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종교

백중현 · 인문학/사회과학
3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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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종교를 다룬 최초의 책이다. 이승만부터 박근혜까지 대통령의 종교 성향과 재임 기간 있었던 종교적 사건, 종교 편향 논란 등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국가권력과 종교가 어떻게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는지 살펴본다. 특히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종교는 권력을 창출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적 세력이 되어버렸다. 김영삼 장로 대통령과 이명박 장로 대통령에서 보듯이, 개신교는 기독교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여기에는 한기총과 대형 교회 목사들의 활약이 컸다. 개신교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때까지 정권과 밀착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몸집을 키워나간 정권의 수혜자였다. 그 후 진보정권인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갈등을 빚기도 하고, 개신교 대통령인 이명박을 압도적 표차로 당선시켰다. 이게 시사하듯, 개신교 130년의 역사는 그야말로 ‘성장의 압축판’이라고 볼수 있다. 그 과정은 상당히 정치적이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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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머리에 ·005 프롤로그 | 개신교는 어떻게 성장했는가? ·008 제1장 해방 전후 | 개신교, 압축성장의 기틀을 다지다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이다 ·019 개신교가 뿌리내릴 수 있었던 힘 ·021 전쟁에서 이긴 나라의 종교 ·022 미국은 왜 개신교에 특혜를 주었나? ·024 제2장 이승만 | “한국을 완전한 예수교 나라로 만들겠다” 목사로 불리는 ‘장로 대통령’ ·033 “우리 대통령은 신앙자다” ·036 개신교 국가를 꿈꾸다 ·039 기독교방송과 극동방송 ·043 이승만의 개신교 특혜 정책 ·045 크리스마스, 개천절, 석가탄신일 ·049 개신교, 정치에 참여하다 ·051 개신교, 교육에 참여하다 ·053 월남한 북한의 개신교인들 ·056 개신교와 이승만의 몰락 ·057 천주교의 강력한 지지를 받은 장면 ·059 이승만의 천주교 탄압 ·060 천주교 정권의 등장 ·063 육비구 할복 사건 ·064 제3장 박정희 | 반공과 친미로 절묘하게 만난 개신교와 군사정권 주일학교 선생, 박정희 ·069 “각하! 이대로 지옥 가시겠습니까?” ·071 ‘주일 국가행사’가 부활하다 ·074 불교의 약진과 개신교의 쇠퇴 ·077 반공을 외치다 ·078 임마누엘 중대와 구국십자군 ·082 혁명 정부의 민간사절 ·084 전군 신자화 운동과 대형 집회 ·086 새마을운동과 새벽기도운동 ·089 하늘이 내려준 ‘성장 기회’ ·091 조찬공화국과 새벽기도운동 ?094 반독재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선 개신교 ·096 박정희 정권의 탄압과 목요기도회의 탄생 ·098 천주교의 저항과 3대 사건 ·102 진보 종교인의 탄생 ·106 제4장 전두환 | 당근과 채찍을 겸비한 ‘국풍 대통령’ 불교에 귀의한 ‘천주교’ 대통령 ·111 국가가 종교를 통제하다 ·114 전두환을 위한 조찬기도회 ·115 작전명 ‘45계획’ ·117 대형 종교 집회의 홍수시대 ·120 ‘선교를 전투처럼’ ·122 전두환이 교황 방문을 지원한 이유 ·124 난장판이 된 국풍81 ·126 ‘5·18’과 종교계 저항운동 ·127 반공 지상주의를 깨다 ·129 양심법이냐, 실정법이냐? ·131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134 제5장 노태우 | 개신교의 근간인 ‘친미’와 ‘반공’이 흔들리다 부처님 귀를 닮은 ‘불자 대통령’ ·141 직지사와 대통령 ·144 빅3 종교의 대리전 ·145 10원짜리 동전 불상 논란 ·149 노태우의 불심 달래기 ·151 평화통일운동을 싹틔운 개신교 ·152 종교인들의 방북 ·154 보수 개신교의 대변자, 한기총 ·156 한기총은 왜 탄생했는가? ·158 제6장 김영삼 | 개신교를 휘어잡은 ‘장로 대통령’ 3대를 이어온 ‘신앙 명가’ ·163 개신교의 ‘장로 대통령’ 만들기 ·166 개신교의 권력화 ·168 교회 성장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감리교 4형제’ ·172 대형 교회의 문어발식 성장 ·174 “검정고시 일자가 부활절과 겹친다” ·177 종교 차별 3대 사건 ·180 ‘사건 공화국’과 청와대 불상 ·182 청와대 벼락 사건 ·185 기독교회관, 명동성당, 조계사 ·186 제7장 김대중 | 개신교와 정권의 밀월 관계가 깨지다 고난을 버틴 힘, 천주교 ·191 한 지붕 두 종교 ·193 대형 교회 비리 보도와 ‘잃어버린 10년’ ·195 햇볕정책과 반공 ·197 조갑제의 ‘기독교 궐기론’과 거리로 나선 목사들 ·199 ‘지는’ KNCC, ‘뜨는’ 한기총 ?202 민중교회운동과 교회성장운동 ·204 국회조찬기도회, 정각회, 가톨릭의원신도회 ?205 ‘불교계를 위한 10대 공약’ ·206 제8장 노무현 | 정권 최대 정적은 보수 개신교회 “종교란에 ‘방황’이라고 쓰겠다” ·211 불화의 근원이 된 국가보안법과 사립학교법 ·214 개신교가 세운 대표적인 종합대학 ·218 사립학교법 논란의 기폭제가 된 ‘강의석 사건’ ·220 “반미 감정이 사라지게 하소서” ·222 개신교는 왜 미국에 우호적인가? ·226 개신교의 ‘정권 퇴진’ 운동 ·227 ‘기독교 정당’이 등장하다 ·230 기독교 정당의 역사 ·232 제9장 이명박 | 압도적 표차로 다시 탄생한 ‘장로 대통령’ 어머니의 새벽기도를 듣고 자라다 ·237 개신교의 이명박 선거운동 ·239 뉴라이트와 한기총의 대활약 ·242 이명박 장로 대통령론 ·245 개신교가 움직이면 집권한다! ·247 ‘개신교 코드 인사’ 논란 ·249 지도에 ‘사찰’이 없다 ·251 역차별을 주장하며 역공에 나선 개신교 ·254 권력의 정점에 선 개신교 ·257 세대 교체가 불러온 개신교의 변화 ·259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의 공통점 ·261 개신교의 이미지 추락과 교세 하락 ·265 제10장 박근혜 | 가장 종교적인 무교 대통령 천주교, 불교, 개신교를 섭렵하다 ·271 소리 높인 ‘불교’, 조용한 ‘개신교’ ·275 ‘인수위원장’은 모두 개신교인이다? ·276 무교인 박근혜의 개신교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종교는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권력을 통해 성장한 종교! 종교를 통해 성장한 권력!”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 현재까지 대통령은 9명이다(재임 기간이 짧은 윤보선과 최규하는 제외). 이들을 종교별로 보면 개신교가 3명(이승만, 김영삼, 이명박)으로 가장 많고, 불교 1명(노태우), 천주교 1명(김대중)이다. 이들은 비교적 뚜렷한 종교적 색체를 드러냈다. 반면 전두환과 노무현은 취임 전 천주교인이었으나 퇴임 이후 불교와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등 ‘성향’ 수준에 머물렀다. 최초의 부녀 대통령인 박정희와 박근혜는 공식적으로 종교가 없다. 대통령들이 엮어간 종교 관련 사건들은 정치적 사건을 방불케 할 만큼 다양하고 그 자체로 흥미롭다. 개신교 대통령일 때는 불교계를 중심으로 한 종교 편향 논란이 일었으며, 군사독재정권은 체제 유지를 위해 종교계와 유착하기도 하고 종교를 탄압하기도 했다. 진보정권이 들어서자 보수 종교인들은 가장 큰 반정부 세력이 되기도 했다. 『대통령과 종교: 종교는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는 대통령과 종교를 다룬 최초의 책이다. 이승만부터 박근혜까지 대통령의 종교 성향과 재임 기간 있었던 종교적 사건, 종교 편향 논란 등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국가권력과 종교가 어떻게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는지 살펴본다. 특히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종교는 권력을 창출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적 세력이 되어버렸다. 김영삼 장로 대통령과 이명박 장로 대통령에서 보듯이, 개신교는 기독교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여기에는 한기총과 대형 교회 목사들의 활약이 컸다. 개신교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때까지 정권과 밀착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몸집을 키워나간 정권의 수혜자였다. 그 후 진보정권인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갈등을 빚기도 하고, 개신교 대통령인 이명박을 압도적 표차로 당선시켰다. 이게 시사하듯, 개신교 130년의 역사는 그야말로 ‘성장의 압축판’이라고 볼수 있다. 그 과정은 상당히 정치적이었다. 개신교는 축복받은 종교다. 적어도 한국에서 이룩한 ‘압축성장’ 측면에서는 그렇다. 잘 맞아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한국 현대사의 변화의 시기마다 우연찮게 개신교에 기회가 생겼다. 일제가 물러난 해방 공간에서 모든 종교는 동일한 출발선상에 있었지만, 해방군으로 들어온 미군에 의해 개신교의 독주는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처럼 개신교는 역사적 고비마다 성장을 거듭해왔으며, 그때마다 개신교의 정치화와 권력화는 진행되었다. 굴곡진 한국 현대사가 만들어낸 권력과 종교의 유착은 서양 종교인 개신교를 130년 만에 권력의 최정점에 세우는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권력은 왜 종교에 호의적이었나?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회 당시 이승만은 하나님에 대한 기도로 역사적인 첫 회의를 시작했다. 한국을 ‘완전한 예수교 나라’로 만들겠다던 이승만은 그후 친개신교적 정책을 펼쳐나갔다. 첫 국회의원 선거가 ‘일요일’(1948년 5월 9일)이라는 이유로 다음날인 5월 10일로 연기한 것을 시작으로 건국 이후 첫 민간방송으로 기독교방송과 극동방송의 허가를 내주었다. 크리스마스를 국가공휴일로 지정하고 ‘성탄선물과 크리스마스카드를 많이 만들자’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군대에서 개신교 선교를 가능케 한 ‘군종제도’의 시행은 이승만의 개신교 특혜 정책의 하이라이트였다. 이 군종제도는 1969년 불교계가 참여하기까지 개신교에 의해 독점적으로 운영되었다. 박정희는 개신교의 도움이 절실했다. 정권의 기반이 취약했던 그는 정권 유지를 위해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지해야 했고, 미국 등 국제사회의 지지도 필요했다. 개신교는 미국인 선교사와 오랜 네트워크로 미국과 상당한 인맥을 갖추고 있었고, 뿌리 깊은 반공 이데올로기에 젖어 있었다. 반공은 개신교와 군사독재정권이 밀월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던 끈이다. 반공은 쿠데타를 통해 들어선 군사독재정권에 힘과 명분을 실어주었고, 개신교 역시 반공을 외치며 군사독재정권과 가까워졌다. 반공은 당시 모든 상황에서 쓰이는 ‘만능 요술봉’ 같은 이데올로기였다. 개신교는 5·16쿠데타 직후 환영 성명을 발표하는데, 지지의 근거로 삼은 게 바로 반공이었다. 1961년 5월 29일 KNCC는 “금번 5·16군사혁명은 조국을 공산 침략에서 구출하고 부정과 부패로 기울어가는 조국을 재건하기 위한 부득이한 처사였다”고 했다. 불교계 최대 수난으로 기록되고 있는 10?27법난은 신군부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불교계에 대한 전두환의 탄압이었다. 불교계는 신군부가 요청한 ‘전두환 지지 성명’을 거부했는가 하면,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광주로 조사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그러자 전두환은 ‘불교계 정화 수사계획’이라는 이름하에 ‘10?27법난’을 일으켰다. 군경 병력 3만 2,000여 명이 전국 5,731개 사찰을 수색하며 불교계 인사 153명을 연행했다. 스님들은 ‘불교판 삼청교육대’를 경험했고, 강제적으로 참선하고 정신교육을 받아야 했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개신교는 ‘이명박 장로 대통령론’을 거론하며 이명박 장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이들은 이명박 당선을 기원하는 ‘대선을 위한 특별기도회’를 개최하고, 이명박의 각종 비리 의혹이 터질 때마다 노골적으로 변론하고 나섰다.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을 찍지 않는 사람은 생명책에서 지워버린다는 극언까지 했다. 개신교가 움직이면 정권이 바뀐다는 아니 권력을 쟁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개신교계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이명박은 대통령 선거 역사상 최대 표 차이로 당선되었다. 종교는 권력의 나팔수인가? 1980년 8월 6일, 서울 롯데호텔 에메랄드룸에 개신교 지도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의장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위해서였다. 이 조찬기도회는 당일 KBS, MBC의 생중계를 포함해 세 차례나 방송되었고, 일간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당시 성결교 증경총회장이었던 정진경 목사는 “어려운 시기 막중한 직책을 맡아 사회 구석구석까지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9월 30일에는 ‘전두환 대통령 당선 축하 조찬기도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개신교 대표자들을 포함해 입법부, 사법부, 정치인 등 1,344명이 참석해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을 축하했다. 개신교는 박정희의 10월 유신과 긴급조치 발령 등으로 민주인사들에 대한 탄압이 진행되자 구국기도회 등을 열어 사회 분위기를 반공 쪽으로 몰고 갔다. 1975년 한 해에만 반공 관련 대형 집회가 네 차례나 열렸다. 7월 열린 세계기독교반공대회에서 김준곤 목사는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갈림길에서’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유신 체제를 찬양하는 등 반공을 체제 유지의 방편으로 적극 활용했다. 또한 박정희의 베트남 파병을 지지하며 전국적인 기도회를 열고 파병의 정당성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특히 임마누엘 중대, 다윗 중대, 여호수아 중대 등을 만들어 “하나님을 공경하고 선한 싸움을 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구국십자군을 창설해서 목사들이 직접 총검술 등 군사훈련을 받기도 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대선에서는 불교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명박 정권에서 종교 차별을 받았다고 판단한 불교계가 선거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불교계의 박근혜에 대한 공개 지지 선언은 줄을 이었다. 30·40대 불교 신자로 구성된 ‘3040 정각회’가 공개 지지 선언을 한 이후 태고종 보국회, 전국신도회, 대한불교종단진흥회,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등이 지지 선언에 동참했다. 불교인권위원회도 ‘불교동서화합선언’ 형태로 박근혜에 대한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한기총 등 개신교계도 대선 기간 어려움에 처한 박근혜에 큰 도움을 주었다. 초대형 종교 이슈로 발전할 수 있었던 ‘신천지 관련설’과 ‘1억짜리 굿 사건’ 등을 잠재우는 공을 세웠다. 한기총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박근혜와는 관련이 없다고 밝혀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앞장섰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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