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를 쓰고, 대사를 생각하고, 대사를 말하면서 뒹군 수십 년. 인생의 절반을 대사와 함께 살아 온 쿠도 칸쿠로는 어떻게 '쿠도칸 마니아'를 거느린 ‘천재 각본가’로 불리게 되었을까?
《지금 뭐라고 했지?》는 영화 <69 식스티나인> <한밤중의 야지상 기타상> <소년 메리켄사쿠> 드라마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키사라즈 캣츠아이> <유성의 인연> <아마짱> <감옥의 공주님>등 다수의 화제작을 쓴 드라마 작가 쿠도 칸쿠로가 드라마와 영화 촬영장, 연극 무대, 공연 현장, 집 안팎에서 들었던 말에서 뽑은 명대사를 에피소드와 함께 엮은 산문집이다.
"쿠도 씨는 가만히 있어도 대사가 줄줄 써지죠?"
"쿠도 씨는 빨라서 좋아요. 이번에도 빨리!"
억울하기도 하고, 우쭐해지기도 하는 이런 상황을 수없이 겪은 쿠도 칸쿠로는
《지금 뭐라고 했지?》에서 자신이 하는 작업의 뒷이야기들을 풀어 놓았는데, 그 안에는 지하철이나 버스, 카페, 술자리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한 마디를 놓치지 않고 대사로 살려내는 쿠도 칸쿠로의 재치, 꾸준함과 노력, 글빚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치열함이 담겨 있다. 그리고 쿠도칸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술술 읽힌다. 그러니 술술 쉽게 쓴다고 오해할 수밖에.
쿠도 칸쿠로가 이야기하는 “대사”의 세계 <>
“대사를 쓰고,대사를 외우고,대사를 말하게 된 지 20년. 인생 의 반을 대사와 싸우며 지내 왔는데, 지금도 좀처럼 잘 되지만은 않아요. 대사에 농락당한 지 20년. 그건 작가가 자신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대사의 한계를 잘 알게 된 날들이기도 했습니다.”_‘후기’(372쪽)
자신은 다소 겸손하게 말하지만, 쿠도 칸쿠로는 ‘천재 각본가’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자기 자신도 스스로 헷갈려 할 만큼 각본가, 영화 감독, 배우, 작사가, 작곡가, 연출자, 라디오 진행자, 뮤지션 등 그가 하는 일은 대중 문화 전반에 걸쳐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대중의 인기와 평단의 주목을 함께 받고 있는 몇 안 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쿠도 칸쿠로의 시작과 끝은 드라마와 시나리오 작가이다.
첫 연속 드라마로 마니아를 만들어 낸 , 촬영지인 키사라즈가 관광지가 된 <키사라즈 캣츠아이>, '아베노믹스보다 아마노믹스가 낫다'고 할만큼 폭발적인 성공을 거둔 <아마짱>, 유토리 세대를 다룬 사회파 드라마 <유토리입니다만 무슨 문제 있습니까>, 영화 <핑퐁>, <69 식스티 나인>, <소년 메리켄사쿠>, <사죄의 왕>, 2019년 NHK 대하드라마 에 이르기까지 데뷔 이래 한 해도 쉬지 않고 작품을 써 내고 있다.
<>는 ‘톡톡 튀는 문체와 기발한 상상력의 천재 각본가’라고 불리는 쿠도 칸쿠로가 20년 넘게 드라마, 연극, 영화의 대본을 써오면서 경험한 세상, 만난 사람들, 극작에 관련한 자신의 생각이나 태도 등을 발랄하게 풀어낸 산문집이다.
'젊은이의 일상을 보여주는 리얼한 대화'를 잘 쓰기로 소문난
각본가 쿠도 칸쿠로의 극작 에세이!
드라마의 성패는 대본에서 판가름난다고들 한다. 그런데 어떤 대사가 예기치 못한 화제를 불러올지, 어떤 대사가 관객과 시청자를 울리고 웃기게 될지, 어떻게 대사를 써야 구성과 스토리를 돋보이게 할지 알 수 있을까? 그걸 아는 이가 있다면 드라마의 신일 것이다. '천재 각본가'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쿠도 칸쿠로도 그걸 알 리가 없다. 그냥 다른 작가들처럼 일상 속에서 상황을 발견하고, 메모하고, 기억하고, 매 순간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최선의 단어와 문장을 고민하고, 쓰고, 고쳐 쓴다.
그 고민과 집필의 과정은 그가 수없이 끊었다 피웠다를 되풀이하는 담배 에피소드처럼 심지가 약하고, 지조도 없어 보이고, 좌불안석 불안해 보인다. 하지만 대본 작업이란 대부분 마감을 끝내면 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지쳐서 그가 가장 사랑하는 어린 딸마저 “아빠 무셔(무서워)!”라고 할 만큼 정신의 에너지를 소진하는 중노동이다. 그는 농담처럼 몇몇 대사는 얻어걸린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행운도 너덜너덜해질 만큼 고민하고 머리를 쥐어뜯은 결과라는 걸 독자들은 눈치챌 수 있다.
쿠도 칸쿠로가 일상의 사소함 속에서 낚아 올린 한 마디!
쿠도칸이 <>에 담은 에피소드들은 하나하나가 다 사소하다.
그런데 사소한 것들이 너무 재미있다. 전작인 육아 일기 <>처럼 쿠도 칸쿠로의 칼럼은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는 예민함과 이야기로 풀어내는 기술, 사소한 것이라도 진지하게 접근하는 정직함이 돋보인다. 거기에 트레이드 마크인 수다와 유머, 엉뚱함이 더해져서 읽다 보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 웃음의 근원은 꼰대가 되기를 두려워하는, 늙어 죽을 때까지 ‘까불어대기’를 멈추고 싶지 않은, 부러진 다리 걱정보다 당장 내일 락페스티발에서 방방 뛰지 못할 걸 아쉬워하는 쿠도칸의 ‘나이 들지 않음’에서 찾을 수 있다.
독자들은 쿠도칸의 발랄한 수다 속에서 ‘일드 마니아만 아는 즐거움’을 한층 더 만끽할 수 있다. 우리 연예계와 살짝 닮았으면서도 전혀 다른 일본 대중문화의 전통과 풍부한 콘텐츠, 드라마 제작이나 작업 방식 같은 전문적인 영역, 일본 연예인들의 평범한 일상에 이르기까지 일본 대중문화계의 겉과 속을 아우른다. 쿠도 칸쿠로를 통해 일본의 대중문화에 접근하는 방식은 그가 택한 사소한 에피소드 만큼이나 시시할 수도 있지만, 이론과 비평과는 질적으로 다른 설득력과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책의 후기에서 쿠도 칸쿠로는 사소한 일상 속 말 한마디가 소중한 이유를 ‘사소함 속에 반짝이는 재미' 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되묻고 싶어지는 대사.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 한 둘 정도는 갖고 있겠지요. 그래도 잊고 말아요. 사소하면 사소할수록 재미있어요. 그런데 사소하면 너무 사소해서 지나치죠. 그렇다고 따로 적어 둘 정도도 아니죠. 막상 적어두려고 하면 사라지고 마는 정도의 희미한 반짝임을 눈을 부릅뜨고 찾고 싶습니다.”_‘문고판 후기(377p)
‘사소한 것에서 반짝이는 재미’ 를 찾는 드라마 작가의 세계가 궁금한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작가 쿠도 칸쿠로는...
쿠도 칸쿠로는 일본의 유명 각본가이자 배우, 영화감독으로 ‘천재 각본가 쿠도칸’이라고 불린다. 이상일 감독의 영화 로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극본상, <돈쥬>로 연극계의 아쿠타가와상이라 일컬어지는 기시다 쿠니오 희곡상, <키사라즈 캣츠아이><유성의 인연><아마짱> 등으로 더 텔레비전 드라마 아카데미상 각본상 수상 등 영화, 연극, 드라마 전방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각본가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게게게 여보>, <콰르텟> 등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오프닝 곡 '너에게 쥬스를 사줄게'로 무려 홍백가합전에도 출전한 그룹 타마시의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 앞서 NHK가 2019년 상반기에 방영하는 50부작 대하 드라마 는 이례적으로 근대를 다루면서 쿠도 칸쿠로 극본, 키타노 타케시 해설로 화제가 되고 있다.
쿠도 칸쿠로
https://ko.wikipedia.org/wiki/쿠도_칸쿠로
쿠도 칸쿠로와 봉준호 대담(번역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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