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류, 비즈니스맨을 향한 '정문일침'
'남들 하는 대로 따라 살지 마라'
자기계발서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 급격한 시대 변화에 온갖 의견이 넘쳐나는 시대다.
직장인들은 메모를 어떻게 활용할지, 어떤 옷차림을 해야 할지, 접대 술자리를 어디로 정할지 등 직장생활의 사소한 일에서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에 이르기까지 노심초사한다. 서점에 나가보면 화술이니 기획서 작성법이니 독서경영이니 나아가 경제위기니 하는 이름으로 이러한 고민에 답하는 책이 수두룩하다. '살아남으려면 이런 책을 읽으며 남들 하는 만큼은 노력해볼 일'이라고 발버둥치지만 한낱 자기위안에 그치고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오고 만다.
무라카미 류가 이 책에서 시종일관 건드리는 대목은 바로 여기다. '왜 남들 따라가기에 바쁠 뿐 본질을 묻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여간한 배짱과 내공이 아니고서는 취하기 어려운 자세와 답하기 쉽지 않은 소재이다. 그 본질을 서너 쪽의 짧은 글에서 되묻는 과정은 날카롭고 청량하다. 첫 글 '무취미의 권유'와 마지막 글 '분재를 시작할 때'는 무라카미 류가 일을 바라보는 방식을 또렷이 드러내며 이 책의 주제를 보여준다. 바로 '인생과 일의 주체로 사는 삶'이다.
"취미의 세계에는 자신을 위협하는 건 없지만 삶을 요동치게 만들 무언가를 맞닥뜨리거나 발견하게 해 주는 것도 없다. 가슴이 무너지는 실망도,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환희나 흥분도 없다는 말이다. 무언가를 해냈을 때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성취감과 충실감은 상당한 비용과 위험이 따르는 일 안에 있으며, 거기에는 늘 실의와 절망도 함께한다. 결국 우리는 '일'을 통해서만 이런 것들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본문 8쪽 '무취미의 권유' 중에서
"그래도 나는 언젠가 분재를 시작할 때가 오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시시때때로 한다. 그때가 오면 나는 소설 쓰기를 그만두게 될 것이다. 그런 상상이 결코 불쾌하지는 않다. 분재는 생각보다 멋진 세계여서 심오하고도 흥미로울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분재의 세계에 빠져들면 그때는 오히려 분재에 관한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분재에 관해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아마도 분재를 그만두지 않을까."
-본문 176쪽 '분재를 시작할 때' 중에서
무라카미 류, 비즈니스맨의 고민에 답하다
-메모에서 세계화까지, 통찰력 가득한 38가지 조언
앞서 설명한 대로 이 책에 실린 38꼭지의 글은 그 소재가 대부분 자기계발을 위해 직장인들이 일상적으로 고민하는 것들이다. 옷차림, 접대, 메모, 독서, 스케줄 관리, 협상, 인맥, 동기부여, 부하 직원 관리, 전직, 충고, 업무상 글쓰기, 어학, 기획 등 구체적인 업무부터 리더의 역할, 사죄, 목표, 정열, 집중, 벤처, 파트너십, 세계화, 살아남기 등 추상적이고 폭넓은 개념까지 아우른다. 여기에 취미, 좋아한다, 아우라, 최고 걸작 등의 소재도 비즈니스맨들의 일상과 짝을 이루는 내용이다. 이 책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비즈니스맨을 위한 일본의 월간지 『괴테』에 연재된 글을 엮은 것이다.
무라카미 류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설가로서의 면모만 부각되어 있지만 그는 영화감독, 쿠바 음반 제작자, 사진작가 등으로 문화계 전반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그가 TV도쿄에서 매주 진행하는 '캄브리아 궁전'은 일본의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제인을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으로 그가 경제와 세상사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꾸준히 쌓아왔음을 엿볼 수 있다.
"세밑이면 일정표가 있는 다양한 수첩이 시장에 쏟아진다. 이럴 때 한 번쯤은 스케줄을 관리한다는 생각을 내던져 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스케줄을 관리하려 하지 말고 해야 할 일에 우선순위를 매긴다는 생각을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업무나 개인사에서 스스로 매기는 일의 우선순위가 그 사람의 인생인 것이다."
-본문 89쪽 '스케줄 관리' 중에서
부하가 일을 잘하지 못한다면 '야단을 칠 게 아니라' 가르치면 되고,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경우라면 다른 사람으로 바꾸든지 사표를 받으면 그만이다. '야단치는 방법을 모른다.'고 하면 듣기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가르치는 방법을 모른다.'고 말을 바꿔 보면 결국 그 상사는 소통 능력이 없는 꽉 막힌 멍청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본문 114쪽 '부하는 '장악'해야 하는가' 중에서
아이디어 발상력(發想力)이란 이처럼 흩어져 있는 기억들을 샅샅이 '검색'하고 적절한 것을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힘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힘은 근육과 마찬가지로 부단히 단련하지 않으면 퇴화한다. 그리고 발상력을 단련하고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보다도 '오랜 시간 집중하여 생각을 뽑아내는' 정면 돌파 말고는 없다.
-본문 166쪽 '기획하는 방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