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뉴라이트, 그 시대착오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최초의’ 전방위 비판
현재는 ‘시대정신’이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으로 개칭한 구 뉴라이트재단, 막강한 대중동원력을 자랑하는 뉴라이트전국연합, 비전 설정과 정책 제안에 앞장서며 보수의 싱크탱크를 지향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2004년 이후 ‘신보수’를 표방하며 탄생한 이 뉴라이트 단체들은 현 정권의 탄생 과정에서 한 몫을 톡톡히 했고, 현 정권의 출범 이후에도 정권과의 긴밀한 공조 속에 때로는 ‘브레인’으로 때로는 ‘행동대’로 주요한 정책의 생산과 집행을 이끌어왔다. 특히 ‘뉴라이트재단’은 역사관, 국가 정체성에 관한 다양한(?) 이슈를 던져옴으로써 그중에서도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이들은 이제 단순한 담론 생산을 과감히 넘어서서, 절차도 원칙도 무시하고 정권 입맛대로 교과서를 바꾸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식민지배와 독재를 정당화하는 교육을 실시하는 등 다양한(?) 정치적 실천에도 주력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상 이는 부유층 규제 완화와 감세, 저소득층 최저 임금제 흔들기, ‘선진화’(민영화) 시도, 대북 강경책 등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인 거침없는 신자유주의 정책들과 뿌리를 같이한다.
이 책은 이러한 뉴라이트의 활동과 담론, 이념에 대해 총체적으로 비판하는 ‘최초의’ 책이다. 그간 이러한 본격적인 비판서가 나오지 않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이들의 활동 범위가 워낙 넓고 다양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뉴라이트 운동에서 가장 기초적인 이데올로기 생산을 담당해온 ‘뉴라이트재단’의 담론과 이념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며. 그렇게 함으로써 좀더 근본적인 비판을 지향한다. 하지만 이때 또다른 어려움이 발생한다. 이들 담론이 사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내용은 너무나 빈약해서, 기존의 역사학계나 정책 연구자들이 진지한 대응과 비판을 하기에 민망하고 곤란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이는 2004년 이후 ‘역사 교과서’ 문제 등이 이렇게 파국으로 치달을 때까지 진지한 비판이나 대응이 어째서 그렇게 없었는지를 설명해준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관에 대해 다룰 때에도 사실관계에서의 오류를 따지기보다는 그 사실관계를 바라보는 ‘눈’, ‘관점’에 집중한다.(사실관계에서의 오류를 따지는 작업은 <역사평론> 등의 지면에서 이미 어느 정도 이루어진 바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어려움을 넘어서는 비평이 역사학계 내부나 외부에서보다는 그 경계에서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요약하자면, 이 책은 역사를 공부했지만 시사에도 관심이 많은 역사 에세이스트 김기협이 ‘역사적 지식’뿐 아니라 ‘상식’을 무기로 뉴라이트의 본질과 현상을 전방위로 비판하는 최초의 본격 단행본이다.
* 역사관으로부터 우리 삶을 규정하는 신자유주의 정책까지 통찰한 비평서
이제 뉴라이트의 담론은 눈앞의 정책들로 현실화되어 더 이상 그 행태를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의 심각성에 직면해 평소 객관적인 역사 인식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역사 에세이스트 김기협이 나섰다. ‘뉴라이트는 도대체 왜 그럴까?’라는 화두로 열여덟 꼭지의 에세이 속에 그들의 인간관, 역사관, 국가관, 민족관, 대북관, 대미관 등에 대한 비판을 꾹꾹 눌러담았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등 뉴라이트 진영에서 출간한 도서들을 포함해 다양한 참고 자료를 조목조목 따져봄으로써, 뉴라이트의 이념과 이데올로기, 담론을 입체적으로 비평한다. 그들의 기본 이념을 뒷받침하는 역사관, 즉 그 저작들에 나오는 일제 식민지, 친일파, 이승만, 박정희 등에 대한 평가에서 그들의 철학(?)이 서서히, 결국 적나라하게 그 실체를 드러낸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단지 역사와 인간을 보는 관점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우리 삶의 방식과 그것을 결정하는 정책 일반이라는 현실과 긴밀히 연관된다. 환율, 제세, 복지 등 온갖 사회 정책은 그것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가치 판단’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그 가치 판단은 그들이 사람과 역사, 물질을 어떻게 보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따라서 뉴라이트 역사관을 비판하는 저자의 시도가 광범위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역사적 맥락을 관통하며, 현재 일어나는 신자유주의 정책 전반에 관한 진단으로 연결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무조건 본뜨려고만 하는 것 같다. 40년 전 상황에서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었던 통치 스타일도 한편으로는 적지 않은 그늘을 후세에 남겼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고속 성장을 위해 분배를 외면하고 특혜를 몰아줌으로써 가진 자들의 본딩 조직력만 키우는 개발독재를 재현하겠다고? 물질족 자본만으로 세상을 보는 편협한 역사관이 거들어주지 않는다면 상상해내기도 어려운 시대착오다.
안병직과 이영훈은 한국의 자본주의화를 주도한 하나의 집단을 상정한다. 개항기부터 두각을 나타낸 신흥 지주층이 일제에 협력하면서 고등교육을 받아 전문 기술을 가진 실력자 집단으로 자라났고, 대한민국에서도 경제 발전의 주축을 맡았다는 것이다. 이 집단이 지금 ‘고소영’ ‘강부자’로 이어졌다고 여기기 때문에 현 정부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친일파 청산’의 실패를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브리징 조직력을 차단하는 ‘명박산성’은 이 집단의 본딩 조직력을 지키는 울타리이기도 하다.
― 본문 115쪽 중에서
*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과 정보, 역사학자의 통찰이 녹아든 교양서
이 책은 뉴라이트에 대한 비판이라는 부정적인 서술에만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동서고금의 역사적·시사적 정보를 곳곳에서 엮어넣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거대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는 저자의 통찰을 통해 독자에게 풍부한 교양과 글맛을 제공한다. 또 역사를 보는 치우친 시각을 경계해온 저자는 뉴라이트 역사관에 대하여 ‘역사학자’로서 ‘방어’하러 나선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하고, 그만큼 취약한 한국 역사학계도 동시에 꼬집으며 ‘할 말은 하는’ 비판에 나섰다. 그렇게 해서 저자는 기존의 민족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에서 벗어난 냉철한 시각을 제시하며, 어느 정치적 성향에 있든지 합리적인 논리와 상식을 가진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포괄적인 비평을 시도한다. 식민지, 친일파, 수탈, 근대화에 대한 냉철한 평가 작업은 이러한 바탕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역사란 인간을 공부하는 학문이다. 인간이란 대단히 복잡하고 심오한 존재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인간이란 존재의 한 모퉁이라도 파악하려는 노력에서 만들어진 여러 학문 가운데 하나가 역사학이다. 역사학자는 인간성을 선험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해온 일들을 살펴 그로부터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를 키워나가려 노력한다.
그런데 안병직과 이영훈은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해놓고 그 위에서 역사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영훈은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는 경제학의 가정적 명제를 인간 전체에 스스럼없이 적용한다. 이 자의적 규정이 우리 사회의 과거, 현재와 미래에 대한 그들의 논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홉스Thomas Hobbes가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고 사회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설명한 것은 1651년의 일이다. 이기심은 인간성의 엄연한 한 부분인데, 그때까지 인식되어온 것보다 중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홉스의 지적이었다. 당시의 시대 변화 속에서 의미 있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도 이 지적을 절대적 진리처럼 받드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홉스 자신이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 본문 19∼20쪽 중에서
* ‘상식’과 ‘균형감각’을 바탕으로 펼치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비판
‘뉴라이트’가 사방에서 들려오지만 막상 그들이 누구인지,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명쾌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 책은 연구자나 관련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뉴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