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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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권력이다. 1970년대에 뉴욕시 전체가 정전되었을 때 폭력과 약탈이 횡행하는 무정부 상태가 된 적이 있다. 정전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적처럼 권력 전체가 해체된 것이다. 빛이 없어지면 권력도 없어진다는 것, 빛이 곧 권력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잘 보여준 사례는 아마 없을 것이다. 빛은 사물 혹은 사람을 가시적으로 만들어준다.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빛 속에서는 모든 것이 환하게 보인다. 남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은 종속의 상태가 되고 가시성을 확보한 사람은 그를 지배하는 권력을 갖게 된다. 가시성은 권력을 생산한다. 요컨대 가시성은 권력을 생산한다. 보이지 않는 정체불명의 타인에게 바라보여진다는 두려움은 인간의 원초적 공포이다. 마태복음에도 “너의 아버지는 너를 비밀리에 본다”라는 구절이 있고, 창세기에서도 여호와는 시나이 산의 불과 연기 뒤에 모습을 감추지만 늘 어디선가 우리를 보고 있다가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지 말라”고 외친다. 시선의 비대칭성에서 권력이 생산된다. 시선은 권력을 생산한다. 더 엄밀히 말하면 시선의 비대칭성에서 권력이 발생된다. 나는 바라볼 수 없는데 누군가 나를 은밀하게 바라보고 있다면 그는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따라서 나는 그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다. 시선의 비대칭성을 가장 잘 구현한 판옵티콘 제레미 밴담의 판옵티콘 설계도 이러한 시선의 비대칭성의 원리를 가장 잘 구현한 것이 18세기 영국의 계몽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감옥 건물로 구상한 판옵티콘(Panopticon)이다. 판옵티콘은 라틴어로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다는 뜻인데, 건물 명칭에 걸맞게 중앙의 망루에서 간수 한 사람이 반지 모양의 원형 건물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감시할 수 있다. 칸칸이 나누어진 독방들은 앞뒤의 창문으로 빛이 관통되어 그 안에 갇힌 수감자의 모습이 훤히 보이지만 중앙의 망루는 지그재그의 칸막이로 빛이 차단되어 있기에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다. 규율권력이 제대로 행사되려면 지속적이고 철저하며 어디에나 있고 또한 모든 것을 가시적으로 만들면서 자신은 보이지 않는, 그러한 감시수단을 갖추어야 하는데 판옵티콘은 그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가장 이상적인 감시체제이다. 권력은 가시적이어야 하나 확인될 필요는 없다. 판옵티콘의 개념에 따라 지어진 감옥. 반지 모양의 원형 건물 각 독방에 갇힌 죄수들은 중앙의 망루에 있는 간수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는다. 독방 안의 죄수들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간수에게 완전히 노출되어 있지만 중앙 망루에 있는 간수의 모습을 보지는 못한다. 망루가 어둡기 때문에 거기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망루는 간수가 감시하는 장소이므로 거기에 간수가 있거니 하고 짐작만 할뿐이다. 여기에 감시 권력의 또 하나의 중요한 요체가 있다. 권력은 가시적이어야 하나 확인될 필요는 없다.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행동을 조심할 것이다. 항상 누군가에게 감시받고 있다는 의식만 있으면 된다. 내가 확인할 길이 없으므로 감시자가 그 자리에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항구적인 가시성이 권력의 자동적 기능을 확보해 준다. 감시의 효과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주는 이 항구적 가시성은 보고-보이는 한 쌍의 지각 행위를 해체하여 시선의 비대칭, 불균형, 차이 등을 극대화함으로써 가능해 진다. 일단 이런 장치를 만들어 놓으면 마치 자동 기계와도 같이 누구나 그 자리에 들어가 간단히 작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정보기관의 수장이 누가 되든 감시 기능은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현대의 판옵티콘 - 전자 감시체제 그러나 벤담의 판옵티콘은 현대의 전자 감시 체제에 비하면 차라리 목가적인 풍경이다. 판옵티콘에서 사람의 시선이던 것이 현대 감시체제에서는 CCTV의 카메라 렌즈, 하드 디스크의 기억장치, ID 카드의 기록장치 또는 인사과에 비치된 개인의 고과 명세로 대체된다. 회사의 ID 카드에 현금 카드 기능이 있으며, 그것이 사원들을 감시하는 족쇄의 역할을 한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는 물론 신문 판매대에서 책이나 잡지를 살 때, 그리고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할 때도 이 카드를 사용하므로, 회사에서는 어떤 사원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신문을 보는지, 어떤 종류의 운동을 하는지 훤히 꿰뚫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상사들은 마음만 먹으면 어느 사원이 자기 자리에 있는지, 화장실에 갔는지, 아니면 다른 사무실에 가 시시덕거리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회사 내에서 항상 몸에 부착하고 다니는 ID 카드가 중앙의 컨트롤 타워에 연결되어 있어 사원의 동선이 그대로 중앙에서 인식이 되기 때문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여주인공 앤드리아가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이다. “아니, 내가 점심으로 양파 수프를 좋아하는지 시저 샐러드를 좋아하는지, 지금 어느 층에 가 있는지 까지 알아내는 것을 체계적인 경영이라고 생각하는 회사에 내가 다니고 있단 말이야?” 미국 영화 속의 인물들만이 아니라 한국의 회사원들에게도 이미 일상사가 되어버린 감시체제이다. 한 유수한 기업에서는 사원증이 일정 시간 움직이지 않으면 본부에서 연락이 온다. 사원증을 놓고 외부에 나가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또 어느 회사에서는 특정의 단어를 이메일에 입력시키면 즉각 중앙 시스템에서 인식이 되기도 한다. 전자 족쇄를 채워놓은 것과 다름이 없다. 사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회사가 감옥을 닮았다고 해서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트루먼 쇼> 백화점이나 은행의 관리자들이 고객의 구매 취향과 액수를 항상 감시하고 있고, 각종 감청 장비들이 24시간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는 우리들의 세상은 영화 <트루먼 쇼>의 세계와 도 그리 멀지 않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더 없이 발랄한 자유를 누리는듯하지만 실은 전 방위에서 하루 24시간 내내 감시당하며 살고 있다. 푸코의 권력 문제를 30년간 연구한 저자 현대 소비사회의 정경을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에서 광고 팝아트 등의 사례로 재미있게 풀어낸 바 있는 상명대 박정자 교수는 1979년에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 제1권 <앎에의 의지>를 《성은 억압되었는가?》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여 한국에 푸코를 처음으로 소개한 인물이기도 하다. 푸코의 전기를 비롯하여 《비정상인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등 푸코의 저서를 번역했고, 저서 《빈센트의 구두》에서는 푸코의 에피스테메 이론을 벨라스케즈의 그림 <시녀들>과 연관 지어 설명하기도 했다. 번역과 논문 등으로 30여 년간 푸코의 권력 이론을 연구해 왔던 저자는 신간 《시선은 권력이다》에서 현대 전자 감시 체제의 기원을 제레미 벤담의 판옵티콘에서 찾고, 시선의 비대칭성에서 발생하는 권력의 메카니즘을 사르트르의 대타(對他) 이론과 헤겔의 인정투쟁 이론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밝혀낸다. 평이한 글쓰기로 대중의 접근성을 높인 저자의 열의 학자들이 흔히 난해하고 어렵게 집필하여 일반의 접근이 쉽지 않았던 주제를 문학 영화 등의 장면을 빌어 쉽게 풀어 놓은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이다. 평이한 글쓰기로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보다 많은 독자와 소통하고 싶다는 저자의 열망에 기인한다. 관련 주제를 완전히 이해하고 체화한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덕목이기도 하다. 덕분에 독자들은 전복적인 권력론으로 20세기 후반기의 철학계를 석권했던 푸코의 담론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