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코맥 매카시 열풍을 불러일으킨 출발점, 그의 대표작
서부 장르 소설을 고급 문학으로 승격시킨 ‘국경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
코맥 매카시는 윌리엄 포크너, 허먼 멜빌,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작가들과 비견되는 미국 현대 문학의 대표 작가다. 저명한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 역시 현대를 대표하는 4대 미국 소설가 중 하나로 그를 꼽은 바 있다.
2007년에 퓰리처 상을 받은 후 출연한 「오프라 윈프리 쇼」가 큰 화제가 될 만큼 ‘은둔 작가’로 유명한 그이지만, 그 이전에 딱 한 번의 인터뷰가 더 있었다. 『모두 다 예쁜 말들』 출간 후 1992년 《뉴욕 타임스》와 한 인터뷰다. 『모두 다 예쁜 말들』은 출간 후 처음 여섯 달 동안 20만 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전미 도서상과 전미 비평가 협회상을 휩쓰는 등 문단 안팎으로 화제가 되었다. 『과수원지기(The Orchard Keeper)』, 『바깥의 어둠(Outer Dark)』, 『서트리(Suttree)』 등으로 작가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던 그였지만, 문단의 찬사와 함께 대중의 뜨거운 반응까지 얻은 것은 『모두 다 예쁜 말들』이 처음이었다.
대중소설이라 치부했던 미국 특유의 서부 장르 소설에 문학성을 부여하여 이전 서부 장르 소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소설을 탄생시킨 매카시는 『모두 다 예쁜 말들』에 이어 『국경을 넘어』와 『평원의 도시들』을 발표하였고, 미국 서부와 멕시코의 접경지대를 배경으로 한 ‘국경 3부작’을 완성하였다. ‘미국의 고전’이라고 칭해지기도 하는 ‘국경 3부작’은 매카시의 작품 중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을 받는 그의 대표작이다.
■ 거칠지만 시적이고 절망을 안고도 환하게 빛나는 한 인간의 성장기
『모두 다 예쁜 말들』은 서부 장르 소설의 기본 줄거리를 따르면서도 매카시 특유의 시적인 산문과 애수에 찬 리듬, 강렬한 캐릭터들이 어우러져 끊임없이 이야기 속에 빠져 들게 만든다. 매카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인간의 어두운 본성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과 비극이 우리 눈앞에 드러나며 우리는 지울 수 없는 참담함을 경험한다. 매카시가 서부 장르 소설을 택한 것 역시 그 안에서 보여 줄 수 있는 특유의 비극성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소년 존 그래디는 목장을 팔려고 하는 어머니와 갈등을 겪다 친구와 함께 말을 몰아 집을 떠난다. 멕시코의 국경을 넘은 그들은 그곳에서 자신들이 원하던 것을 찾은 듯하지만, 여행 도중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에 다시 휘말리며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이들이 겪게 되는 비극적인 사건들은 그들의 선한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것들이며, 바로 여기에 ‘잔혹함’이라는 인생의 비밀이 숨어 있다. 주인공 존 그래디가 예기치 못했던, 의도치 않았던 비극이 마치 준비되어 있던 운명처럼 그를 덮쳐 오고, 그는 그중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다. 한 사람의 운명에 작용하는 ‘사회의 무지함’과 ‘정의롭지 못한 힘’이 그 어떤 운명보다도 강력하다는 비극은 우리 가슴에 묵직한 슬픔을 내려놓는다. 그러한 잔혹함 속에서 살아남은 존 그래디는 떠날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쓸쓸히 말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지만, 아버지와 유모마저 세상을 뜬 후다.
『모두 다 예쁜 말들』은 말과 총격전, 운명적 사랑 등이 등장하는 전통적인 서부 장르 소설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그 형식을 띠고 있지만, 코맥 매카시 특유의 질감을 덧입힘으로써 고도의 문학성을 부여받음과 동시에 그 전통성에서 살짝 벗어난 독특한 소설이다. 또한 한 소년의 비극적이고도 아름다운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거친 서부와 멕시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년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 그리고 결국 소년은 그 속에서 살아남는다. 성장과 생존이 등치할 만큼 인생이 잔혹하다는 것을 소년은 배우는 것이다. 코맥 매카시는 어둠을 표현하는 데 능한 만큼 또한 그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인간의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그려 낼 줄 안다. 절망 속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한 소년의 성장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