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개정하는 책. 역사와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을 해방시킨다.★★
_리베카 솔닛, 《오웰의 장미》 저자
★★지성의 향연. 모든 내용이 우리가 안주해온 지적 믿음을 깨뜨린다.★★
_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 스완》 저자
★★기성 학계에서 지워진 실제 인류 역사를 복원하는 여정. 희망과 영감이 가득한 책.★★
_이상희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학교 인류학과 교수·《인류의 기원》 저자
문명 전반에 걸친 신화와 통념을 전복하는 획기적 통찰
인간 본성과 사회에 관한 이해를 더 과학적·낙관적으로 재정립한 기념비적 명저
독창적 사상가이자 이 시대 최고의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유작
2020년 이른 나이에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인류학자이자 활동가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고고학자 데이비드 웬그로와 함께 쓴 마지막 책이 드디어 한국 독자들을 만난다. 인류학적 근거를 통해 수천 년간 구성되어온 사회구조를 꿰뚫어보고,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그레이버의 특장점이 이번 책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웬그로는 고고학 분야에서 농경의 기원과 국가의 출현에 관한 최신 논의를 이끌고 있는 명망 있는 학자로, 두 저자는 “갈릴레오와 다윈이 천문학과 생물학 분야에서 행한 일을 인류사 분야에서 해냈다”(〈자코뱅〉).
《모든 것의 새벽》(원제 The Dawn of Everything)은 지난 30여 년간의 인류학과 고고학 연구 성과를 통해 그간 각광받아온 빅히스토리 계열 역사학자, 지리학자, 경제학자, 진화심리학자, 정치학자 등의 문명사가 실제 역사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준다. 수렵 채집, 농경, 사유재산, 도시, 국가, 민주주의 등 문명 전반에 걸친 단선적 사회 진화의 신화와 유럽 중심의 목적론적 통념을 전복하는 획기적 통찰로 문명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다. 심화하는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과 해결책을 주제로 가볍게 주고받던 대화에서 시작한 한 인류학자와 한 고고학자의 지적 기획이 인류사 전체를 대상으로 확대되었다. 이 책은 10년 동안 이어진 두 학자 간 우정 어린 협업의 산물이자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남긴 마지막 마스터피스다.
문명이 특정한 방향으로 단계를 밟아 진화한다는 환상
사회적 현실은 그보다 복잡하고 다채롭고 흥미롭다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데이비그 웬그로가 애초에 답을 찾고자 한 문제는 불평등의 기원이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사회적 ·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과학 분야의 화두로 떠올랐다. 다보스 포럼에서도 ‘세계적 불평등’이 주요 쟁점으로 오를 정도였다. 따지고 보면 많은 경우 사회적 불평등 연구는 문명의 기원에 관한 연구다. 지금까지의 문명사는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전락의 스토리는 인류가 농경을 도입한 약 1만 2,000년 전쯤 시작한다. 작은 무리를 이루어 평등하게 살아가던 인간 집단이 농업혁명 이후 대규모 사회로 발전하면서 계층화되었고, 자연스럽게 불평등과 부자유가 인간 삶의 조건이 되었다는 비관적인 이야기. 오늘날 심화하는 불평등은 이렇듯 인류가 단계를 밟아 진화해온 필연적 결과일까? 우리는 스스로 속박을 향해 달려든 것일까?
두 저자는 공동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불평등의 기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가 불평등해지려면 그보다 앞서 평등해야 한다. ‘평등 → 불평등’이라는 도식이 성립해야 하는데, 이는 최근 30여 년간 축적되어온 고고학과 인류학 연구 성과에 따르면 사실이 아니다. ‘순진 · 소규모 · 야만 → 복잡함 · 대규모 · 문명’이라는 사회 진화의 신화도 실제 역사와 다르다. 세계 각지에서 제각각 다양한 자연환경에 맞닥뜨린 우리의 선조들은 그처럼 단선적이고 고정된 경로를 따라 역사를 써오지 않았다. 사회적 현실은 항상 복잡하고 다채롭고 흥미롭다. 그러므로 인간 사회의 ‘원래’ 형태란 없으며, 인류 역사에는 그로부터 파생된 단계별 방향성도 없다. 다만 역사의 어느 시점부터 우리는 불평등한 사회 체제에 붙들려 있다. 따라서 저자들은 질문을 수정한다. ‘우리는 어쩌다 폭력과 지배를 기초로 하는 하나의 사회적 형태에 전 지구적으로 고착되어버렸는가?’
유발 하라리, 재레드 다이아몬드, 스티븐 핑커가 놓친 과거의 진실
불평등과 부자유가 삶의 필연적인 조건이 된 이유
저자들이 볼 때 인류사 분야의 주요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나 유발 하라리도 종래의 ‘사회 진화’ 도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도식은 유럽 계몽주의의 소산이다.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과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문명 이전 자연 상태에 대한 ‘사고 실험’에서 시작해 사회계약과 근대국가의 출현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론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판단이 아니라 근거가 부족한 추정에서 시작한 역사다. 루소와 홉스는 17~18세기 유럽 당대의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과거의 진실을 충분히 관찰하지 않은 가설과 거기에서 유도한 목적론적 사고방식을 견지했다. 현대 학자들이 이어받은 역사 서술 방식이다.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수렵 채집인 무리를 정치적 자의식 없는 유인원 취급한다. ‘인지혁명→ 농업혁명→ 산업혁명→ 과학학명’을 거친 인류에게는 스스로 만든 제도에서 벗어날 힘이 없다. 우리는 현재의 체제에 고착되었고, 다른 삶의 가능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제까지의 세계》에서 다이아몬드는 인간에게 유의미한 수준의 사회적 평등은 원초적인 소규모 무리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결론짓는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정치적 불평등의 기원이 농경에 있다고 단언한다(《정치 질서의 기원》). 다이아몬드와 후쿠야마는 공히 복잡한 대규모 인간 사회는 위계질서와 관료제를 피할 수 없다고 본다. 저자들이 현대판 홉스주의자로 부르는 스티븐 핑커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와 《지금 다시 계몽》에서, 고대의 우리 선조들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서 잔혹하고 짧은 삶을 살았고, 유럽 문명의 발전을 토대로 이룩한 현대의 삶은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평화롭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단선적 사회 진화 이론을 옹호하면서 불평등과 부자유한 상황을 바꿀 대안은 없다고 말한다. 《모든 것의 새벽》은 그런 결론을 뒷받침할 역사적 증거는 없다고 비판하며, 더 나아가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실험한 우리 선조들의 새로운 역사를 재구성하는 “희망과 영감이 가득한 훌륭한 책이다”(이상희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수렵 채집, 농경, 사유재산, 도시, 국가, 민주주의 등
최신 연구 성과가 밝힌 역사의 진실에 기반한 문명의 역사
그레이버와 웬그로는 인류 사회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전복한다. 최근 몇십 년간 발견되었으나 전문 학술 영역 안에서만 논의되어온 새로운 고고학·인류학 증거들이 900여 페이지에 걸쳐 빼곡하게 제시되어 있다.
• 수렵 채집인도 정치적 자의식 갖춘 인간이었다.
기존의 서구 지성사에서 선사시대 수렵 채집인은 자유롭고 평등하며 순진무구한 미개인이거나 이기적이고 냉혹한 야만인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적절한 삶의 방식에 대해 토론하고 성찰하는 능력을 갖춘 현대인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었다. 북극권의 이누이트족은 여름에는 소규모로 쪼개져 수렵 채집을 하면서 강력한 가부장제를 작동시키는 반면, 겨울에는 한데 모여 평등한 집합적 삶을 산다. ‘적절한 사회는 어때야 하는가?’ 하는 정치적 의식의 결과, 그들은 상이한 사회의 가능성을 실험했으며, 이 같은 고고학적 증거는 계속 쌓이고 있다.
• 농업혁명은 없었다.
혁명은 과거와의 급격한 단절과 그로 인한 전면적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이다. 농업은 혁명적 사건이 아니었다. 농업혁명의 요람이라는 중동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농경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