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바로 이 순간,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삶의 고비, 선택의 순간마다 부딪히는 치열한 고민을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프레임으로 들여다본
행동하는 지식인 김진애의 인생 지침서이자 ‘삶과 선택의 정치학’!
“국회의원이라는 ‘혐오그룹’에 속해보니 더 한심하고 갑갑하다!”
“거수기만 있고, 앵무새만 있으며, 꿀먹은 벙어리들뿐이다!”
국회의원을 혐오하는 수많은 말들이 있다. ‘국해의원, 국개의원, 구케의원’ 등. 국(國)회(會)가 아니라 ‘국(國)해(害), 나라에 해를 끼친다’니 참 고개를 못 들 정도다. ‘개만도 못한’ ‘국개’는 더 낯 뜨겁고 어떤 벌레를 연상시키는 ‘구케’에 이르면 할 말이 없다. 도대체 299명의 국회의원들은 자신이 ‘혐오그룹’에 속하는지 알까, 모를까?
그런데 국회의원이 되어보고 나니, 왜 그렇게 국회의원 자리를 대단하게 생각하는지 확실히 알겠다. 국회의원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자리’이자, ‘하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리’이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국회의원은 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국회의원’과 ‘모든 걸 해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국회의원’.
태어나 처음으로 혐오그룹에 속해본 김진애가 18대 국회를 샅샅이 해부한다. 왜 국회에는 한나 아렌트가 언급한 ‘인간의 조건’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없을까, 겉모습은 '공룡위원회'요 속모습은 '이권위원회'며 본색은 ‘거수기 위원회’인 국토해양위원회의 실상, 정부의 논리만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앵무새’와 ‘꿀먹은 벙어리’들의 집합소로 국회가 전락한 이유, 그리고 정치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동안은 쉬쉬하며 아무도 속 시원하게 얘기하지 못한 ‘돈과 권력 이야기’를 속이 후련하도록 화끈하게 쏟아낸다.
“노무현대통령 덕분에 나를 찾고, 이명박대통령 덕분에 깨닫는다!”
“이정희 의원은 나의 롤모델, 박근혜는 ‘서혜림’이 아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영웅’의 어원은 이렇다. 호머의 《오디세이》에서는 특수한 업적을 낸 사람들만이 아니라 ‘트로이의 모험에 참가해서 이야기될 수 있었던 모든 자유인’을 영웅이라 불렀다는 것. 자기가 누구인가를 보여줄 때, 자기가 무엇을 위해 행위한다는 것을 보여줄 때, 자아를 발동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알릴 때 이미 대담한 용기가 작동하고, 그 용기야말로 영웅의 기본 속성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시고 난 후 우리 마음 속 겁을 이겨내고 용기를 내는 것은 바로 그에게서 ‘나’를 찾는 심정의 발로이다.
한편 한나 아렌트는 ‘정치의 실종’을 가장 우려했다. 인간 세계의 다원성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데에서 전체주의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이것은 소통의 부재, 다른 의견들의 억압, 다양한 언로의 봉쇄에서 비롯된다는 것.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야말로 ‘정치의 실종’이다. 정치란 서로 다른 인간들의 서로 다른 의견과 갈등을 관계하게 해주고 얽어주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 치유하고 타협해가는 자연스러운 인간 행위의 근본 과정인데, 그 근본적 소임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노무현 때문에 ‘배린’ 사람 중 하나인 김진애는 그의 죽음을 통해 좋은 정치에 대한 갈망과 의지를 불태우게 되었고, 이명박 대통령의 존재로부터 ‘정치란 우리 모두의 인생과 관련 있다’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2008년 취임식을 앞두고 썼던 <이명박 정부에 바라는 여덟 가지 경계령>, 연이은 두 대통령의 스타일 및 시대정신을 비교한 ,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절절한 심정으로 써내려간 에서는 그의 탁월한 식견과 예지력, 유머가 돋보인다.
“트위터를 하면 막혔던 것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시민운동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탄생할 것을 예측한 사연!”
첫째, 힘없는 사람이 세상에 소리를 낼 수 있다. 목에 잔뜩 힘준 신문들과 방송들 눈치 안 봐도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내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둘째, 언론 통제를 뛰어넘는 유일한 수단이다. 공식 언론처럼 기사 검열도 없고 트위터 내에서 자체 정화가 된다. 셋째, 현장감 있는 모든 시민의 기자화가 너무 좋다. 사고의 현장에서, 재앙의 현장에서, 경고가 필요한 현장에서, 예고가 필요한 현장에서, 바로 바로 올려준다. 넷째,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친구를 만나는 게 너무 좋다. 하루 24시간 대화를 이을 수 있는 건 물론이고, 며칠이 지나도 대화가 이어지고, 온 세계에 있는 친구들과 대화할 수 있어 세계가 넓어진다. 다섯째, ‘집단 지성’의 리트머스 역할을 해준다. 어떤 뉴스가 주목을 받는지, 이슈가 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여섯째, ‘민심’을 읽는다. 많은 친구들을 팔로잉하면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의견인지 듣는다. 진짜 민심이 보인다. 그래서 일곱째, 갑갑했던 마음이 ‘뻥’ 뚫려서 좋다. 직장에서 말하지 못했던 갈등, 혼자서 끙끙 앓았던 고민, 일상의 사소한 기쁨들과 아쉬운 것들뿐만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 그것이 등록금이든, 뉴타운이든, 선거든, 4대강이든, 정치인에 대한 것이든,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있고 또 남들의 의견도 들을 수 있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SNS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드러났고, 특히 정치권에서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때, 김진애는 온라인 예찬론자로서 초기부터 SNS를 통한 ‘소통’에 주목하고 열심히 활용해왔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게 꽁꽁 묶고 단속해 온 슬픈 역사를 견뎌온 우리에게 있어 SNS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지, 앞으로의 전망과 정치권에서의 활용에 대해 할말이 많다. 특히 트위터를 통한 선거지원을 하면서 이미 투표 전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탄생할 것을 예측하고, 인쇄 직전에 그 설레는 마음을 적은 원고를 집어넣을 정도로 민심을 내다보는 도구로 잘 활용하고 있다.
“이 시대에 우리는 왜 ‘인간의 조건’을 질문해야 하는가.”
“그리하여, 어떠한 삶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그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인 세계는 더욱 완벽하지 않다. 들끓고, 모순 많고, 때로 착취적이고 억압적이고 폭력적이기조차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가능성을 긍정하고, 공적 인간의 성찰과 실무를 지향하며, 우리가 사는 세계의 가능성을 여전히 믿고 싶다. 이 시대에 우리는 왜 ‘인간의 조건’을 질문해야 하는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즉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세계를 그리기 위해서다. 독일 유대계 정치철학자로서 평생 많은 고통을 당하며 ‘전체주의의 기원’에 대해 천착한 한나 아렌트, 사악한 인간세계의 폭력과 광기를 목격하고 체험하며 ‘악의 평범성’을 고발한 한나 아렌트. 그럼에도 그는 세상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고, 인간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 책은 한 사상가의 위대한 저작물을 훑어내려가면서,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 정치와, 건축가로 정치인으로 살고 있는 한 여성의 삶의 궤적을 맞물려 탁월하게 해설해낸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누구나 생각하며 사는 ‘아렌티안’이 될 수 있으며, 매일매일 우리가 선택하는 것에 대해 철저한 자기만의 원칙과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철학을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