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기쁨

토머스 채터턴 윌리엄스 · 에세이
3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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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부_이중생활 흑인다움의 발견 사악한 램프의 요정 진흙탕을 뒹구는 망아지 내가 누구라고 반대하겠는가? 2부_결별 굴레를 벗고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3부_자유롭게 서광이 비치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우물이 세상의 전부 모든 비밀은 힘을 잃는다 후기 감사의 글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나의 아버지, 1만 권의 책, 그리고 길바닥에서의 탈출에 관하여 “막다른 벽을 마주할 때마다 답은 항상 아버지의 서재에 있었다.” 동시대에서 ‘가장 신선하고 도발적이며 진보적인 비평가’로 꼽히며 『하퍼스』, 『르몽드』 등 세계 유수의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세계적인 문화비평가 토머스 채터턴 윌리엄스. 십대 시절만 해도 책은 위험물로 취급하고 거칠고 잘나가는 형들을 동경하던 길바닥의 망아지가, 어떻게 거리의 질서를 거부하고 헤겔과 도스토옙스키를 읽고 배움의 희열을 느끼는 철학도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윌리엄스는 이 회고록에서, 피 튀기는 싸움질이나 하며 여자친구를 함부로 대하고 잘하는 건 농구밖에 없는 비쩍 마른 십대에서, 한 명의 어엿한 철학도이자 작가로 탈바꿈한다. 이 모든 일은 그의 아버지 덕분이었다. _타라 맥캘비, 『뉴욕타임스』 이 책은 잘못된 대중문화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영혼과 방향을 잃을 수 있는지로 시작하여,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에게 부여된 사회적 제약을 벗어나는지, 그리고 거기에 가족의 사랑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아냈다. _자바리 아심, 『워싱턴포스트』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을 각오로 쓴 처절한 배움의 연대기 미국 뉴저지주에 위치한 작은 마을 팬우드. 문화적으로 별다른 유산도 갖지 못했고 시내에 서점 하나 보이지 않는 이 지역은 뜻밖에도 매우 걸출한 작가를 배출한 곳이다. 바로 미국과 프랑스를 무대로 활동하는 문화비평가 토머스 채터턴 윌리엄스의 이야기다. 그는 동시대에서 ‘인종 문제에 관하여 가장 신선하고 도발적이며 진보적인 비평가’(『더 크리틱』)로 꼽히며 『뉴욕타임스매거진』, 『하퍼스』, 『르몽드』 등 세계 유수의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세계적인 작가다. 그런 그가 이곳 팬우드에 살던 십대 시절만 해도 피 튀기는 싸움질이나 하며 여자친구에게 손찌검을 하고 잘하는 건 농구밖에 없는 껄렁껄렁한 소년이었다고 하면 믿어지는가. 이 책에는 한때 길바닥의 망아지였던 저자가 주어진 어두운 환경을 극복하고 어엿한 철학도로 거듭나는 과정이 적나라할 만큼 진솔하게 담겨 있다. 다만 윌리엄스가 이 책에서 드러내려는 것은 한 불굴의 인간이 이루어낸 ‘개천의 용’ 서사가 아니다. 오히려 개천의 용 따위를 꽃피울 의지도 찾아볼 수 없는 처참한 사회적 현실을 당사자이자 경험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있다. 1980~90년대에 걸친 저자의 학창시절은 거친 힙합 문화가 군림하던 시대였다. 갱스터랩을 들으며 지식과 호기심을 금기시하고 힙합만을 유일한 진리로 떠받들던 또래 흑인 사이에서는 몸짓과 말투로 깡패를 흉내내는 것이 삶의 필수 요소였다. 특히 흑인 소년이라면 굳이 원치 않아도 무릇 흑인에게 요구되는 터프함을 표출해야만 학교라는 야생의 공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체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우리’가 아닌 사람들 앞에서 강해 보이고, ‘우리’ 사이에서 정상인으로 보일 수 있었으니까. 또래를 지배하고 있던 정신적 빈곤에 마찬가지로 흠뻑 젖어 있던 윌리엄스는 점차 길바닥의 질서를 거부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한 명의 나’로서 존재하기로 한다. 세계로 나 있는 문을 열고 나가기 위해 여태껏 자기에게 활짝 열려 있던 문을 닫고자 한다. 그는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진흙탕 한가운데 외딴섬처럼 떠 있던 아버지의 서재, 그곳은 ‘진짜’ 세계로 향하는 길목이었다 저자에게는 주변의 친구들에게는 없던 특별한 아버지가 있었다. 클래런스 리언 윌리엄스. 아버지는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미국 남부 출신의 흑인으로, 그 시대의 여느 흑인들이 그러했듯이 아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을 살아왔다. 그는 흑인이 교육을 받으려면 죽을 각오를 하라는 말이 오가던 시대에 손전등 불빛에 의지하여 책을 읽고 끝내 사회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가히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이후 학자로서의 경력을 그만두고 입시학원을 운영했던 아버지는 책을 향한 사랑(또는 강박)이 극진했고, 그의 좁은 집을 1만 5천 권 이상의 책으로 빽빽이 채웠다. 그 모습은 흡사 “인테리어 디자인의 문법은 물론이고 물리학의 법칙마저 시험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자연히, 아버지는 저자에게 어릴 적부터 지성의 함양을 요구했고 일대일로 앉아 공부를 가르쳤다. 아들을 위해 닌텐도 게임기와 밤샘 파티 대신에 삼단논법, 공간 추론, 어휘력 향상, 연산, 독해 등으로 구성된 체계적인 고강도 학습 계획을 세심하게 마련해두었다.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윌리엄스는 밖에 나가서는 또래 집단의 거친 문화에 휩쓸리는 한편, 집에서는 여지없이 아버지 앞에 앉아 얌전히 공부하는 이중생활을 하기에 이른다. 열여덟 살 즈음에는 동네의 분위기를 거스르지 않는 ‘진짜’처럼 보이는 동시에 아버지까지 만족시키는,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인상적인 것은 저자를 책 속에 파묻히게 한 아버지의 태도가 결코 권위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인내심 있게 기다려줄 줄 알았고, 직접적인 지시를 내리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해서 답을 찾아가게 하는 조언을 들려줄 줄 알았다. 저자는 이런 아버지를 “악역을 맡고 싶지 않아 내적 갈등을 겪는 온화한 독재자”였다고 표현한다. 이후 대학에 들어가 철학도의 길을 걷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며 깨달음을 얻고 미적 추구의 수단으로서 책을 읽게 되었을 때, 저자는 아버지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도 좁은 집을 1만 5천 권의 책으로 포위시킨 따뜻한 독재자가 실은 즐겁게 책을 읽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나는 소설을 읽을 때도 무조건 펜을 쥐고 밑줄을 그어 가면서 읽었다, 아들아. 밑줄 긋는 걸 좋아해서 그런 게 아냐. 뭐라도 지식을 건져서, 뭐라도 실용적인 지식을 건져서 내 인생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강박 같은 거였지.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 나한테 뭐라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 그래서 나한테 필요한 지식은 모두 책 속에 있을 테니까 책만 열심히 읽으면 다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래, 책이란 걸 그냥 예술 작품으로 취급할 수가 없었지.” (225~6쪽) 윌리엄스는 스스로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아버지가 똑같은 책을 즐겁게 읽지 못했기 때문임을 깨닫고 부채감을 느낀다. 그렇게 자신이 한 세대 이전의 흑인인 아버지가 경험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자유롭다는 사실은 심히 비극적이면서도 심히 희망적이기도 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씌운 굴레, 다시 말해 ‘문화’에 있었다 『배움의 기쁨』의 탄생은 저자가 뉴욕 대학교의 대학원생이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교수로부터 자유 주제를 골라 강경한 입장에 서서 논평하라는 과제를 받은 그는 자신이 목격한 힙합 시대 흑인 문화의 타락에 관한 글을 단숨에 써냈고, 이 논평이 『워싱턴포스트』에 실리면서 찬성과 반대 양쪽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이 주제에 관한 심각한 담화가 존재함을 발견한 윌리엄스는 해당 논평을 책으로 진전시킨 『배움의 기쁨』에서 흑인 사회가 안고 있는 정신적 빈곤이 피부도, 색깔도, 모발의 질감도, 심지어 돈도 아니고 문화에서 비롯한다고 고발한다. 문화 때문에 지독한 제약을 받고 호되게 속아왔으며, 그 최악의 굴레를 흑인이 스스로에게 몸소 씌워왔다는 매우 도발적인 이야기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도, 흑인 사회에 뿌리내린 정신적 빈곤, 피상적 사고, 도덕적 미성숙, 기계적 순응이야말로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진짜 주제임을 분명히 밝힌다. 하지만 강경한 주제와 별개로, 저자는 이 책이 처음의 의도와 다르게 개인적인 회고록으로 흐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읽는 순간 빠져드는 만드는 한 청년의 서사가 문학적인 재미를 선사하기에 소설을 읽듯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동시에 주요한 사회적 관점을 환기하기 때문에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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