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세계’에 대한 목마름을 느껴본 적이 있지 않은가?
유전적 결정론과 환원주의적 세계관에 맞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통해 인간 본성의 근원을 탐구한
우리 시대의 시작에 있는 철학자,
메리 미즐리의 대표작이자 도덕철학의 기념비적 고전
『짐승과 인간』은 매우 중요한 책이다. 과학이나 철학의 전문용어를 동원하지 않으면서 그 실체를 꼼꼼하게 다룬 이 두꺼운 책은 생생한 논의를 광범위하게 제시하고 있으며, 과학자에게도 철학자에게도, 전문가에게도 일반인에게도 흥미로울 것이다. 개념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철학적 문제를 짚어가면서 미즐리는 과학과 철학 사이에 시급히 요구되는 다리를 놓았다.
_아이리스 머독(철학자, 소설가)
『짐승과 인간』은 철학자 메리 미즐리의 첫 저서이자 대표작이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탐구한 이 책은 철학, 윤리, 심지어 과학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 그의 주요 주제와 사상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인간이 다른 종들과 구별되는 성질에 집중했다. 미즐리는 철학의 장에 동물행동학 연구를 가져와 인간과 다른 종의 유사성을 탐구한다. ‘인간 행동의 동기는 무엇일까?’ 미즐리는 우리가 이해하는 것보다 넓은 관점에서 볼 때 인간 또한 늑대와 곰과 코끼리와 같은 동기로 행동한다고 말한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동물 쪽을 간과하면 인간 행동의 풍부하고 복잡한 면모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요지이다.
그는 콘라트 로렌츠, 니코 틴베르헌, 제인 구달을 비롯한 동물학자들의 동물행동 연구를 언급함으로써, 플라톤에서 실존주의에 이르는 전통 철학이 동물 본성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고, 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얼마나 왜곡했는지 드러낸다. 그와 동시에 리처드 도킨스나 에드워드 윌슨 같은 과학자들의 유전적 결정론을 기초로 한 환원주의적인 세계관을 비판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 과학과 윤리의 관계, 인간 행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 과학과 진화론의 발전이 갖는 의미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인간 본성에 대한 보다 통합적인 이해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시대의 한계를 넘어선다. 첫 출간 20년 후 개정판이 나오고 21세기의 생명윤리학적 논쟁에 더욱 타당하다고 인정받으며 출간 시점보다 더 유효하게 읽히는 지금의 상황이 이를 증명한다.
● 『이기적 유전자』 vs 『짐승과 인간』
“이기적이라는 말은 그 의미가 거의 전적으로 부정적이기 때문에 이상한 단어입니다. 이 말은 ‘신중하다, 자신의 이익을 증진한다’는 뜻으로 쓰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증진하지 않는다’, 또는 사전에 표현된 대로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제하고 자신의 이익에 전념하거나 관심을 갖는다’를 의미합니다. […] 모든 것이 흰색이라면 흰색이라는 단어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항상 이기적이라면 이기적이라는 단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기심은 보편적인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__『가디언』 인터뷰에서
1976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출간되었다. 유전자가 자연선택의 기본 단위이고, 유기체는 유전자의 ‘수단’으로 볼 수 있으며, 유전자는 이기적 복제를 통해 진화를 주도한다고 주장하면서, 출간 당시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진화생물학의 최신 이론을 접목해 주목을 받았다.
1978년, 메리 미즐리의 『짐승과 인간』이 출간되었다. 동물과 인간의 닮은 점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을 재고하는 이 책은 출간 당시 많은 주목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진화생물학, 사회생물학이 주목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영장류에서 진화한) 인간의 영광에 찬물을 끼얹는 형국이었다. 진화된 유전자를 갖고 있는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같단 말인가!
1979년, 마침내 리처드 도킨스와 메리 미즐리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이른바 ‘유전자 저글링(gene juggling)’. 유전자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진화론, 인간 본성, 인간 행동에 대해 신랄한 논쟁이 벌어졌다(이 철학적 논쟁은 세 편의 글에 걸쳐 벌어졌다). 떠오르는 신성 도킨스와 첫 저서로 남성 철학자 일변의 철학계를 뒤집어버린 미즐리. 시대의 큰 조류가 도킨스를 밀고 있었지만 메리 미즐리가 호락호락 물러설 인물은 아니었다. 미즐리는 도킨스가 다윈주의의 불편한 부분을 무시하면서 과도하게 단순화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기적 유전자』가 언어와 내용에서 19세기 사회다윈주의와 유사하다고 지적하며, 그것이 경제적, 사회적 정책에서 약자들을 버리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미즐리는 인간이 유전자의 조종을 받는 유기체가 아닐뿐더러, 행동의 동기에 있어 동물과 다르지 않으며, 알 수 없는 것에 둘러싸인 것이 인간의 운명이고, 그 운명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 인간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몇 년간 서로 간접적으로 공격을 주고받았고, 미즐리는 도킨스의 작업을 “생물학적 대처리즘(biological Thatcherism)”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도킨스는 그의 비판을 “이해할 수 없는 초인적인 오해”라고 표현했다.
미즐리는 저명한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과 DNA 공동 발견자인 프랜시스 크릭 등 20세기 과학의 거물들도 가차 없이 비판했다. 하지만 미즐리의 진정한 목표는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찰스 다윈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고, 세계에서 인간의 위치는 진화의 관점에서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철학은 과학적 사고를 설명하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망칠 수 있는 잘못된 (과학적) 아이디어에 대한 필수적인 치료법이었다. 그리고 그 다리의 첫걸음이 『짐승과 인간』이다.
● ‘진짜 세계’에 대한 목마름을 느껴본 적이 있지 않은가?
“[지구는] 목적으로 가득 차 있으며 […] 유기체로 가득 차 있고, 모두 각자의 특징적인 삶의 방식을 꾸준히 추구하는 존재, 각자가 되고자 하는 독특한 존재를 파악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_메리 미즐리
2025년 현재, 『이기적 유전자』가 설명하는 진화생물학은 이제 많은 부분 구식이 되었다. 자연선택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유전자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생명체는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수단’으로 단순화한 나머지 적잖은 오독을 불러오고 있다. 그럼에도 도킨스의 유전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신 유전학에서는 도킨스의 주장을 반박하는 연구들이 많이 진행되었지만, 찾아보기도 어렵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이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이런 처절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기적인’ 사람(유전자)이 살아남는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백인은 흑인보다, 남자는 여자보다, 인간은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은 여전히 공고하다. 그리고 그 부끄러운 믿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누군가는 유전자를 슬쩍 들먹인다(내가 그런 게 아니라 유전자 때문에 그런 거야).
‘트루스니스(truthiness)’. 코미디언 스티븐 콜베어는 증거와는 무관하게 직관으로 파악하는 진실을 가리키기 위해 이 단어를 만들었다. 믿고 싶은 것이 진실이 되는 시대다. 그리고 그렇게 쉬운 진실이 유통되고 있다. 그렇지만 문득, 초겨울 저녁 기러기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면서 하늘을 가르며 날아갈 때… ‘진짜 세계’에 대한 목마름을 느껴본 적이 있지 않은가? 그 진짜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짐승과 인간』에 있다.
● 책의 구성
“한쪽에는 사회과학자들과 실존주의자들처럼 인간 본성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데스먼드 모리스처럼 인간 본성은 분명 존재하며 잔인하고 저열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