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세균이 자라지 않는 ‘투명한 빈 자리(taches vierges)’ 항생제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놀라운 과학적 발전을 이루고, 노벨상의 영광에 빛나고,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항생제의 발견과 개발에 얽힌 진짜 역사를 알아본다. '항생제'라고 하면 보통 페니실린을 떠올리지만, 항생제는 그 종류가 엄청나다. 이런 수많은 항생제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페니실린처럼 극적인 탄생 스토리가 있을까? 그런데 이들 항생제를 만든 사람의 이름은 왜 플레밍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이 책은 살바르산과 페니실린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 다양한 항생제 개발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또한 병원과 약국에서 처방되는 대표적인 항생제의 핵심 구조와 작용 기전을 살짝 엿보면서, 이들 항생제의 개발에 얽힌 극적인 이야기를 통해 과학이란, 과학자란, 혹은 기억되는 과학자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과학자의 보상이란, 회사에서 돈을 받고 일하는 과학자의 이름이란 과연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현재와 같이 수많은 사람이 역할을 나눠 참여한 연구에서 '누구'의 연구란 과연 어떤 것인지도 함께 알아본다. 썩은 과일과 곰팡이 핀 접시, 하수구를 뒤져 항생제를 만든 사람들, 그들은 왜 '플레밍'과 '왁스먼'이 되지 못했을까? "2023년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커다란 영광과 막대한 이익 뒤로, 이름도 없이 사라져 버린 사람들, 항생제를 개발했던 그들은왜 역사에서잊혀졌을까 자동차와 비행기가 우리의 이동 방식을 바꾸는 동안, 냉장고와 엘리베이터는 우리의 생활을 새롭게 했고, 컴퓨터와 인터넷은 우리의 사고 체계를 뒤흔들고 있다. 예전 같으면 안타깝게 죽거나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 온전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우리 곁에서 생활하고 있다. 말 그대로 세상이 달라진, 혹은 누군가 세상을바꿔놓은 것이다. 몇십 년전이라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이제 이런 변화의 감각마저 무뎌졌다. 역사책이나 다큐멘터리로 예전 생활을떠올려 보지만, 이제는 '있어서 새롭다'는 느낌보다 오히려 '없는 것이낯설게' 느껴진다. 항생제가 바로 딱 그렇다.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어느 독일 시인의 낭만이 애처로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어이없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몸이 아픈 것은 외부의 미생물이 우리 몸에 들어와 그런 것이고, 항생제는 우리 몸은 가만히 놔둔 채 그런 세균만 골라 죽이는 물질을 말한다. 이제는 어린이들도 알고 있는 이런 의학 상식이 새로운 이야기로 우리 곁에 등장한 게 채 이백 년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은 이런 항생제를 발견하고, 연구하고, 개발한 사람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찾아낸 1928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항생제가 발견되었다. 그 하나하나의 개발 과정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전쟁의 참화가 불러온 상처를 낫게 하고야 말겠다는 인류애도 있었고, 돈과 영광에 눈이 아득해 흩뿌린 더러운 얼룩도 또렷이 남아 있다. 일흔이 넘어 시작한 연구로 엄청난 돈과 평생 얻지 못한 영광을 얻기도 했고, 자신의 연구를 지도교수에게 '도둑' 맞아 노벨상을 놓쳤다는 하소연이 예사롭지 않은 희대의 스캔들도 있었다. 탁월한 결과를 낸 과학자지만 그가 만약 여성이라면, '예쁜' 영광은 기꺼이 줄 수 있어도 돈과 지위는 주지 않았던 지난 시절 허리조차 펼 수 없던 낮은 천정도 여지없이 들어 있다. 제3 세계의 전통 지식과 토종 자원이 눈 밝은 선진국 사람들에게 아무 동의 없이 그대로 흘러 들어가 엄청난 수익을 창출했지만, 보상에서는 철저히 배제된 차별과 수탈의 역사도 남아 있다. 개인의 호기심 차원에서 진행되던 '소박한' 연구가, 이제는 다양한 분야 수십 명의 전문가들이 모인 거대한 조직에서 대규모의 예산과 장기적 계획에 따라 추진되는 공장제 프로젝트가 되었다. 이렇게 연구와 개발이 체계화되면서 더 많은 종류의 항생제가 개발되었고, 사람들은 더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탁월한 통찰과 끈질긴 실행력으로 성과를 얻은 사람들은 노벨상의 영광과 많은 돈을 손에 넣었고, 체계적으로 항생제를 개발해 상품화한 회사는 엄청난 돈과 영향력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플레밍'이나 '왁스먼'은 찾을 수 없다. OO회사 신약 개발팀의 분석 담당 OOO만이 있을 뿐이다. 회사에서 돈을 받고 연구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 대신 조직의 명칭으로 불리웠고, 그들의 이름은 논문과 특허의 각주로만 남았다. 이것 또한 세상의 변화였다. 항생제는 세상을 바꾸었고, 그 과정에서 항생제를 개발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크게 달라졌다. 이 책에는 그러한 과정과 변화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도 담겨 있다. "들판에는 커다란 나무도 있고 화려한 꽃도 있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작은 꽃들이 있고, 이른바 잡초라 불리는 식물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 누군가는 화려한 꽃을 찍어 사진으로 보관하겠지만, 나는 밝게 빛나는 그 꽃 주변의 고요하면서도 치열하고, 넉넉하면서도 치사한 풍경을 함께 보여주고 싶었다. 항생제 발견의 역사는 몇몇 스타 과학자의 영웅 서사가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활약한 수많은 과학자와 주변의 온갖 사람들이 얽혀 있는 다채롭고, 일상적이고, 연속적인 이야기일 때 한층 더 실제에 가깝고 가치 있는 역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모습을 조금이나마 복원하고 싶었다." "더러울수록, 더 좋다" 하수구에서 흘러나온 폐수에서 찾은 항생제 20세기 초반, 이탈리아의 사르데냐에는 장티푸스가 유행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열로 고생했고, 설사와 복통으로 생활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곳의 의사와 과학자들은 원인을 찾아 질병을 퇴치할 방법을 찾았지만 오리무중이었다. 그러던 많은 이들 중에 바다로 버려지는 폐수와 하수구를 유심히 살펴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하수구 이곳저곳에서 폐수를 조심스럽게 수집했고, 실험실로 돌아가서는 그곳에 무슨 세균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도시에는 장티푸스가 유행했지만, 도시 하수가 모여 버려지던 그곳 폐수에는 놀랍게도 장티푸스를 일으키는 살모넬라 균이 하나도 없었다. 바로 하수구 근처의 곰팡이가 살모넬라균을 모두 죽여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태어난 항생제가 바로 세팔로스포린이다. 2022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처방된 항생제가 바로 이 세팔로스포린 계열의 항생제이고, 세팔로스포린이 널리 처방되는 경향은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더러운 폐수에서 세균을 물리치는 항생물질을 찾아낸 사르데냐 대학의 주세페 브로추는 이탈리아에서 이 물질로 약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이탈리아에서는 연구를 지속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전승국의 일원으로 이탈리아에 와있던 영국군 의사가 이 소식을 듣고, 옥스퍼드의 페니실린 팀에 해당 샘플을 보내 주었다. 이탈리아의 지중해 한가운데 있던 섬에서 발견된 항생물질이 멀고 먼 영국의 옥스퍼드에서 놀라운 약으로 탄생한 것이다. 개인의 역량만큼이나 어느 조직에서 어떤 네트워크로 일을 하느냐도 중요할까? 세팔로스포린 개발은 그 둘은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말한다. 제3 세계 산골짝의 진흙 한 움큼에서 찾은 항생제, '공정한' 연구를 묻다 필리핀의 의사 아벨라르도 아귈라는 죽음의 순간에도 '그 말'을 했다. 자신이 수집한 토양 샘플에서 에리트로마이신을 찾아냈으니, 글로벌 제약회사 일라이릴리는 자신의 기여를 인정하고, 정당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고. 그는 일라이릴리의 정식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수년간 필리핀 각지의 흙을 수집해 그중 항생물질이 있을 만한 샘플을 일라이릴리의 미국 연구소로 보내는 작업을 했다. 일라이릴리에서는 2년간의 연구 끝에 이 흙을 기반으로 탁월한 효능의 항생제를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