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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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작가 김연수가 날마다 읽은 시 중 99편을 골라 말하다 작가 김연수가 날마다 읽은 시, 그중 99편을 가려 뽑고 한 편 한 편에 특유의 감성적인 언어를 더해 들려준다. 그는 시를 해석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시를 읽을 때 떠오른 기억, 사랑했던 날들을 가만히 음미하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따라간다. 애틋하고 아름다웠던 ‘순간’을 이야기한다. 낱말 하나도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인용 작품의 글귀, 그리고 따뜻함과 아릿함을 주는 김연수의 문장이 만나 또 하나의 작품으로 빛을 발한다. “하루 중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는 유일한 시간” -시를 읽으며 그가 생각하는 것들 1부 ‘우리의 포옹은 빛에 싸여’의 주제는 ‘사랑’이다. 저자는 한세정의 이별시 「입술의 문자」를 읽으며 “우리 입술이 아름다운 건 한때 우리도 누군가의 이름을 간절하게 불러봤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조원규의 「풀밭에서」를 읽으면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품에 안았을 때 느껴지는 심장 박동, 한 번 심장이 뛰고 그 다음 뛸 때까지의 시간이야말로 “진실의 순간”이라 느낀다. 한편 아무도 몰래 술자리를 빠져나와 오가는 사람들을 보거나 하늘을 올려다보는 취미가 있는 그는, “주책없이 경치에 빠지는 것”, “견딜 수 없이 허우적대는 것이 스스로의 요구인 것”이 사랑이라 말하는 이병률의 시 「사랑은 산책자」를 읽으며 밤의 한때를 떠올리기도 한다. “하루 중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는 유일한 시간. 허우적허우적, 그런 마음을 얼버무리면서” 말이다. 2부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는 ‘나’, 즉 작가 자신에 관한 것이다. 그는 마종기의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를 읽으며 희망이란 “매일 낮과 밤이 바뀔 무렵이면 어김없이 보이는 노을 같은 것, 수천 번의 절망을 각오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손택수의 「새의 부족」을 읽고는 철새의 이동을 떠올리며 “나는 이 지구의 어디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다는 건지. 갑자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가 시를 읽으며 ‘삶’에 대해 생각한 것들은 3부 ‘저무는 저녁에는 꽃 보러’에서 만날 수 있다. “돌이 식는다/밤의 숲 속을 헤매다 주운/창틀 위에 올려놓은//돌이 식는다”로 시작하는 이성미의 「달과 돌」은 그로 하여금 ‘식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식어가는 모든 것들은 절정의 뜨거움을 지나온 것들이겠죠. 한여름을 지나온 단풍들은 모두 붉어지는 것처럼. 식어가는 것들의 밤, 어둠의 한때, 가을, 서늘함…… 그리고 바로 거기가 다시 뜨거움을 향한 갈망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미지未知를 끌어안으세요. 두려움 없이. 거기서 모든 일들이 다시 시작될 테니. ―이성미의 시 「달과 돌」 감상글(193쪽)에서 이는 절망의 고통이 새로운 시작을 낳는다는 것, 우리는 살면서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 세계와도 닿아 있다. 또한 소통의 가능성에 천착하는 그에게 김신용의 「섬말 시편-잎」은 “우리에게 중요한 말들은 그렇게 크게, 또렷하게 들리지 않”으며, 따라서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귀를 기울인다는 건, 온몸으로 잘 듣는다는 뜻이라는 걸. 침묵 속에는 침묵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아낌없이, 남김없이. 모두 다른 날들이니” -날마다 시를 읽는다는 것 작가 김연수는 한 인터뷰에서 “아낌없이. 남김없이. 모두모두 다른 날들이니, 자기 삶을 세세하게 구체적으로 편애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일에는 감정을 아끼지 마세요. 사치스럽게”라고 말했다.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해석하기 위한 시 읽기가 아닌, 음미하고 느끼기 위한 시 읽기와 만나 일상에 의미를 부여한다. 반복되는 낮과 밤,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까지 어느 것 하나 새롭지 않은 게 없다. 십일월은 온몸으로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우는 달이랄까요. 어느 밤, 무심결에 창문을 열고 집 앞 골목을 바라보노라니 작은 정원의 나무에서 숨을 내쉴 때마다 한 장씩 나뭇잎이 떨어지고 있더군요. 멀리서 아이가 달려가는 듯한 그 소리. 떨어지는 잎들을 보며 도루왕보다도 더 빨리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했더라면 그 희미한 소리, 하지만 마치 온 세상이 떨어져 내리는 듯 내 마음을 장중하게 울리던 그 소리를 듣지 못했겠죠. ―안현미의 시 「시간들」 감상글(17쪽)에서 새벽에 길을 걷는데 갑자기 주변이 어떤 소리로 가득해졌어요. 환청 같은 소리들. 작은 알갱이들이 일제히 떨어지는 소리들. 살펴보니 그건 일기예보에서 들은 대로 말하자면, ‘첫눈다운 첫눈’이 아스팔트로 떨어지는 소리였어요. (…) 그럼 지난여름에 들었던 빗소리는 지금쯤 어디까지 날아갔을까요? 달까지? 혹은 화성 정도? 그렇다면 그 시절, 우리의 웃음소리들은 또 어디까지 날아갔을까요? 그 한숨소리는 또 어디까지? ―최승자의 시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마」 감상글(182쪽)에서 “시를 읽는 동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무용한 사람이 된다” -시 읽기의 즐거움 시를 읽는 동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무용한 사람이 된다. 시를 읽는 일의 쓸모를 찾기란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아무런 목적 없이 날마다 시를 찾아서 읽으며 날마다 우리는 무용한 사람이 될 것이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최소한 1시간은 무용해질 수 있다.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뭔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걸 순수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날마다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 순수한 존재를 경험할 수 있다. -「책을 내면서」에서 그는 시를 읽는 즐거움을 무용함에서 찾는다. 시간을 계획적으로 관리하여 가치를 창출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미덕이라 여기는 현대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대목이다. 정신없이 달려왔던 나, 조직 속의 나, 무언가 해내야 하는 나를 잠시 쉬게 하고 목적이나 쓸모를 묻거나 따지지 않는 시간을 보내는 것, 그 순수한 시간의 의미를 환기한다. 천천히 걷다 보면 목적지만을 향해 빠르게 달릴 땐 미처 몰랐던 여러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우연적이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와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이 세계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의 모호한 현상들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루 중 얼마간을 그런 시간으로 할애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작가의 말처럼 “약간 고귀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