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세기말 미국이 세계 문학사에 영원히 남긴 흉터
그러나 구원은 흉진 곳에서만 발견된다
2017년, 문학 비평가 케빈 잠브라노는 이렇게 말했다. “출간된 지 25년이 지난 지금, 『예수의 아들』이 미국 전역의 글쓰기 워크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책의 목소리는 완전히 자유로운 정신,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정신 그 자체다.” 이 말 그대로 『예수의 아들』은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는 미국인들이 참고하는 경지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도 끝없는 감탄과 상찬을 끌어내고 있다. 1992년에 출간된 이 연작 단편집은 20세기 말 미국 문학이 남긴 위대한 유산으로 일찌감치 자리 잡은 것이다. 그 위대함을 구성하는 가장 큰 매력은 이 작품이 20세기 미국 서던(남부) 고딕 소설의 미덕을 집약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마치 격발된 채 방아쇠가 당겨지기를 기다리는 총알처럼, 『예수의 아들』에 응축된 에너지는 실로 고요하고 강렬하다.
이 책에 수록된 11편의 이야기는 이름 없는 화자를 통해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되는데, 마약 중독자이자 방랑자였던 화자의 정서적 결함 때문에 서사는 대체로 혼란에 빠져 있다. 이 혼란 및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은 앞서 언급한 장르 즉 플래너리 오코너와 윌리엄 포크너로 대표되는 미국 서던 고딕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비참하고 건조한 세계 속으로 부조리가 서서히 스며들고, 등장인물들이 불현듯 자신들의 내외에 스며든 그 부조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부조리, 이 세계의 어법 혹은 논리 바깥에 존재하는 힘 혹은 감수성.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들의 의식 바깥에서 찾아온 그 미지의 에너지를 (대개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현실의 바깥으로 향하기 위한 단서로 간주하게 된다.
물론 그 탈출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화자도 작가도 말해 주지 않는다. 그들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아들』의 화자는 저 바깥으로 시선을 돌릴 때마다 행동이나 사고를 멈추고, 그 멈춤을 통해 독자들이 미지의 문 앞에서 스스로 행동하도록 놓아 둔다. 이 소설을 읽은 독자 중 상당수는 『예수의 아들』이 구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건 아마도 이 겸허함 안에서 종교적인 성정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강덕구 평론가는 『예수의 아들』이 신체에 난 구멍들(눈구멍에서 쏟아지는 눈물, 칼에 찍혀 구멍이 난 눈, 얼굴 배에 난 총알 구멍 따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설의 화자 혹은 작가 자신이 그 구멍을 통해 저 너머에 있는 구원받은 영토를 엿본다고 말한다. 물론 이들 중 누구도 그 구원에 당도하지는 못한다. 성경 속 선지자 세례 요한에 따르면 인간은 구원을 창조하거나 포획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오직 때가 오리라고 말하고 그날이 오기를 기다릴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소설 속에서 어떤 기적의 징후를 감지하지만(예를 들어 J. D. 샐린저의 걸작 단편들은 그에 관한 간증집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우리에게 왔던 그대로, 신비인 채로, 우리 곁에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미국 단편 소설들이 추구하는 미덕을 집약한 걸작
건조하고 공허한 세계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아름다움
한편 『예수의 아들』은 스타일 면에서도 20세기 미국 단편 문학의 결산으로 삼을 만한 작품이다. 심지어 존 업다이크는 데니스 존슨을 미국 문학의 거장들과 비유하는 것만으로 그를 향한 상찬을 완료했다. “톰 존스, 레이먼드 카버… 초기 헤밍웨이의 번쩍이는 경제성과 공격적인 미니멀리즘…” 물론 이 목록은 훨씬 길어질 수 있다. 존슨이 절망에 빠진 서민 혹은 괴짜의 삶을 단숨에 스케치하면서 그 거친 윤곽을 드러낼 때는 카버나 헤밍웨이, 플래너리 오코너의 전성기를 떠올리게 하고, 현실에서 이탈한 정신 세계를 가진 인물들이 속절없이 그 부조리 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에서는 J. D. 샐린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번쩍이는 경제성과 공격적인 미니멀리즘’. 아름다운 디테일과 화려한 단어의 향연 대신 생략과 공백에서 오는 상상의 이미지들이 독자를 파고드는데, 정확한 형태를 갖추지 않은 이 이미지들은 앞서 언급한 이 작품의 주제 의식과 연결되면서 서로의 파괴력을 더욱 끌어올린다. 마치 화려한 배음과 울림을 포기하고 건조한 사운드를 추구함으로써 소리와 공백 사이의 리듬감을 극대화한 피아니스트처럼, 데니스 존슨은 작품 속에 표기된 문장과 공백에서 피어나는 반半 정형적 에너지 사이의 균형을 절묘하게 맞춰 낸다. 가능한 많은 것을 지우면서도 작품의 골조를 확고히 구축해 두고, 그 뼈대 사이에 놓인 독자의 영혼이 스스로 아름다움의 살점을 붙여넣도록 구성한 이 소설집의 마법 같은 균형 감각은 기술적인 면에서도 순수한 감탄을 자아낸다. 이 작은 책은 수없이 펼쳐진 공백의 면을 통해 끝없이 머릿속에서 확장되며, 그 과정은 소설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주 높은 곳까지 다다르는 경험을 안겨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