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제발트가 자신의 독자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유고집과도 다르다.”
부르크하르트 뮐러 (문학비평가)
‘언어만으로는 불행을 완전히 몰아낼 수 없다.
그러나 불행은 언어로만 극복할 수 있다.’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폐허를 걷는 작가
제발트가 남기고 간, 문학을 넘어선 문학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작가 W. G. 제발트의 유고집 『캄포 산토』(2003)가 독일에서 출간된 지 15년 만에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이 저작은 문학-에세이-학술의 경계를 휘젓는 제발트식 글쓰기의 정수를 보여주는 저작으로 손꼽힌 책이다. 『공중전과 문학』을 번역했던 독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이경진 교수가 제발트의 정밀하고 명징한 문체를 충실하게 따라가며 어조와 분위기까지 새겨 옮겼다.
이 책은 장편으로 기획했으나 때이른 죽음으로 완성하지 못한 코르시카 배경 산문픽션 4편, 1975년부터 2001년까지 쓴 에세이 14편을 묶은 선집이다. 산문에서는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의 보이지 않는 문턱을 예민하게 감각했던 화자-작가가 자신의 최후를 예감한 듯,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사는 섬 코르시카로 떠난다. 에세이에서는 제발트가 오랜 시간 천착했던 카프카와 더불어, 페터 한트케, 장 아메리, 페터 바이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브루스 채트윈 등 동시대 작가들이 등장한다. 특히 작가 자신을 평생 휘감았던 주제(산문 장르, 애도와 기억, 파괴의 자연사 등)의 발전 과정이 하나의 해명처럼 드러난다.
미완으로 남은 제발트 최후의 문학 프로젝트: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사는 섬 코르시카로 떠나다
장편 『아우스터리츠』가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1년 12월 14일, 제발트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우리에게는 그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전이었지만, 영어권과 독일어권 문단에서는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작가로서의 명성이 절정에 오른 시기였다. 예상치 못한 작가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던 독자들의 참담한 마음은 지금도 여러 지면에 남아 있어, 당시의 비통한 분위기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그리고 그가 남긴 글들을 정리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특별히, 미완으로 남은 유고들이 있었다. 1990대 중반부터 쓰기 시작한 코르시카섬에 대한 글로, 『아우스터리츠』 집필에 집중하느라 잠시 미뤄둔 프로젝트였다. 장편으로 구상하며 관련된 온갖 자료를 수집했던 그는 1996년부터 독립적인 단편을 하나하나 완성해 여러 지면에 발표하기도 했다. 코르시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업해둔 발표 원고들과 미발표 원고들은 이제 연구자들의 검토와 정리를 거쳐 한 권의 책으로 묶이게 된다. 그가 떠난 지 2년 뒤, ‘교회 묘지’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캄포 산토’라는 제목을 달고서였다. 공교로운 사실은 제발트가 반복해서 썼던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가 이 글들에서도 의미심장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코르시카 고유의 장례 및 매장 문화를 천착하면서 죽은 자와 함께 사는 주민들의 삶에 다가선다.
이렇게 묶인 코르시카를 배경으로 한 이 개별 글들은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면서 서로를 되비추고 해명해준다. 또한 여행지에서 예상치 못한 책과의 만남(코르시카에서는 플로베르의 『세 가지 이야기』), 나폴레옹의 탄생지 코르시카에서 마주한 예측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 죽음을 경험하고 애도를 표하는 방식에 대한 견문과 사유, 죽음에 대한 모호한 공포, 미래를 향한 적응을 거부하는 멜랑콜리,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길을 잃은 (사냥꾼 그라쿠스를 떠올리게 하는) 배 한 척, 폐허를 미처 인지하지 못한 채 자라는 어린이들…… 이 라이트모티프들은 제발트 고유의 목소리와 울림을 고스란히 선사한다.
에세이스트, 문학비평가, 동시대 문학 독자로서의 면모:
한트케, 바이스, 아메리, 클루게, 나보코프, 채트윈 등
‘그’를 가리키며 ‘나’를 해명하다
하지만 한국 독자들에게 『캄포 산토』의 진짜 매력은 어쩌면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다. 이 책 후반부에서는 제발트의 ‘창작’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면서도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에세이 세계가 집필 연도순으로 다채롭게 펼쳐진다. 물론 제발트가 비평가적 시선을 발휘한 『공중전과 문학』이 소개되기는 했지만, 1988년 시작된 ‘창작’의 시기 이전에 20년 가까이 독문학자와 비평가로서 써온 글들이 전방위적으로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알프레트 되블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제발트는, 영국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고 논문을 발표하며 독문학자로 활동했다. 그의 비평적 글쓰기는 이른바 ‘창작’ 시기에도 멈추지 않았다. 시론(詩論)의 주제는 1975년 썼던 페터 한트케의 언어극 <카스파르>를 시작으로, 전후 문학의 경향을 비판적으로 진단한 호명한 노사크와 카자크, 알렉산더 클루게, 귄터 그라스와 볼프강 힐데스하이머, 페터 바이스, 장 아메리, 시간의 흐름에도 바래지 않을 ‘문학’을 그리며 조명한 에른스트 헤르베크, 카프카, 나보코프, 브루스 채트윈, 자신의 글쓰기의 분기점이 되어준 화가 얀 폐터 트리프 등으로 이어진다. 특정 작가들에 대한 인상적인 스케치를 선보이는 이 에세이들은 같이 놓고 보면 한 편의 연작처럼 느껴질 정도로 유사한 주제를 다룬다. 모두가 제발트 특유의 멜랑콜리적 소묘를 통해 죽음, 망명, 우울, 애도, 기억의 문제와 씨름하는 작가들로 새롭게 도드라진다.
이런 에세이들을 통해 우리는 제발트가 뛰어난 작가이기 이전에 얼마나 예리한 독자이자 비평가였는지, 또 그의 작품이 이런 독서 및 비평 경험에 얼마나 많이 빚지고 있는지 살필 수 있다. 열네 편의 에세이에서 드러나는바, 제발트는 일관된 문제의식을 누구보다도 고집스럽게 지킨 작가였다. 반복하면, 그의 관심은 독일의 과거사를 위시하여 끝없이 반복되는 폭력과 파괴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관심, 파국의 인간사를 자연사와 불가분의 역사로 서술하려는 태도, 파국의 재현이 떠안아야 하는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고민, 기억과 애도의 불가능성에 맞선 고통스러운 투쟁 등이었다.
한편 뚜렷한 변화도 느껴진다. 바로 문체의 변화다. 아카데미 안에서 글쓰기를 훈련받으며 그가 써야 했던 글은 저자를 지우고 각주를 촘촘하게 달아 전거를 내세운 학술 논문이었다. 그러나 25년여의 시간이 흐르며 제발트는 우리가 그의 다른 작품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그의 특유의 이야기 방식과 어조를 찾아간다. 아마도 그는 어느 때부터인가 서술의 객관성이라는 미명하에 ‘나’를 최대한 지워야 하는 아카데미의 글쓰기를 갑갑하게 느낀 듯하다. 그에게는 어떠한 역사적 사실도 따지고 보면 자신의 주관적 경험과 무관할 수가 없는 것인데, 기존의 역사학이나 논픽션 서술방식으로는 이러한 ‘연루’를 드러내는 데 뚜렷한 한계가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문학의 시작점에는 자신과 동떨어져 보이는 역사적 사실이 실은 자신과 얼마나 가까이 얽혀 있는지를 발견하고 자각하는 현기증적 체험이 있다. 이것은 자신의 무지와 무감함이 이 모든 역사적 폭력의 원인이라도 되는 양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제발트의 염결한 역사의식에서 배태된 것이다. 따라서 그의 글쓰기는 그가 오랜 친구인 화가 얀 페터 트리프에게 배웠다는 방법, “얼핏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은 사물들을 정물화 스타일로 그물망처럼 엮는 방식”의 탐구가 된다.
이를 위해서는 현미경과 같은 정밀한 관찰력도 필요하지만 멀리서 두루 조망하는 조감법도 연마해야 한다. 그래서 제발트가 모범으로 삼은 작가들은 이른바 ‘산문의 공중부양술’에 한 번쯤은 성공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 공중부양술의 힘으로 공중으로 떠올라 현실에서는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시선들을 훔쳐낸다. 그것은 육신의 짐으로부터 해방된 혼들의 시선이기도 하고, 세상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인간의 시선이기도 하며, 세상의 불의를 묵묵히 내려다보는 누군가의 초월적인 시선이기도 하다. 나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