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이야기를 하고 추리도 한다
소재의 풍성함, 어휘의 신선함, 구성의 치밀함까지
천재 작가 이사카 고타로가 선보이는 자동차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와이퍼가 멋대로 움직일 만한 이야기?”
“아니 내비게이션이 박살 난 거처럼 혼란스러워.”
_ Drive 209쪽
발표하는 작품마다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명실상부한 일본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사카 고타로. 이름 앞에 항상 ‘천재’란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그가, 각양각색 자동차들의 즐거운 수다가 떠들썩한 전대미문의 웃음 만발 미스터리로 돌아왔다. 2011년 11월부터 2012년 12월에 걸쳐 아사히 신문에 연재된 장편소설을 단행본으로 묶은 『가솔린 생활』(2013)이 현대문학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이는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나오키상 후보에 여섯 번이나 오르고, 독자의 목소리를 제일 잘 반영한다는 서점대상의 최고작 10위권에 연속 6회 선정된 바 있는 이사카 고타로가 2011년 일본 도호쿠 지방을 휩쓴 대지진을 눈앞에서 경험하며 처음으로 써 내려간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그는 일본의 한 문예지와의 인터뷰에서 큰 자연재해를 겪는 동안 책을 읽기는커녕,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일상을 보고는 책을 만지기조차 싫어서 소설가라는 직업이 차라리 이 세상 최악의 일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고 털어놓았다. 이후 차츰 자신을 추스르면서 한 가지 결론을 얻었는데, 바로 ‘독자들을 즐겁게 하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가솔린 생활』은 ‘재미있을 것’을 제일의 목표로 썼습니다. 매일매일 신문에 실리는, 앞뒤 줄거리는 잘 몰라도 읽는 것만으로 즐거워지는, 슬그머니 웃음이 나는 소설이 되도록 말입니다. 견딜 수 없는 사건이나 불안하게 만드는 소식, 대단한 공적들로 가득한 신문 한 귀퉁이에 ‘자동차들이 와글와글 떠드는 즐거운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소설에는 그러한 역할도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같은 시도에서 탄생한 『가솔린 생활』은 그간 기상천외하고 독창적인 세계관을 중층적이고 정교한 구성력과 경쾌하고 소탈한 필치로 풀어내 온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 세계를 한층 더 다채롭게 했으니, 바로 이야기의 화자를 자동차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선입관이 흔들리는 세계, 찰떡궁합의 모치즈키 형제와
개성적인 인물들이 그려 가는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장편 가족 소설
■ 자동차는 지성과 감정을 가지고 있고, 배기가스가 닿는 거리 내라면 대화도 가능하다.
■ 자동차는 인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만, 인간에게는 자동차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 자동차가 스스로 움직이지는 못한다.
이야기의 화자는 녹색 마쯔다 데미오, 통칭 ‘데미오’로, 어머니 이쿠코와 스무 살의 장남 요시오, 열일곱 살의 장녀 마도카, 열 살의 차남 도루로 이루어진 사이좋은 모치즈키 가족의 자동차이다. 옆집의 흰색 토요타 코롤라 GT, 통칭 ‘자파’와 아옹다옹 만담을 펼치고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들과 대화하면서 평탄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운전면허를 갓 딴 요시오가 도루를 태우고 데미오를 운전하다 급정거의 충격으로 주차장에 잠시 멈춰 서는데, 느닷없이 한 여성이 올라탄다. 그녀는 결혼 후 은퇴한 여배우 아라키 미도리로, 불륜 의혹을 밀착 취재하던 매스컴을 피해 도망치는 중이었다. 그런 그녀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고 난 뒤 몇 시간, 아라키 미도리가 터널 안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언론에 대서특필된다. 죽기 직전의 아라키 미도리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었던 요시오와 도루 형제는 그녀를 쫓던 베테랑 연예부 기자 다마다 겐고와 알게 되고 사건에 휘말리고 마는데…… 한편, 마도카는 남자 친구 에구치가 구제 불능의 악당 도가리에게 협박당해 힘들어하고 있고, 초등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박식함과 신랄함을 지닌 도루는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 당하고 있다.
이러한 모치즈키 가족의 문제를 모두 파악하고 있는 존재가 바로 자동차 데미오이다. 데미오가 들을 수 있는 것은 차 안이나 차 주변인 경우에 한하지만, 이 제약을 보충해 주는 것이 다른 자동차들로부터 전해 듣는 정보이다. 요컨대 데미오는 차에서 벗어나 이루어지는 대화는 들을 수 없으므로 이에 대해서는 추측과 추리에 의존해야 하지만, 이러한 제약이 오히려 참신한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한편, 『가솔린 생활』에도 이사카 고타로의 전작들에서처럼 경쾌한 흐름과 유쾌하고 개성적인 등장인물, 촘촘히 짜인 사건들은 여전하다. 특히 만사태평한 형 요시오와 어른스러운 동생 도루의 찰떡궁합은 데미오와 자파의 조합에 더불어 읽는 내내 웃음을 떠나지 않게 한다. ‘가솔린 생활’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자동차 기어 변환을 따른 ‘Low(1단)’ ‘Drive(주행)’ ‘Parking(주차)’ 구성은 크고 작은 수수께끼와 함께 ‘에필로그’를 향해 가속해 나가며, 신문 연재소설 특유의 리듬감과 누구나 읽기 쉬운 언어로 쓰였다는 장점이 더해져, 독자들은 어느새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있을 것이다.
현대사회의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다루면서 가장 이상적인 유대의 본연을 탐구한 소설이다. 깊이 있는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_ 나카쓰지 리오(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