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예술과 우정에 관해 유쾌한 의문을 제기하는 블랙 코미디의 정수 일상의 평범한 사건들 속에서 인생에 대한 사유를 끌어내는 데 탁월한 야스미나 레자의 대표작답게, 이야기는 작은 사건 하나에서 시작된다. 피부과 의사이자 예술을 사랑하는 세르주가 그림 하나를 몇 달 동안 눈독을 들이다가 샀고, 친구 마르크가 그것을 보러 세르주의 집을 방문한다. 항공 엔지니어인 마르크의 눈에 거실 바닥에 놓여 있는 그 그림은 흰색 가로띠가 살짝 보일락말락 하는 그저 허연 캔버스일 뿐이다. 게다가 그걸 20만 프랑이나 주고 샀다는 것에 마르크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마르크의 빈정대는 반응에 마음이 상한 세르주는 또 다른 친구 이방에게 그림을 보여준다. 변변찮은 직장을 전전하다 이제 간신히 문구업계에 자리를 잡게 된 이방은 의외로 그 그림에서 작은 울림을 느꼈고, 그래서 두 친구를 중재하려 하지만, 그들의 갈등은 엉뚱한 방향으로 터져 나가고, 심지어 예정된 이방의 결혼식마저 위태롭게 된다. 급기야 세 사람은 해묵은 이야기까지 끄집어내면서 오랫동안 쌓여 있던 감정을 터트리며 격하게 다툰다. 예술작품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한때 서로의 자랑이던 친구였으나 이들은 이제, 예술가들의 세계에 끼고 싶어 하는 허영심에, 편협한 기준으로 상대를 단정 짓는 오만함에, 늘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밝히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에 극도의 실망을 드러내며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예술에 대해 각자 다른 견해를 가진 세 사람이 작품 한 점을 두고 현대미술의 가치에 대해 벌이는 논쟁은 예술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들의 논점은, 예술의 가치는 무엇인가, 그 작품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 기준은 각자에게 어떻게 다른가. 그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긴장감 도는 언쟁 중에 마르크가 “내겐 지혜가 부족해”라고 말하자 세르주가 “세네카를 읽어봐”라며 교양 있는 체를 더하는 대목에서는 세네카의 《행복한 삶에 대하여》를 걸작이라고 권하는 이유를 곱씹어보게 된다. “네가 나를 친구로 둔 걸 자랑스러워하던 시절이 있었지…” 《아트》가 예술에 대한 세 남자의 담론을 통해 드러내는 중심 주제는 남자들 간의 우정이다. 가족사도 공유할 정도로 절친한 친구 간에도 서로에 대한 경쟁심과 질투심이 있고, 이것들이 관계라는 익숙함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유쾌하면서도 예리하게 그려낸다. 저마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깊은 고독과 소외감에 눌려 있어, 서로의 대화는 애써 핵심을 피하며 상대의 기대를 외면한다. 우정에 대한 기준도 예술에 대한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마르크는 친구란 항상 서로에게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말하지만, 세르주는 그런 견해가 소유욕적이고 통제적이라고 생각한다. 현학적인 체하는 두 친구와 달리, 이방은 권위도 원치 않고 기준이 되고 싶지도 않고 스스로 존재하고 싶지도 않고, 그저 친구들의 장난꾸러기 요정이고 싶다고 말한다. 야스미나 레자가 무한히 심오하면서도 더없이 심플한 단어 ‘아트’를 제목으로 삼아 이 작품에서 전하고자 한 바가 이방의 말에 담겨있는 듯하다. 그런 껍데기들이 때로는 우정을 해치지만 진정한 우정이란 그리 쉽게 무너지는 게 아니라는 것, 그 우정은 시련이 닥쳤을 때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회복의 실마리 또한 감추고 있다는 것. 자신들의 우정에 ‘수습기간’이란 표현을 붙이며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세 친구가 취하는 행동이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