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읽고 나면 배 속도 머릿속도 든든해진다!
라멘이 더 맛있어지는 과학 미식 탐구
라멘은 명실상부 일본의 국민 음식이다. 일본 전역에 약 5만 개의 라멘 전문점이 성행하고, 연간 생산되는 인스턴트 라멘은 약 56억 개에 달한다. 하지만 이러한 라멘의 인기는 일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1년 동안 소비되는 인스턴트 라멘의 수는 무려 약 977억 개다.(본문 164쪽)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를 선정하는 CNN의 설문 조사(2011년)에서 라멘은 8위에 이름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맛집과 고급 식당을 제치고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한 개의 평가를 받은 라멘 가게도 있다.
한국의 '라면 사랑'도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물론 한국의 라면은 주로 인스턴트 라면을 가리킨다는 차이가 있지만). 세계라면협회의 통계(2015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약 75개의 라면을 먹었다. 2위가 50개의 인도네시아, 3위가 43개의 일본, 4위가 35개의 중국이었으니 압도적인 라면 소비량을 자랑하는 셈이다.
이처럼 라멘은 일본과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근사하고 인기 있는 메뉴 중 하나다. 일본의 대표적인 과학 커뮤니케이터, 가와구치 도모카즈도 라멘을 즐겨 먹는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라멘이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근본적으로 도대체 라멘은 왜 맛있는 걸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재료를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국물 맛이 좋아질까? 꼬들꼬들한 면과 푹 익힌 면 중 국물과 더 어울리는 쪽은? 미지근한 라멘도 맛있을까? 술을 마시면 왜 라멘이 더 당길까? 화학조미료를 사용한 라멘은 정말 몸에 해로울까?' 등등.
그는 이 질문의 답을 구하기 위해 유명 라멘 가게들과 라멘 박물관을 찾아가 맛을 보았고, 라멘 제조 회사와 제면·제분 회사를 방문해 직접 라멘을 만들어 보았으며, 대학 연구소와 라멘 관련 협회들에서 실험과 분석을 실시했다. 또한 수십 년 경력의 라멘 가게 사장과 영양사, 맛 칼럼니스트, 연구원, 라멘 회사 직원, 라멘 오타쿠 등 각계각층의 전문가를 인터뷰하여 생생한 목소리를 더했다. 라멘 맛의 비밀을 풀기 위해 물리학·식물학·재료 공학·분자생물학·뇌신경학·언어학·AI·빅데이터 분석 등을 활용했고, 라멘을 만드는 사람·먹는 사람·파는 사람·거부하는 사람을 이해하고자 라멘에 얽힌 역사, 경제, 사회, 문화, 심리학,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을 살펴보았다.
이처럼 《라멘이 과학이라면》은 면과 국물 속에 숨은 과학 원리와 인문 상식을 통해 라멘과 관련된 다채로운 호기심과 궁금증, 오해와 진실을 속속들이 파헤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독자들의 지적 허기를 채워 주는 흥미진진한 교양서이자 라멘 마니아를 위한 탁월한 미식 탐구서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저자 특유의 유머러스한 서술과 비전공자의 눈높이에 맞춘 설명으로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독자를 아우르고 있다.
라멘이 맛있는 이유는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다!
국물 맛을 결정하는 제5의 미각, 감칠맛의 비밀
일본의 라멘 마니아와 오타쿠는 주문한 라멘이 자기 앞에 놓이는 것을 두고 '영접'이라고 표현한다.(본문 19쪽) 자, 그럼 우리가 푸짐한 라멘 한 그릇을 '영접'했다고 상상해 보자. 가장 처음 무엇을 할까? 물론 뜨끈한 김에 서린 향을 맡거나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을 음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십중팔구는 국물부터 맛보지 않을까?
수많은 라멘 가게가 돼지·닭·소·양의 뼈와 고기, 멸치·꽁치·도미·오징어·게·조개·바지락 등 생선과 해산물을 팔팔 끓이고 졸이고 섞어서 저마다 독특한 국물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 심지어 일본 내에서는 국물을 내는 재료에 따라 "토리파이탄(닭고기)계, 세아부라(돼지비계)계, 니보니보(멸치)계, 후시(생선)계, 규코츠(소뼈)계 등"으로 라멘 종류를 구분하기도 한다.(본문 14쪽) 국물은 "라멘의 생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라멘의 맛과 특징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저자는 라멘의 국물이란 "다양한 재료를 조합해 최대한의 감칠맛을 내는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본문 67쪽) 여기서 라멘 국물 맛의 뼈대가 바로 감칠맛임을 알 수 있다.
라멘의 기본 육수로는 주로 다시마나 가쓰오부시를 우린 맛국물(dashi, 다시)을 쓴다. 그런데 이 맛국물은 "감칠맛 자체"(본문 29쪽)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글루탐산, 이노신산, 아스파라긴산 등 감칠맛 성분이 풍부하다. 특히 글루탐산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의 일종인데 화학조미료의 주원료로 쓰일 만큼 대표적인 감칠맛 성분이다.(본문 28쪽)
"음식물이 입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사실 위험한 일입니다. 몸에 나쁜 음식이 들어올지도 모르니까요. 단맛은 에너지원이 되므로 살아가는 데 중요합니다. 신맛은 상한 음식일지 모르고, 쓴맛은 독일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갓난아이는 신맛이나 쓴맛을 싫어하죠. 감칠맛은 단백질이 몸 안에 들어왔다는 신호입니다. 그래서 단맛과 감칠맛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거죠." (본문 45쪽)
이처럼 우리가 라멘 국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감칠맛을 내는 성분인 글루탐산이 우리 몸의 필수 영양소인 단백질에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감칠맛을 비롯해 좋은 맛을 선호하고 나쁜 맛을 거부하는 행위, 나아가 라멘 국물을 맛있게 즐기는 행위가 모두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무의식적 작용 때문이다.
감칠맛이 우리 몸에 미치는 효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감칠맛은 여러 재료의 맛이 잘 어우러지게 하거나 특별한 한두 가지 맛을 강조해 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재료의 맛이 뒤섞이면 맛의 전체 밸런스가 무너지고 우리는 맛없다고 느끼게 된다. 마치 "모든 색을 섞으면 검은색이 되는 것"(본문 119쪽)과 같은 원리다. 우리가 케이크를 맛있다고 여기는 것은 짠맛과 단맛이 두드러지기 때문인 것처럼 라멘도 짠맛과 감칠맛이 두드러져야 한다. 이때 감칠맛이 짠맛을 더 부각시켜 준다. 요리에 소금을 덜 쓰고도 충분히 짠맛을 낼 수 있는 것이다.(본문 43쪽) 그러므로 감칠맛을 적절하게 이용하면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식이 조절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후루룩거리면서 먹으면 더 맛있을까?
면의 종류와 '면치기'를 통해 알아보는 풍미의 메커니즘
자, 다시 '영접'한 라멘으로 돌아가자. 국물을 맛보았다면 다음에 손이 가는 부분이 바로 면이다. 라멘의 면발은 밀가루와 첨가물의 종류, 가수율(밀가루 대비 수분 비율), 반죽과 숙성 정도, 제면 방식에 따라 고유의 맛, 식감, 색감, 향이 달라진다. 또한 굵은 면, 가는 면, 꼬불꼬불한 면, 곧은 면, 표면이 매끄러운 면과 거칠거칠한 면 등 만드는 방법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그리고 익힌 정도에 따라 꼬들꼬들한 면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푹 익힌 면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라멘 오타쿠들은 면에 국물을 흠뻑 적셔서 먹는 것을 '국물을 들어 올려' 먹는다고 표현한다.(본문 20쪽) 그럼 '국물 들어 올려' 먹기 좋은 면, 즉 국물이 잘 배는 면은 어떤 것일까? 많은 사람이 꼬불꼬불한 면에 국물이 더 잘 밸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유체 역학적으로 살펴보면 곧은 면이 꼬불거리는 면보다 국물을 더 잘 흡수한다는 견해"(본문 77쪽)도 있기 때문이다. 면이 국물을 흡수하는 정도는 면발의 꼬불거림이나 반죽 재료의 배합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바로 면을 얼마나 익히느냐다.
가령 1분 동안 삶아야 하는 면을 30초만 삶아 덜 익히면 그 면은 국물을 깊이 빨아들인다. 대신 면에 함유되어 있던 간스이(탄산칼륨이나 탄산나트륨을 주성분으로 하는 원료로서 면의 색감, 향, 보습, 탄력을 내기 위해 반죽에 넣는다)나 보존료 같은 첨가물이 국물에 녹아 나오게 된다.(본문 101쪽) 즉 꼬들꼬들한 면은 국물이 잘 배어 맛있어질지 몰라도 국물 맛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