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집회에서 응원봉 부대까지,
광장 안팎의 시민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계급, 젠더, 세대, 이념의 차이가 만든
한국사회 정치 주체의 지형도
광장의 시민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12·3 비상계엄으로 드러난 민주주의의 얼굴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7분,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리라고는 감히 생각하지 않았던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각자의 생활공간을 뚫고 들어온 느닷없는 비상계엄에 정치인들, 시민들은 국회로 몰려들었고, 계엄에 동원된 군대의 침입을 막아내며 두 시간 만에 계엄 해제를 이뤘다. 이 사건만으로도 큰 충격이었지만, 내란 수괴의 파면 선고까지 한국사회는 이번 내란에 얼마나 많은 권력 집단이 연루되어 있는지 목격하며 아연실색했고, 전국 곳곳에 형성된 광장에서 함께하기도 갈등하기도 하며 혼란한 넉 달을 보냈다.
표면적으로 광장은 윤석열 탄핵 찬성과 반대라는 두 집단으로 나뉜 듯한 양상을 띠었다. 전자의 시민들이 여의도, 광화문, 남태령, 한강진 등을 색색의 응원봉으로 물들이며 다양한 열망과 요구를 표명했다면, 후자의 시민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부정선거론과 중국배후설 등을 내세우며 계엄의 정당성을 외치고 윤석열을 비호하는 식이었다. 이 광장의 시민들은 과연 어디에서 왔으며, 이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광장 이후』는 ‘우리’와 ‘저들’이라는 편 가르기나 진보와 보수의 진영 갈등을 넘어, 광장 안팎에서 생생하게 움직이던 주체들을 좀더 면밀하게 읽어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시민사회와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사회학자 신진욱, 노동 분야 현장 연구 전문가인 사회복지학자 이승윤, 청년 노동시장에 관심을 두고 지역 산업 구조를 연구하는 사회학자 양승훈, 불안정노동 및 사회복지학 연구자이자 여러 사회운동 조직의 대표로서 활동하고 있는 이재정 등 네 저자의 글을 한데 모아 이번 12·3 광장을 만든 이들부터 광장에서 지워진 이들까지, 광장 주체들을 입체적으로 살폈다.
『광장 이후』는 이번 광장을 양분한 듯 보였던 극우세력과 응원봉 부대 등 시민의 정치참여 양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한국 극우세력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신진욱), 광장의 청년들이 바라는 민주주의의 내용은 무엇인지(이재정)를 한층 더 촘촘하게 분석한다. 그후 2030 여성 청년들의 열띤 정치참여와 대조되어 부상한 ‘2030 남성의 극우화’라는 담론을 들여다보고(양승훈), 청년세대의 노동 불안정성을 실증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 불안정성이 정치의식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전망하며 마무리된다(이승윤). 아스팔트 극우, 남태령 집회의 여성들, 2030 남성과 청년 불안정노동자 등 시민사회의 정치 주체에 대한 역사적이고도 시의적인 분석이 ‘광장’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12·3 광장을 입체적으로 보려는 이 책의 취지를 단단히 뒷받침한다.
계엄과 탄핵으로 활짝 열린 광장의 주요한 주체인 청년, 여성, 노동자, 소수자를 비롯해 민주 광장을 가득채웠던 시민들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기록되고 있다. 『광장 이후』는 이러한 흐름에 더해 광장의 역동성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시민 혹은 광장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시민들이 어떤 역사를 통과했고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있을지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는 정치 성향, 이념, 가치관, 계급, 젠더, 세대, 이념에 따라 갈라지고 합쳐지며 형성되는 민주주의의 쟁점들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광장 이후』 12‧3 이후 민주주의 회복과 발전의 동력을 찾는 독자들을 논의의 장으로 이끄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비극, 즉 수많은 인간의 고통을 수반하는 사회적 격변은 (…) 처음엔 짧은 소극처럼 다녀가지만, 다음번엔 진정한 비극으로 재림한다. 1923년에 실패로 끝난 ‘뮌헨 맥줏집 쿠데타’에서 아돌프 히틀러는 그저 시대착오적인 내란범에 불과한 듯 보였지만, 1933년에 총통이 된 그는 바이마르공화국을 폐지하고 나치 독재를 수립했다. 12·3이 그런 비극의 전조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12·3을 진지하게 성찰해야 하며 우리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9쪽)
극우세력, 응원봉 부대, 2030 남성, 불안정 청년세대…
광장을 묻지 않고 민주주의 회복이란 불가능하다
‘12·3 광장’이 닫히고 조기 대선에 모든 관심이 쏠린 지금,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한국사회의 현안은 무엇일까? 『광장 이후』는 정치의 물결에 광장의 열기가 휩쓸리기 전에 다음의 질문, △ 극우세력은 어떻게 진화해왔으며, 얼마나 파괴력이 있는가, △ 청년 여성의 정치참여와 연대의 배경은 무엇인가, △ 2030 청년 남성은 과연 실제로 극우화되었는가, △ 청년 불안정노동은 이들의 정치의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 광장 안팎의 청년은 어떤 물질적 조건에 놓여 있는가, △ 광장의 청년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등에 답하고자 했다.
•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극우 파시즘」 _신진욱
: 한국 극우세력의 씨앗은 무엇이며 어떻게 진화하고 있나?
사회학자 신진욱은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추세에서 일어난 12·3 친위쿠데타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드러낸 결정적인 사건이고, 반공, 반북, 반중, 반페미니즘, 반동성애를 표방한 극우세력의 진화는 ‘파시즘의 신호’라는 충격적인 선언으로 이 책의 문을 연다.
한국 시민의 정치의식은 세계가 주목하는 바다. 특히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위 당시 촛불 시민은 민주주의 후퇴를 막아낸 승리의 주역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 뒤 일어난 12·3 비상계엄으로 우리는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되었고, 대한민국처럼 선진 민주주의를 달성했다고 여겨지는 나라도 독재화로 추락할 수 있음을 불시에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 내란 사태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자신의 정당성을 파괴하며 일으킨 ‘친위쿠데타’라는 점은 ‘공고한 민주주의’가 환상에 가깝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증명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에게 서부지법이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제도적인 권력 기반을 상실한 쿠데타 세력은 대중적 지지 기반을 마련하고자 극우세력을 ‘국민’으로 끊임없이 호명했다. 이러한 극우적 권력과 대중의 결합은 뒤이어 서부지법 난입·난동 사건으로 이어지며 명백히 파시즘의 징후를 드러냈는데, 저자에 따르면 이는 로버트 팩스턴이 말한 파시즘의 여섯 단계 중 파시즘 경향이 정치제도에 진입하는 다섯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즉, 지난 넉 달간 일어난 극우세력의 폭력 사태와 보수정당의 묵인과 지지는 한국사회에 파시즘이 상당한 정도로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심각한 사건이었다.
신진욱은 윤석열 파면 선고로 파시즘의 발전이 중단되긴 했으나 극우세력의 준동이 일시적·즉흥적인 움직임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민주화 이후 장기간에 걸쳐 구축된 극우 파워엘리트 조직과 대중 공동체, 극우적 신념을 가진 이들 중 일부가 이번 탄핵 정국에서 가시화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 1장의 그래프(45쪽 참조)에서 볼 수 있듯, 지난 20년간 한국사회에서 ‘매우 보수’인 이들의 집회 참여율이 2019년 이후 ‘매우 진보’인 이들의 참여율과 비슷해졌다가 이번 탄핵 집회를 계기로 ‘매우 진보’를 앞질렀다. 그런 만큼 현재 윤석열 탄핵 직후 열린 조기 대선 국면에서 극우세력의 움직임이 잠시 주춤한 듯 보여도, 계기가 마련되면 언제든 정치적으로 재활성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등장한 ‘처단’ ‘죽여’ ‘밟아’ 같은 잔혹한 구호들이 단지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의 위험에 직면한 보수층의 히스테릭한 반응이라고만 생각했다면 오해다. (…) 많은 사람이 ‘우파’를 자처하고, ‘좌파’에 대한 적대감을 통해 ‘우리와 그들’을 나누고, ‘그들’을 대한민국의 ‘적’, 추방해야 하는 ‘비(非)국민’, 제거해도 되는 ‘비인간’으로 대상화하는 데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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