에서 열린 IFA(국제가전박람회) 전시장에 쓰일 시그니처 향을 개발한 적이 있다. 삼성은 향기 관련 제품을 직접 생산하지 않는 기업이지만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고유한 자체 브랜드 향 개발을 원했다. 알맞은 향을 찾기 위한 조건으로 기업의 상징색인 파란색과 흰색이 주어졌고, 그 향은 삼성의 제품, 전시장의 상황 및 시청각적으로 보여지는 브랜드의 묘사와도 일치해야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Intimate Blue’였고, 이 향은 박람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혁신’이라는 삼성의 이미지를 후각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