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페미니즘』은 (책의 분량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영화를 포함한 영상 매체에 관한 페미니즘 사유의 거의 모든 주제와 층위를 다루고 있을 만큼 포괄적이지만, 그렇다고 쉽게 읽힐 수 있는 개설서가 아닌 분석의 깊이와 더불어 논쟁적인 성격을 지닌 책이다. 여덟 장으로 구성된 책은 페미니즘 영화 연구에서 역사적 전환이 된 페미니스트 저자(성)의 발견에서 시작하여 관객과 새로운 독해의 가능성, 정신분석적 시선 이론에서 영화의 신체적 만남으로의 이동, 텍스트로서의 스타, 페미니즘 다큐멘터리의 실천과 초국가적 시선, 실험 영화의 전략과 형식, 서사영화(극영화)의 장르들과 젠더의 문제, 뉴미디어 시대와 새로운 페미니즘 시각들이라는 쟁점적 주제들을 갱신과 확장을 이뤄온 페미니즘 영화 이론이 어떻게 해석해 왔으며, 나아가 어떤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가야 하는지를 탐문한다. 이는 영화와 페미니즘 간의 다양한 연결과 상호작용을 다루는 방대한 작업일 수밖에 없는데 무엇보다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책에서 일관되게 적용하는 초국적 지향성과 교차적 접근법이다. 이 점에서 두 사람의 공저자의 관점은 단호하지만 책은 특정한 정치적·이론적 입장을 지지하지 않고 다양한 페미니즘 영화 이론이 상호 경합하면서 논쟁을 통해 보다 역동적이고 생산적인 필름 페미니즘의 출현을 겨냥하고 있다. 각 장마다 텍스트와 관련된 이슈와 쟁점에 대한 토론을 제시하는 등 교육적 요소를 배치한 것도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26회를 맞고 ‘씨네 페미니즘 학교’ 등 페미니즘 영화에 대한 관심에 부합하는 활동들이 있지만 정작 제대로 된 통합된 텍스트가 여전히 부재한 상황에서 『필름 페미니즘』의 출간은 분명 반길 만한 일이다. 환기해야 할 것은 필름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운동의 파생물이 아니라 영화 연구와 이해 자체를 갱신하는 문제 제기로 출현하고 존재해 왔다는 점이다. 페미니스트는 물론이고 영화 연구자에게도 유용한 교과서로 읽히기를 기대한다.
당신이 떠올릴 수 있는 여성 감독의 이름은 몇 개?
“21세기에 이르렀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여성 감독 이름 다섯 개를 대는 것조차 어렵다고 생각한다.” 『필름 페미니즘』의 서두는 이런 말로 시작한다. 글쓴이는 더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분법적 성별에 속하지 않는 감독 이름을 단 하나 떠올리는 것조차 곤란하다고 느낄 것이라 추정한다. 한국의 상황도 결코 나을 바 없어서 굳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의 자료를 들여다보게 되면 여성 감독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라다가도 일상에서 그 이름들은 머릿속에서 증발되어 버린다. 그 이름들은 소위 영화 시장을 지배하는 영화들과 인연이 없거나 다른 문법의 영화를 추구하는 탓이 크리라. 물론 이런 말을 끄집어내는 의도가 여성(들)이 만드는 영화가 시장을 지배하는 주류 영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마치 페미니즘의 목표가 여성에 의한 지배가 아니듯이, 페미니즘 영화가 불평등한 사회의 변화에 있는 한 영화의 존재 방식 또한 주류 영화와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이는 주류 영화가 모두 만들거나 볼 만한 가치가 없다는 말이 아니며 『필름 페미니즘』의 저자가 결코 동의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라 하며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선 저자(책은 두 사람의 저자가 공동 집필한 것이지만 여기서는 단수로 칭한다)의 말처럼 감독이 여성, 트랜스젠더 혹은 비주류 인종에 속한다는 사실이 그들의 작품이 정치적으로 진보적임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권력의 재생산과 이미지의 정치학에 관한 질문들, 그리고 그것이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들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영화에 대한 페미니즘적 사유의 출발을 이루었던 것은 분명하다. 글머리에서 여성 감독의 이름을 거론한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600페이지에 이르는 『필름 페미니즘』은 영화를 포함한 영상 매체에 관한 페미니즘 사유의 거의 모든 주제와 층위를 다루고 있을 만큼 포괄적이지만, 그렇다고 쉽게 읽힐 수 있는 개설서가 아닌 분석의 깊이와 더불어 논쟁적인 성격을 지닌 책이다.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의 첫 장 역시 앞서 말한 영화를 만드는 주체와 관련이 있다. 여기서 저자는 남성 감독에 편중되어 있는 영화의 작가주의적 해석(작가성)에 대비되는 저자성의 개념으로 표준 영화사에서 삭제된 초기 여성 영화 선구자들에 대한 시야로 확장하며, 협업으로서의 영화 작업의 성격을 부각함으로써 여성 영화 제작들만이 아니라 연출 이외에 시나리오 작업과 촬영, 편집과 같은 영역에도 이 ‘저자성’의 개념을 적용한다. 하지만 이후 다른 쟁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여기서도 저자는 결코 젠더를 고정적이거나 본질주의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입장을 경계한다. 퀴어, 인종, 계급, 탈식민성과 같은 사안들은 영화의 저자(주체)를 이야기할 때도 빠트릴 수 없는 고려 사항인 것이다. 다음은 『필름 페미니즘』이 지닌 특징과 장점을 요약한 것이다.
『필름 페미니즘』의 장점과 특징
- 『필름 페미니즘』은 갱신과 확장을 이어온 페미니즘 이론에 기반을 두면서 이것들이 영화 (혹은 다른 영상 텍스트) 해석에 어떻게 적용되어 왔고 그러한 비평적 입장들이 어떻게 경합하고 교차하면서 더 역동적이고 생산적인 페미니즘 영화 연구로 나아갈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을 겨냥하고 있다. 이 책의 서술이 ‘논쟁적’인 성격을 지닌 것은, 이를테면 페미니즘 영화 이론과 실천에 있어 선구적인 로라 멀비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그 한계를 동시에 비판적으로 극복하려는 입장들을 보여 줌으로써 비평적 사유를 확장하고 교차적으로 만드는 작업을 수행하는 데서 비롯한다. 여기에는 초·중기 페미니즘 영화 이론이 포괄하지 못했던 철학적 사유들이 폭넓게 수용되고 있다. 교차적인 관점은 필연적으로 논쟁적일 수밖에 없으며 상대주의와는 다른 비교주의적 태도를 지탱하면서 고정되지 않은 개방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초기 페미니즘 영화 이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정신분석이나 기호주의적 혹은 구조주의적 해석틀은 경험주의의 문제의식과 직면하게 되는데 특히 들뢰즈/가타리 철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도 그러한 연유이다.
- 책은 영화와 페미니즘 간의 다양한 연결과 상호작용을 다루는 방대한 작업이지만 저자가 페미니즘 영화 연구와 그와 관련된 지적 궤적들이 어떻게 교차하고 변화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들은 포스트식민주의, 초국가, 장애 연구, 비판적 인종 이론 등이다. 영화 연구의 주요 개념에 대해 젠더, 인종, 계급, 국가라는 사안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강조하는 것은 더 이상 특수한 관점이 아니라 필수적인 작업이라는 것이다. 책의 원제가 페미니즘을 복수형으로 쓴 것은 페미니즘이 하나의 통일된 정치적 지적 관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서인데 저자가 그럼에도 단호한 초국적 지향성과 교차적 접근을 선택하는 것은 모순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귀결로 읽힌다. 책의 각 장을 구성하는 다양한 영화/영상 텍스트들, 감독을 포함한 영화 제작자(저자)들, 이론적 텍스트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선택된 것들이다.
- 여덟 장으로 구성된 책은 페미니즘 영화 연구에서 역사적 전환이 된 페미니스트 저자(성)의 발견에서 시작하여 관객과 새로운 독해의 가능성, 정신분석적 시선 이론에서 영화의 신체적 만남으로의 이동, 텍스트로서의 스타, 페미니즘 다큐멘터리의 실천과 초국가적 시선, 실험 영화의 전략과 형식, 서사영화(극영화)의 장르들과 젠더의 문제, 뉴미디어 시대와 새로운 페미니즘 시각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는 주제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페미니즘 영화 이론에 있어 쟁점적인 사안들로 선택된 것들이다. 이들 주제들은 그 자체로 한 권의 책으로 다룰 만한 것들이지만 저자가 이 주제들이 페미니즘 영화 연구에서 어떤 논쟁적 쟁점들로 전개되어 왔는지를 다루는 솜씨는 뛰어나다. 자칫 특정한 관점에서 섣불리 해석의 완성을 꾀하거나 닫아 두지 않는 것이 상대주의와 다른 것은 영화/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