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진정한 시간은 C.E. 1974년에 다시 시작되었다. 그 사이의 기간은 큰정신의 창조를 흉내 낸 완벽한 위조 개작품이었다. “제국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선악의 대립과 경계가 해체된 시대의 절망과 구원을 말하다 필립 K. 딕이 실제 신비 체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세기의 문제작! 영화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페이첵> <컨트롤러> 등의 원작자로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한 작가’로 평가받는 필립 K. 딕. 그의 걸작 장편만을 모아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총 12권 완간을 목표로 하는 ‘필립 K. 딕 걸작선’의 여섯 번째 주자로 『발리스』가 폴라북스에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필립 K. 딕이 실제로 한 신비 체험을 토대로 말기에 집필한 ‘발리스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다. 작가 자신의 체험담이 녹아들어간 자전적 내용, 영지주의를 근간으로 신화학, 신학, 철학, 정신분석학, 음모 이론이 복잡하게 뒤얽힌 이론적 바탕, 가짜 기억과 현실 붕괴 속에서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 탐구한 필립 K. 딕 특유의 주제의식이 어우러진 세기의 문제작이다. 『발리스』는 1974년 2월에 분홍색 광선을 맞고 막대한 양의 정보가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한 호스러버 팻(작가이자 화자인 필립 K. 딕의 분신)의 이야기이다. 팻은 인간의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 체험을 설명하기 위해서 『주해서』라는 방대한 저술을 집필하고, 친구의 자살, 자신의 이혼, 자살 시도, 정신병원 감금, 연인의 암 재발과 사망 등 차마 한 인간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난을 연이어 겪으면서 더욱 『주해서』의 집필과, 분홍색 광선을 쏘아 보낸 신적인 존재의 진실에 집착한다. 급기야 그는 비합리적인 세계에 다시 태어나있을 구세주를 찾아 여행을 떠나겠다고 결심한다. 『발리스』는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인간 필립 K. 딕과, 그가 평생에 걸쳐 소설을 통해 절실하게 탐구한, 타락하고 거짓된 현대사회와 불안한 인간이라는 테마를 함께 만날 수 있는 감동적인 걸작으로, 시간은 흘렀지만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고독과 고뇌를 그려낸 작품이다. ■ 이 책은... 고독하고 절실한 인간의 이야기 - 현대의 성배를 찾아 나선 필립 K. 딕 『발리스』는 선악의 대립, 이념 사이의 경계가 해체되고 힘을 잃은 현대 자본사회의 새로운 성배 신화라고 할 만한 세기의 문제작이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필립 K. 딕의 자전적인 소설에 가깝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필립 K. 딕이 화자로 직접 등장하고 있으며, 그가 서술하는 주인공 호스러버 팻은 사실 딕의 분신이다. 1974년 2월부터 3월에 걸쳐 분홍색 광선을 맞고서 병원에서 진단도 받지 못한 아들의 병을 자세하게 안다거나, 방사능 수치가 높아졌다거나, 꿈에서 계시를 받았다거나, 소련의 과학자들을 꿈에서 보았다거나, 갑자기 그리스어로만 말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거나 하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고, 이를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주해서』를 집필한 것 또한 필립 K. 딕의 실제 인생 이야기이다. 팻과 토론을 벌이는 친구들, 아들과 부인, 팻이 사는 곳도 모두 실제의 인물과 장소를 그대로 쓰거나 이름만 바꾼 것이다. 『발리스』는 실제로 벌어진 일만큼이나 팻(그리고 딕)이 『주해서』를 집필하면서 드는 학문적이고 예술적인 의문과 가설과 그 해답을 추구하는 과정이 비중 있게 들어간 작품이기 때문에, 일견 매우 난해하고 사변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난해하고 불친절한 서술 속에서도 이 작품에 강력한 힘과 인간적인 감동을 부여하는 것은 작가 자신이다. 절망과 두려움과 슬픔에 빠져 마약을 가까이 하고, 도저히 한 사람이 겪고서 견뎌낼 것 같지 않은 사고와 자살 시도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과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산 필립 K. 딕이라는 인간, 그리고 그를 광기로 내몰고 외롭게 만들었던 서구 현대 사회의 병폐들이 『발리스』라는 작품을 낳은 것이다. 『발리스』에서 필립 K. 딕은 자본이 대신 자리를 채웠을 뿐 사실상 전제적이고 억압적인 사회가 계속되어 온 2000년의 역사를 “제국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라는 문장으로 정리한다. 절대로 낫지 않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길을 떠난 성배 신화의 파르지팔처럼, 필립 K. 딕은 자신의 상처를 통하여 인간의 병을 드러내고 그럼으로써 치유하고자 하는 작품을 썼다. 그것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작품이 바로 이 『발리스』인 것이다. 거짓 세상과 가짜 기억을 통해 이야기한 필립 K. 딕 평생의 주제 - 현실이란 무엇인가? 배경이 현대이며 심지어 자전적 소설이라는 크나큰 차별점이 있지만 『발리스』는 필립 K. 딕이 초기부터 소설을 통해 천착해왔던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어찌 보면 그 주제들을 심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적 배경이 미래가 아니고, 공간적 배경이 멀리 떨어진 행성이 아닐 뿐이다. 『발리스』는 가장 직접적으로는 『높은 성의 사내』를 잇는 대체역사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아예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달라져 현재 우리가 아는 역사와 상황이 많이 다른 『높은 성의 사내』와 달리 『발리스』는 필립 K. 딕이 등장하고, 많은 역사적 사실이 현실 역사와 부합하지만, 실제 역사의 이면에 다른 힘이 존재한다는 음모론적 설정이 들어가있다. 본래 필립 K. 딕은 『높은 성의 사내』 후속작을 쓰려고 했으나,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으나 마음이 인간이 아닌 나치의 입장에 이입해서 쓰기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포기했다고 한다. 이러한 시뮬라크르, 즉 외형을 모방하였으나 실재가 아닌 것에 대한 경계와 인식은 필립 K. 딕의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감정을 가진 안드로이드를 통해 인간성이란 것에 의문을 던지는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마약을 통해 무한히 증식하는 환각 세계를 체험하게 하고 영원한 생명과 현실의 기반에 의문을 던지는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 자폐증에 걸린 소년이 보는 미래를 보려다가 현실 붕괴를 경험하게 하는 『화성의 타임슬립』 등 많은 작품에서 필립 K. 딕은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현실을 경계하고 그 안에서 살아남는 인간 본연의 가치를 추구해왔다. 『발리스』 또한 이런 점에서는 필립 K. 딕의 전작을 잇는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PKD는『발리스』를 기점으로 SF에서 신비주의로 전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에게 SF란 결국 ‘『주해서』의 주해서’에 불과했던 것일까? 그러나 우리는 또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해서』의 압도적인 영향하에 작성된 ‘발리스 3부작’의 주제도 (로렌스 서틴의 지적처럼) PKD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두 가지 질문(“현실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이다. 결국 『주해서』는 PKD의 이전 작품에 나타난 세계관의 부정이 아니라 오히려 심화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_ 박중서 ■‘필립 K. 딕 걸작선’ 출간의 의의 세상을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필립 K. 딕은 여전히 그 문학적 가치가 새롭게 재평가되는 작가이다. 생전에 그는 주류 문학계에서는 ‘싸구려 장르 소설 작가’로 폄하되고, SF 문학계에서는 인간성을 탐구하는 특유의 주제의식 때문에 팬들에게 외면당한 불운한 작가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작품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시대를 초월한 상상력으로 세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주고 있다. 미국의 권위 있는 비영리 출판사인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는 미국문학 총서(마크 트웨인부터 헨리 제임스까지 미국 문학의 거장들의 작품을 수록한 방대한 작가 선집으로 미국문학 작품으로 인정받은 작가만이 그 이름을 올릴 수 있다)에 필립 K. 딕을 올려놓으며 재조명했다. 그 자체로, 그의 작가적 입지가 미국문학에서 얼마나 중대하게 다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그의 작품이 장르라는 이름으로만 한정지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