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새 ‘민족문학사’의 의미
구비서사에서 2천년대 대중문학까지를 일관된 문제의식으로 아우른 한국문학통사(通史) 『새 민족문학사 강좌』1, 2는 제목의 ‘새’ 자에서 짐작할 수 있듯 『민족문학사 강좌』상, 하(창작과비평사 1995)의 개정증보판이다. 민족문학의 사적(史的) 확립을 주된 과제로 삼은 성과가 첫 『강좌』라면, 『새 강좌』는 애초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으면서도 지난 14년간 축적된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과 연구와 폭넓은 연구방법론을 수용하여 개인 연구서가 포괄하기 어려운 깊이와 시야를 갖추고 한국문학의 변모하는 흐름을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문학과 사회적 실천의 연관을 중시하는 문학운동담론으로서의 민족문학론이 2천년대 들어 복잡다단한 문학적ㆍ사회적 변화를 수용하여 한국문학의 세계적 보편성을 강조하는 지금, ‘새 민족문학사 강좌’의 ‘민족문학’이 실상 한국문학을 가리킨다는 것은 1권의 총론 「민족문학의 개념과 그 사적 전개」(임형택)의 서두에서도 밝히고 있다. 그 말이 포괄하는 대상과 의미가 다르지 않은데도 ‘민족문학’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한국문학사를 민족(문학)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이 여전히 유효하며 애초의 문제의식이 아직 해답을 얻지 못한 미완의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의식인가?
민족문학의 기본요건은 ‘민족의 삶을 향상시키며, 자유와 행복을 실현하는 데 의미가 있는 내용’으로 ‘민족의 생활과 사상을 진실하고 아름답게 표출해서 깊은 감명을 주’는 데 있다. 또한 ‘근대적 민족 개념 또한 중세의 속박에서 다수 인민을 해방시키며 성립되었으니 민족문학의 핵심은 민주주의에 있다’(「총론」)는 것이 이 문제의식의 바탕을 이룬다. 우리의 경우 민족 형성과정과 근대문학의 정립과정에서 보이는 서구적 기준과의 다양한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우리 문학사에서 진정한 ‘민족문학은 아직 확립되지 않’았고, ‘완수하지 못한 숙제’라는 생각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깨우침의 소리로서 여전히 유효하다.
『새 민족문학사 강좌』의 특징: 다양한 가치의 공존과 소통, 입체적으로 되살린 한국문학의 역동성
문제의식의 근본을 이어받았지만 이전 『강좌』의 한계에 대한 성찰과 극복, 나아가 지평의 확대는 필수과제이다. 『새 강좌』는 ‘민족’의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었던 편향을 넘어서서 실물에 즉한 한국문학사의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었다.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존중하는 균형감각에 더해 폐쇄적 민족중심주의를 넘어선 다양한 가치의 공존을 수용하여 소통과 영향관계를 조명한 것은 [차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성과이다. 이는 다원주의에 대한 존중을 통해 개별적 자아가 민족을 매개로 세계와 소통해야 한다는 성찰에서 비롯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1권의 「동아시아 서사문학의 지평과 나말여초 서사문학」(정출헌)「조선후기 사행문학과 동아시아 문화교류」(장경남) 등은 우리 문학의 독자적 특질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문학, 세계문학 및 타 문화와의 교류과정과 영향관계에 관심을 둔 새로운 성과들이다. 「조선후기의 시정과 문학 속의 풍속」(이지양) 「여성문학의 전개와 여성의 목소리」(김동준) 등은 각기 풍속사와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조선(후기) 문학을 고찰하는 글들로,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수용하여 문학사에 접목한 결과물이다. 19세기의 반봉건 항쟁과 문학적 대응에 초점을 맞추던 데서 나아가 19세기의 사회적 변동 속에 생산된 문학작품들을 고찰하고 근대문학과의 접점을 비연속의 연속으로 조명하는 이형대의 글은 이전 시기의 한계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있다.
근현대문학 연구는 2권에 집약되어, 그간 축적된 연구성과를 집약하고 있다. 2권 첫머리 최원식의 「민족문학의 근대적 전환」은 그간 제출된 근대문학 기점론의 다양한 이론(異論)을 훑으면서 자신이 제출한 기존의 애국계몽기(1905~10) 기점론을 재고찰한다. 애국계몽기와 1910년대를 계몽주의 시대로 통합적으로 조망할 것을 요청하며 1894년 갑오경장을 시발로 계몽주의문학을 총3기로 나누고, 3ㆍ1운동을 대단원으로 삼을 것을 주창함으로써 특정연도에 국한된 기점론을 넘어서 다양한 문학적 경향을 비연속 속의 연속적 흐름으로 파악하는 성과를 보여준다.
우리 문학에 유입된 초기 근대 외국문학의 수용과 영향관계를 규명한 「계몽기 번역론과 근대적 소설 문체의 발견」(정선태), 일제 식민지하에서 모더니즘의 수용을 ‘식민지근대성’으로 파악하고 문학적 성과를 고찰한 「식민지근대성과 모더니즘 문학」(김종욱) 「파시즘시대 한국시의 자유와 부자유」(최현식), 굴절된 모더니즘과 자유주의 문학의 사회적 의미를 고찰한 「1970,80년대 자유주의 문학」(류보선·이기성), 민중적 연희예술 장르가 제도화되는 근대극의 형성과정을 살핀 「근대극의 모색과 전개」(이승희), 판소리를 이어받은 마당극 운동을 현대희극사의 흐름에서 조명한 「현대희곡의 전통 수용과 마당극」(배선애) 등은 모두 장르간, 사조간 시대를 넘나들며 이루어진 영향관계를 세심하게 조명하여 한국문학사의 입체적 면모를 생생하게 살려내는 데 한몫을 한다.
제도적 관점에서 근대적 문단의 형성과 운영과정을 고찰한 「근대문학제도의 성립」(차혜영)과 「여성의 관점에서 본 근ㆍ현대문학사의 (재)구성」(김양선)이 각기 연구방법론에 새로운 시각을 도입한 것이라면, 「아동과 문학」(원종찬) 「대중문학의 이해」(조성면) 등은 현대 한국문학이 생산해낸 새롭고 주요한 움직임을 본격 문학사의 흐름 속에 포섭하고 있다.
「민족문학론의 역사적 전개」(신두원)는 사회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제기된 민족문학론의 역사적 배경을 1920년대, 1970,80년대와 90년대 이후로 나누어 각각의 함의를 짚고, 민족문학론의 성과와 전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민족문학사’가 구성되는 이론적 배경을 실물로서 느끼게 하는 글이다. 「1990년대와 탈이념시대의 문학」(진정석)은 90년대 이후 급격히 ‘개인’과 ‘새것’에 경도된 문학적 흐름의 생성배경을 섬세하고 균형감있게 정리하고, 그것의 공과를 날카롭게 짚어낸다. 여전히 이러한 흐름의 자장 안에 있는 2천년대 지금의 한국문학이 주목하고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있다.
『새 민족문학사 강좌』는 민족문학사연구소 59인의 필자가 3년여의 기획과 집필, 수정과 보완 등 말 그대로의 공동작업을 거쳐 내놓은 것으로, 개인 연구서가 보여주기 어려운 총체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국문학사가 살아 움직이며 만들어지는 흐름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결실이다.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로 손색없을 뿐 아니라 한국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각 글 말미의 [더 읽을거리]를 통해 깊이있는 이해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