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일기? 그거야 시간문제지 / 백 미터만 앞으로 나아갑시다
매닉스 LP를 샀다, 그리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 크리스마스이브? 그런데 내 전 재산은
트위터에 “올해 책 다섯 권 내야지”라고 적었다 / 월요일 나. 화요일 나. 수요일 나.
말하자면 모든 것이 필요했다 / 우리에게는 필요한 시간이 모두 주어져 있다
봄
금정연_ㅅ.hwp / 글쓰기 외의 직업을 갖고 싶다는 소망
이 책은 이렇게 나올 운명인 모양 / 내 책은 출판에 임박해 떨고 있으며
한마디로, 너무 피곤하다 / ‘은신처’라는 책을 펴낼 생각이야
여름
내 책이 한 권도 없는 서점에서 / 한밤에 책이 쓰러지는 소리에
언제까지 이런 메일을 써야 할까? / 돈 편지(money letter)의 저주
그 모든 것들을 버리고 나는 무엇을? / 네가 말한 모든 것을 기록하고 싶다
가을
마흔둘의 생일이 이렇게 지나간다 /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 옛날의 박력
상금이라도 받지 않으면 못 견딜 자리 / 내가 ‘노벨상 가능자’인 것은 사실이다
이런 어린이가 어디 있냐 / 진짜 걱정은 어른들의 얼굴 높이에 있다
겨울
그야말로 중년의 연말이다 / 조심조심 쓰는 건 죽음과 같은 글쓰기
그런데 어디로 가지? / 시계는 ‘떠남’을 가리키고 있다
근데 다 그냥 될 거 같은데? 이센스가 노래했다 / 이제 아빠는 우주로 돌아가는 거야?
다시, 봄
발등은 타고 있는데 어째서 마음이 편한 거지? / 안 가라앉는 날이 있나!
오늘도 자라느라 고생이 많은 나윤이는 / 너도 아이처럼 그냥 계속 뚝딱거려 봐
나는 미쳤다, 나는 글들을 지배한다 / 어떤…… 막막함이…… 중첩되었다
여름
나는 쓰레기인가? 직업윤리가 없나? / 쓰고 싶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남들 다 하루치 늙는 동안 나 혼자 / 마이크에 이야기한다, 나 혼자서
내 생각엔, 그게 바로 작가인 것 같다 / 그 문장을 아예 지우기로 했다
가을
그렇지만 나는 쓰지 않을 수 없고 / 세상을 말로 옮겨 놓는 단순한 습관
그렇다면 일기는 내가 아는 최고의 핑계 / 나는 살고 싶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