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국정농단 보도의 개념설계자, 드디어 입을 열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1년 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울려 퍼진 이 한마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헌재 결정문이 “재단법인 미르와 재단법인 K스포츠가 설립될 때 청와대가 개입하여 대기업으로부터 500억 원 이상을 모금하였다는 언론 보도가 2016년 7월경에 있었다”로 시작된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어느 언론도 ‘최순실과 국정농단’의 낌새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던 때, 이진동 기자가 지휘한 일명 ‘(퍼스트) 펭귄팀’이 2014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터트려간 보도들 중 에 대한 언급이었다. 
이렇게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에 결정적 역할을 한 건 단연 언론들의 보도였다. 박근혜정권의 붕괴, 나아가 박정희체제의 종언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 거대한 드라마, 이에 대해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이를테면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중 ‘절정’과 ‘결말’이다. ‘태블릿PC’ 보도를 한 JTBC나 ‘최순실 이름’을 끄집어낸 『한겨레』의 역할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시작은 결말만큼이나, 아니 결말보다 더 중요하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가 ‘왜 그렇게 끝났는지’를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시작 지점에서 어떤 방향을 잡느냐가 이후 경로와 종착점을 결정한다. 그래서 ‘첫 단추’는 언제나 중요한 법이다. 절정과 결말 이전의 발단으로부터 흐름을 읽어올 때만이 비로소 국정농단 사태의 전모가 온전히 보이게 되며, 바로 이에 부응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은 ‘촛불 혁명’의 불이 어떻게 댕겨졌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국정농단 사건 취재의 문을 어떻게 열어갔고, 그 보도들이 어떻게 이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팩트를 발굴하고 확인해가는 기자 한 명 한 명의 ‘땀의 흔적’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펭귄 무리가 사냥을 하러 바다에 나갈 때 처음엔 바다 속의 포식자를 두려워해 다 주저한다. 그러다 용감한 한 마리가 먼저 뛰어들면 다 뛰어든다. 맨 먼저 뛰어드는 펭귄을 ‘퍼스트 펭귄’이라고 한다. 최고권력에 대한 취재라는 걸 알고도 처음에 뛰어든 기자들은 국정농단 사건을 알리는 ‘퍼스트 펭귄’이었다고 자부한다. ―머리말
어째서 1년 반을 기다렸을까? -‘스캔들’ 아닌 ‘게이트’로 
그간 많은 이들의 호기심과 의구심을 자극한 내용 중 하나는, 저자 이진동 기자(펭귄팀의 지휘자)가 이미 2014년 말 최순실의 실체를 알고도 왜 2016년에 와서야 보도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시간차로 인해 보수 쪽은 물론 진보 쪽에서도 어떤 음모론을 품곤 했다. 탄핵 반대 세력은 아예 ‘기획 탄핵설’을 퍼뜨리기도 했다. 이진동 기자는 ‘박근혜 죽이기의 설계자’ ‘기획 탄핵의 배후’ ‘빅브라더’ 등의 대단한(?) 호칭까지 얻었다. 
그러나 저자의 답은 “‘눈길 끄는 한 방’보다는 탐사보도로 국정농단의 실체를 한꺼풀씩 벗겨내자는 것”을 목표로, 국정농단을 명백히 밝혀낼 수 있는 보도 타이밍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자칫 최순실이 박근혜의 의상을 챙기고 청와대 행정관들을 부리는 CCTV영상만 폭로해서는 박근혜와 최순실이 절친이고 사생활을 관리해준다는 식의 스캔들이나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2014년 말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 박관천이 폭로한 ‘정윤회 비선실세 의혹’이 흐지부지 묻혀버린 것도 저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이후 언론들의 보도가 권력자의 사생활을 좇는 스캔들이 아니라, 권력형 비리를 파헤치는 게이트로 진행될 수 있었던 데는 저자의 이런 목적의식과 기다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취재 틀이 잡혀가면서 머릿속은 방대한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어떻게 풀어내느냐로 복잡했다. 어떤 계기를 잡아 뭘 먼저 보도하고, 최순실은 언제 어떻게 등장시킬 건지가 관건이었다. 시작 단계에서 심각한 사안이라고 판단했던 건 인사개입과 문화융성사업이었다. 수천억 원 혈세가 들어가는 예산을 최순실이 짜고, 그게 반영되고 집행됐다면 그야말로 ‘국기 문란’이었다. (…)
최순실의 힘으로 장관들이 바뀌고, 김종과 차은택 등이 최순실을 등에 업고 문화체육계 인사를 좌지우지한 행위도 국정농단으로 다룰 핵심 사안이었다. 예산농단과 인사농단, 그리고 기업 모금을 통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까지 취재 방향은 크게 세 갈래였다. 다만 이때만 해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움직인 막후의 연결고리들은 가설 단계였다.
그런데 덜렁 ‘최순실’부터 치고 나가면, ‘비선실세 최순실’에만 초점이 맞춰져 다른 농단 행위들은 관심에서 멀어지거나 묻힐지도 몰랐다. 또 최순실이 먼저 기사에 등장했을 때 과연 취재하고 있는 것들을 끝까지 살려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고영태의 표현대로 “최순실이 없으면 대통령은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관계라면 청와대가 두 손 놓고 있지 않을 듯싶었다. 최순실을 끄집어내면 곧이어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최순실’은 목에 걸리기 쉬운 큰 떡이었다. 큰 떡을 먹기 편하게 잘게 썰거나 부드럽게 만들어 접근하는 전략을 펴야 했다. 
최순실이 등장하기 전에 먼저 최순실의 하수인이나 최순실이 만들어낸 농단의 결과로 빚어진 사안들부터 하나씩 보도하는 것으로 구도를 잡았다. 고발할 대상들 주변에 그물을 쳐가면서, 마지막에 ‘이 모든 근원이 최순실이었다’는 식으로 풀어낼 계획이었다. 그래서 의상실 CCTV영상은 후반부에 나와야 했다. ―69~71쪽
어떻게 보도가 시작됐을까? -3단계의 로드맵을 그리다
그 타이밍은 2016년 상반기에 찾아왔다. 4월 29일 박관천의 석방, 청와대에서 최순실에게로 유출됐으리라 의심되는 문건을 확인해줄 사람이 나타난 셈이었다. 그리고 5월 말에 기획보도에디터로 발령받아 기획취재팀을 이끌게 되면서, 6월 10일 혼자만 간직하던 CCTV영상을 팀원들에게 공개하고 본격적인 ‘최순실 취재’를 시작한다. 
저자는 국정농단 사건 보도를 열어가면서 크게 3단계의 로드맵을 그렸다. 1막은 국정농단 세력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고발하는 ‘그물치기’ 국면, 2막은 그 세력들의 배후에 있는 ‘최순실’을 드러내는 국면, 3막은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를 규명하는 국면이었다. 최순실과 일당들이 저지른 국정농단 행위를 부인할 수 없게끔 드러낸 뒤에 그 모든 일의 주모자로 최순실을 등장시키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정권이 애를 써도 최순실을 묻어버리지 못하리라는 판단에서다.
많은 이들이 7월 26일의 ‘미르재단 500억 원 모금’ 보도가 국정농단 보도의 첫 시작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보다 먼저 7월 6일 최순실의 하수인이었던 김종 문체부 제2차관의 ‘박태환 올림픽 출전 포기 종용’이 첫 기사였다. 그 후 〈국가브랜드 연구개발에 68억원 ‘펑펑>(7월 7일) →〈대통령까지 시연한 늘품체조 사라졌다>(7월 11일)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 행사마다 대통령 등장>(7월 13일) →〈안종범 수석, 미르재단 500억 모금 지원>(7월 26일)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 ‘미르재단’ 좌지우지>(7월 27일) →〈또 다른 재단인 K스포츠에도 380억 모아줬다>(8월 2일) →〈미르·K스포츠 회의록 판박이…배후는 동일인?>(8월 3일) →〈K스포츠·미르재단, 대통령 행사 동원>(8월 4일) →〈미르재단, 대통령 순방TF 참여…비선조직이었나>(8월 11일) →〈靑 교문수석은 외삼촌, 문체부 장관은 스승…차은택 카르텔>(8월 18일) 등으로 이어지며, 차츰 최순실과 박근혜를 향해 나아갔다.
왜 보도를 멈추었을까? -청와대의 압박과 알고도 못 쓴 기사들
그러나 TV조선의 보도는 8월 말 이후 끊겨버린다. 당시 청와대는 『조선일보』가 우병우 민정수석의 비리를 보도한 것을 빌미로, 『조선일보』를 매섭게 몰아친다. 미르·K스포츠 재단 보도로 끙끙 앓던 청와대가 이 문제에 정면대응 할 수 없으니까 우병우 건을 반격의 명분으로 삼았던 것이다. 실제로 거의 모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