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의 말
책을 펴내며 | 나는 왜 말하는가
1부 긴 터널
1장 “어떻게 성매매를 하게 되었나요?”
2장 열여덟 살에 유입된 업소
3장 바다 건너 낯선 섬으로
4장 유리방 골목
5장 “우리는 어차피 진상처리반이야.”
6장 시골의 티켓다방 아가씨로
2부 나를 다시 찾아가는 시간
7장 나의 과거에 살고 있는 업주
8장 돈으로 여성의 인격을 사는 자들
9장 얼굴 없는 여자와 얼굴 없는 남자
10장 나는 누구일까?
11장 지난날과 이별하기 위해
12장 몸이 말해주는 트라우마
13장 그녀들을 떠나보내며
14장 경험의 재해석
15장 성매매, 그리고 성폭력
에필로그 | 나는 과정 속에 서 있다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봄날
4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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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에 성매매 업소에 유입된 후 빠져나오기까지 20여 년간 겪은 삶의 경험을 증언한다 책이다. 책에서 보여주는 저자의 경험은 많은 한국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처한 상황과 다르지 않다. 빈곤, 가정폭력, 가족 내 성차별, 성폭력과 잘못된 사건 처리 등, 저자가 겪은 일들은 한국 여성들이라면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일들이다. 이 책은 이런 경험들이 한꺼번에 얽히면서 한 여성이 성매매에 유입되고, 또 빠져나오기 힘들어지는 과정을 아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저자 개인의 경험은 성매매가 결코 특수한 문제가 아니며, 한국 사회의 수많은 젠더 문제들이 만나면서 만들어지는 문제임을 말해주는 동시에, 한국 여성들이 놓여 있는 보편적인 현실을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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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womyn
5.0
p.333 20여 년간의 경험을 통해 나는 여성의 성을 돈으로 사는 구매자,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는 여성을 알선하는 포주가 없으면 성매매는 줄어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한국에는 성 매매 업소에 다니는 남성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성구매를 하지 않는 남성이 특별한 존재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성구매를 하지 않은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행동이다. 이제는 내가 경험한 구매자들의 추악한 모습을 낱낱이 고발하고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나의 목표이기도 하다.
이혜원
5.0
1 절대적인 존재, 나를 해방시켜 줄 거라 믿었던 그 남자의 배신이 믿어지지 않았다. 혹여 내가 다른 남자에게 강간 당한 사실을 알았을까 그것이 헤어지는 이유가 되었을까 자책하며 편지를 읽고 또 읽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뜻에 따라 임신중절수술까지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이럴 수는 없다고, 내 인생은 이제 살아가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숙사 옥상에 올라가 목이 쉬도록 울었다. 그 남자의 마음을 돌려보려 다시 한 번 편지를 썼지만 편지는 반송 되었다. 2 친구와 업소에서 나와 밥을 먹으러 갔을 때 남자들로부터 받은 돈을 전부 친구에게 줬다. 친구는 무슨 짓이냐며 너한테 준 돈이니까 네가 가지라고 했다. 9만 원이었다. 그 돈 9만 원이 내 인생을 바꿔놓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15만 원의 월급을 받는 나에게 9만 원이라는 돈은 상당히 컸다. (...) 돈이 생기면 당연히 엄마에게 갖다 줘야 했다. 내가 공장에서 버는 돈은 가족들에게 늘 부족했다. 우리 가족이 좀 더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 커가는 동생이 나보다는 부족함 없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를 유혹했다. 이미 흔들릴 대로 흔들린 나를 붙잡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어린 나이에 이미 공장에서 잔뼈가 굵어 버렸다. 야근을 너무 많이 해서 깜빡 졸다가 미싱 바늘에 손가락이 찔러 손톱이 빠지기도 했고 남자 관리자들은 시시때때로 집요하게 성추행을 일삼았다. 하루 생산물량을 맞추지 못하면 집으로 보내 주지도 않았던 그곳에서 공순이라는 이름으로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돈을 더 벌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내 가족들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후 사직서를 내고 그 수렁속으로 내 발로 찾아갔다. 3 내가 20여년간 경험한 성매매업소는 나를 때리는 아버지와 어린 나를 성추행 했던 삼촌과 나를 강간하며 웃던 그놈, 임신한 나를 버리고 간 군인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4 업주에게 밀린 월급을 달라고 하며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오갈 곳 없는 것들 거둬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했다. 친구와 나는 업주의 말에 기가 막혔지만 대꾸도 하기 싫었다. 밀린 월급만 해결해달라고 했다. 업주는 당당하게 월급은 한 푼도 못 준다고 하며 나가려면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다. 기다려볼 걸 괜히 그만둔다고 말해서 월급도 못 받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친구는 업주에게 따져 물었다. "언제 줄 건데요?" 그 말을 들은 업주는 친구와 나를 때리려는 시늉을 하며 겁을 줬다. 그러더니 일단 한 달 월급을 주고, 나머지는 통장으로 입금해주겠다고 했다. 한 달 월급을 손에 쥔 우리는 곧바로 짐을 싸서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로 갔다. 나머지 돈을 입금해준다던 업주는 계속해서 기다리라고만 했고 전화도 받지 않더니 끝내 돈을 주지 않았다. 5 6개월은 지났을까, 업주가 나를 룸으로 불렀다. "너 왜 자꾸 술 마시러 다니냐?"그게 무슨 큰 잘못인가 싶어 업주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궁금했다."돈도 안 벌고 왜 이래?" 업주는 내 걱정을 하는 걸까? 그러나 업주가 내민 영수증에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 품목별로 상세히 적힌 영수증에는 내가 샀던 옷, 화장품, 신발, 미용실 비용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700만원이라는 거금을 보며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업주는 그동안 특별히 시간을 많이 주었다고 하며, 이제 테이블만 봐서는 안 되고 2차를 나가라고 했다. 업주는 나에게 돈 걱정 말고 옷을 사라고 했고, 미용실은 필수이니 스타일을 바꾸라고 했었다. 이 모든 것이 빚이 되어 돌아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나는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 울면서 2차를 나가겠다고 말했다. 업주의 목소리가 갑자기 부드러워졌다. 말 잘 들으면 돈 많이 번다고, 빨리 돈 벌어서 집으로 가야 할 것 아니냐고 했다. 업주는 영수증에 적힌 빚은 1할 이자를 내야 하고, 마담 엠티비(마담이 아가씨를 룸으로 들여보내주는 대가로 받는 돈), 정해진 출근시간에 늦으면 지각비, 결근하면 결근비, 생리하면 미리 마담에게 체크를 넣고 안 그러면 벌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업소마다 다르지만 지각비는 대략 시간당2~5만원, 결근비는 하루 50만원을 냈다). 그러면서 업주는 "내 말 잘 들어, 안 그러면 사 창가에 팔아버린다."고 협박했다. '사창가', 말로 만 들었을 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언니들 말로는 그곳으로 팔려 가면 나오지 못한다고 했다. 외출도 못 하고 밖에서 지키고 있어서 도망도 못 가고 죽어도 아무도 못 찾는다고 했다. 6 생리하면 2차를 못 나가는 생리 체크는 이 업소에서는 2일에서 3일만 허락했다. 생리기간이 길든 짧든 업소 룰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피임약 먹는 것을 깜빡 잊어버리면 한꺼번에 두 알을 먹기도 했다. 언니들은 산부인과에서 피임기구를 시술 받아 몸을 보호하기도 했다. 콘돔 사용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 숙소로 돌아와 언니와 마담에게 임신 사실을 말했다. 마담은 업주에게는 자신이 대신 말하겠다고 하면서, 주방이모 성격에 업소에서 아가씨가 임신을 하면 손님이 없다는 미신 때문에 오히려 너에게 책임을 지라고 할 거라며 주방이모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다. (...) 모텔에서 3일을 지내고 업소로 돌아왔다. 업주는 나를 불러 몸은 괜찮냐고 묻고는 3일동안의 결근 비를 물린다고 했다. 사정이 있었지 않았냐고 하면 한 번만 봐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업주는 그건 내 잘못이라 했다. 대꾸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업주는 선심쓰듯 원래는 하루에 50만 원씩인데 임신중절수술을 했으니 하루 30만 원만 받겠다고 했다. (...) 마음이 아팠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당장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대신 빚을 갚아 줄 사람도 없으니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일을 해야 했다. 그게 업소 룰이라고 하면 따라야 하는 것이 내 처지였다. 7 나는 개인디자이너 브랜드라고 하며 비싸지만 입는다고 했다. 변명같이 들렸는지 자기가 알지 못하는 메이커 홀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아가씨를 교체해 달라고 했다. 남자는 오르지 명품 홀복을 입는 아가씨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마담을 불러 주겠다며 룸을 나갔다. 내가 대기실로 와서 마담을 부르는 사이에 또 한 명의 아가씨가 그 룸에서 나왔다. 언니와 나는 대기실에 앉아서 남자들을 욕했다. (...) " 야 못생긴 년아, 얼굴이 안 받쳐주면 옷발이나 화장빨이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니야. 잔소리 말고 내일 매장 가서 골목 사입어. 알겠어? 옷 안 사 입으면 룸에 안 넣어 준다. 알겠지." 홀복과 화장, 머리스타일에 집착하는 업주와 마담이 이해되지 않았다. (...) 여자 업주는 몇 군데 매장을 말해 주면서 그 곳에 가서 옷을 사라고 했다. 매장과 업주는 서로 돕는 사이였다. 업주는 홀복매장을 이용해 카드깡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홀복 매장은 업주에게 홀복을 많이 팔 수 있도록 로비를 하는 등 이익으로 엮인 사이였다. 매장에서 홀복도 두 벌씩 샀고, 외출복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다른 옷을 몇 벌 더 샀다. 화장품도 몇 개 샀다. 여자 업주는 "진작 꾸미고 그러지 그랬냐?" 하고 흡족해했다. 8 남자들은 모두 정장차림이었다. 그리고 들어온 우리에게 소위 신고식을 시켰다. 여러 사람이 보고 있는데 옷을 벗어 맨몸을 보인다는 것이 수치스러웠지만 이왕 할 거면 빨리 하고 자리에 앉는 것이 낫기 때문에 얼른 치마를 올리며 팬티를 내리고 인사를 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남자들은 더욱더 황당한 것을 주문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신고식을 끝내는 게 나았다. 그날도 술작업을 했다. 노는 것에만 정신이 팔린 남자들은 술이 어떻게 되는지 관심이 없는 듯했다. 술 매상은 적당히 올렸고 마칠 분위기로 몰아갔다. 한 명이 술값 계산 하겠다면서 마담을 부르라고 했다. (...) " 너희들이 술을 너무 많이 버려서 술값 못 주겠단다. 이제 어쩔 거야? 마담은 다시 담배 한대를 다 피우더니 "룸에 다시 들어가. 어쨌든 계산하게 만들어. 알았어? 대답해, 이년들아."하고 소리쳤다. (...) 그리고 한 남자가 테이블 밑에 있는 쓰레기통을 올리더니 아가씨 중 한 명에게 버린 술을 따르라고 했다. 쓰레기통에는 담배꽁초. 먹다 만 안주, 가래, 침 등 쓰레기와 우리가 버린 술이 섞여 있었다. 나는 술을 거르는 작업을 하는 아가씨의 손길을 바라보았다. 쓰레기통에서 걸러지는 술의 색깔은 붉다 못해 검은 색을 띠고 있었다. 한 남자가 술을 잔에 따르라고 시키고 아가씨들에게 마시라고 했다. (...) 머릿속이 백지가 되었다. 한 아가씨가 울었고, 결국 우리는 다 같이 울었다. 계산을 안 하려면 쓰레기통 술이라도 먹이지 말든가, 그 남자들의 행동에 화가 났다. 마담은 "뭘 잘했다고 울어? 울면 누가 봐주냐?" 하며 빈정댔다. 그날 일을 마치고 우리 네 명은 더러워진 기분을 풀기 위해 술을 마시러 갔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나 자신도 미웠고, 나를 술 집에서만 전전하게 만든 모든 것이 미웠다. 결국 업주는 아주 공평하게 우리에게 술값을 물렸다. 9 어느 업소나 진상은 있었지만, 유독 제주도의 이 업소는 진상이 더 많았다.이 업소는 최대한 구매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며 영업을 했다. 그러니 술을 마시러 오는 남자들은 룸 안이든 2차를 나가서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나를 희롱했다. 특히나 룸안에서 벌어지는 짓은 정말이지 더러웠다. 뭐가 그리 좋은지 재미있다고 웃어대는 남자들의 모습에 나는 하루하루 절망했다. 내 파트너, 남의 파트너 상관없이 추행하며 어디가 성감대냐고 물어보는 남자, 아가씨들 옷을 다 벗겨 놓고 비교해가며 웃는 모습. 사람 같지 않았다. 어느 날 남자들이 '계곡주'라는 것을 나에게 시켰고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어서 남자들 앞에서 펑펑 울었다. 내가 울자 남자들은 당황했는지 분위기를 흐린다며 인상을 썼고, 때마침 룸으로 들어온 마담이 나에게 대기실로 가 있으라고 했다. (...) 마담은 지금 손님들 분위기가 안 좋다며 술값 못 준다고 난리니까 화장 고치고 얼른 룸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 마담의 말과는 달리 남자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분위기가 좋았고, 룸에 같이 들어갔던 언니가 귓속말로 자기가 다 마무리 했으니 괜찮다며 얼른 끝내자고 말해주었다. 남자들의 변태적인 행위를 비켜갈 수 없었고 결국은 스스로 옷을 벗었다. 이렇게 옷을 벗고 남자들이 원하는 행위를 해서 돈이라도 많이 번다면 모를까. 자학과 원망이 깊어갔다. 10 업주는 희한하게 수익을 올렸다. 과일안주, 화채, 마른안주 등은 늘 재사용되었다. 그 사실을 아는 아가씨들은 안주를 잘 안 먹었다. 맥주는 재사용하기 어렵지만 양주의 경우 구매자들이 마시다 남은 술을 모아서 새 병에 담아냈다. 주류회사에서 위조 방지를 위해 노력하지만 그 기술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업주는 가짜 양주를 만들어냈다. 내가 매일 두통을 호소하며 구토가 심해서 약을 먹었는데도 소용이 없어 괴로워하자 s가 이 사실을 알려 주었다. 구매자 앞에서는 새 술을 따는 것처럼 연기하도록 마담은 교육을 시켰다. 마담은 자신이 믿는 아가씨들에게만 이 일을 맡겼는데 나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안주도 가짜, 술도 가짜인 이 업소에서 최대한 내 몸을 방어하기 위해 술과 안주를 몰래 버리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언제나 술을 마음 편하게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매상을 올리기 위해서 가짜 양주를 마시는 날이 더 많았다. 11 아가씨는 새벽녘에 자는 나를 깨웠다. 담배가 떨어졌다며 담배 한 대만 달라고 했다. 같이 담배를 피우며 앉아있다가 그 아가씨에게 공항은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탄다고 복잡했을 텐데 어떻게 잡혀왔냐고 물어보았다. 그 아가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 첨 왔을 때 마담이 증명사진 한 장 달라고 하지 않더냐? 그 사진, 공항 보안팀에 가 있어. 업주랑 아주 친한 사이인가봐." 나는 너무 놀랐다. 증명사진을 달라고 했지만 이런 용도로 쓰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비행기를 타려고 티켓을 끊으려 인적사항을 적는데 공항 직원이 다가와 잠시 같이 가자고 했다며 그 아가씨는 말을 이어갔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담배를 연달아 피웠다.그 아가씨는 이제 자신은 어디론가 팔러 갈 것 같다고 하며 여기보다 지옥이 있겠냐고 말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체념한 것처럼 보였다. 12 막상 선불금 계산에 들어가니 업주의 태도는 돌변했다. 업주의 계산법은 예상보다 더 이상했다. 말도 안 되는 계산법을 들이대며 억지를 부렸다. 나는 계산이 달라 돈이 맞지 않다고 하며 사인 장부를 다시 맞춰 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업주는 술값을 외상으로 해서 돈을 못 받아서 그렇다고 하면서 양보를 해 달라고 했다. 그건 당신 사정이라고, 장부가 맞는데 왜 계산에서 빼냐고 따지기 시작하니 업주는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계산 안 봐 주면 어쩔 건데?" 하며 적반하장으로 화를 냈다. 기가 막혔다. 업주 성격으로는 절대 내가 원하는 대로 계산을 봐주지 않을 것 같아서 억울해도 서로 반반 손해를 보자고 했다. 13 큰마담이 그달 매상이 많이 올랐다며 '주사 이모'를 불러서 아가씨들에게 주사를 맞히기도했다. 2차를 나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질염과 골반염을 앓는 아가씨들이 많았다. 이 방법은 업주 만의 아가씨 관리법이었다. 마담은 염증 주사라고 했지만, 그 주사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고 맞는 아가씨는 없었다. 14 나를 찾아온 남자는 업소출입이 잦아지면서 술값 외상을 받아 달라고 했다. 그동안의 행동이나 돈 씀씀이를 보면 믿음이 갔기에 술값 외상을 받아 주었고, 업주에게는 내가 술값을 받아서 입금 하겠다고 했다. 업주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몇 번은 정확한 날짜 입금했던 남자가 점점 술값이 밀리기 시작했다. 그 남자뿐 아니라 이 업소에서 나를 지명하는 남자도 술값 외상을 한 상태라서 외상값만 해도 빚이 상당히 많아졌다. 결국 나를 찾아오던 그 남자는 잠수를 탔다. 나는 그 술값을 고스란히 내 빚으로 올리고 말았다. 업주는 어떻게 빛을 정리할 셈이냐고 나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했다. 그 남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방법이 없었다. 눈 밖에 나면서 업주는 나를 룸으로 넣어주지 않았다. 계속해서 늘어난 선불금을 어떻게 갚을지 빨리 방법을 찾으라고 하면서 부모에게 연락을 해야 하냐고 협박했다. (...) 다음 날 장기를 팔면 빚을 갚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용기를내어 장기매매 스티커에 적혀 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한 번 더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장기를 팔아서라도 벗어나고 싶었는데 이 마저도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원망했다. 팔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전부 팔아서라도 벗어나고 싶은 절박한 심정은 나 스스로를 더 원망하게 만들었다. 부모 잘못 만난 죄, 강간을 당한 죄, 임신을 해서 차인 죄, 모든 것이 내 죄였다. 15 3층에 올라갔을 때 어느 방에서 여자의 신음 소리가 들려서 나도 모르게 문을 열었다. 그 아가씨가 온몸에 땀을 흘리며 배를 움켜잡고 울고 있었다. 그러다 나를 발견하고는 "언니 문 닫아, 빨리" 했다. 나는 놀라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자 그 아이는 한 번 더 말했다. "얼른 문 닫으라고."그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워 나는 얼른 문을 닫았다. (...) 친구의 말에 따르면 방에서 앓던 그 아가씨는 산부인과에 다니던 중 임신 사실을 알았고 낙태를 유도하고 있었다고 했다. 개월 수가 얼마나 되었는지 몰라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에 너무나 놀랐다. 며칠이 지나 업주는 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였다. 아가씨들을 차례로 불러 절을 시키고 칼을 휘두르고 소금을 뿌리며 의식을 진행했다. 그 아가씨의 방문을 열어본 나는 재수가 없을 것이라며 다른 아가씨들보다 몸에 팥을 뿌리는 등 더 많은 의식을 했다. 보살은 의식이 끝날 때까지 나를 제사상 앞에 가만히 앉혀놓았다. 16 다가가기 싫었지만 그 남자에게 돈을 받았으니 억지로 몸을 이끌고 옆에 누웠다. 남자는 지금 한 번 더 하고 가겠다고 했다. 나는 왜냐고 묻지 않았다. 빨리 보내면 나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한 번 더 할 생각을 하니 퉁퉁 부은 성기가 걱정이 되었다. 나는 샤워실로 가서 러브젤을 잔뜩 바르고 다시 성관계를 했다. 남자는 처음보다는 힘들게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버거웠다. 옷을 입으며 다음에 보자고 하고 남자는 내 방에서 나갔다. 유유히 사라지는 남자의 뒷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긴 밤을 두 개 받을 돈으로 1시간 반 만에 손님을 보냈으니 조금은 여유로웠지만 계속 성기가 아팠다. 남자가 나가고 빈 방 청소를 하고 있는 나에게 큰 이모가 다가왔다. "왜 이리 안 나오나 했더니 손님 보낸다고 바빴네." 고개만 끄덕이는 나를 보더니 좀 빡셌나 보네. 청소하고 얼른 내려와." 힘든 나에게 건네는 말은 그게 다였다. 그날 나는 숏타임 다섯 번에 긴 밤 네 명을 받았다. 17 업소에서 받는 인간 이하의 취급이 싫었지만 성매매특별법이 생겨난다고 해도 업소는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업소를 벗어나서 살아갈 수가 없는 나를 위해서라도 성매매특별법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선불금을 당장 갚을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더욱더 컸다. 여성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을 보며 인권이 밥 먹여 주냐고, 내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알기나 하냐고,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는 현실에서 나의 인생을 책임지지도 못할 사람들이 인권을 들먹이냐고 생각했다.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이라는 태풍이 휘몰아치고 간 업소는 고요했다. 그리고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구매자들은 태풍이 일던 그때 잠시 조용했을뿐 또 다시 활개를 치고 다녔다. 18 나는 담당 상담원에게 이 직업이 잘 맞느냐고 물었다. "이 일요?" 담당 상담원은 자기와 이 직업은 너무 잘 맞는다고 하면서, 일을 하며 많이 배운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놀랐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가 "누가 좋아서 일하나. 다 먹고 살려고 마지못해 하는 거지."라는 말이었다. 담당 상담원의 대답에 이런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쩌면 예상을 깨는 그 한마디가 감겨 있던 내 눈을 뜨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19 검사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 나는 빚을 갚지 않은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고 하면서 이 빚 때문에 다시 업소로 돌아가지 않게 해달라고 말했다. 나에게 2차를 강요하고 악담을 해대던 업주의 횡포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것을 말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빚을 갚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업소는 정말 빚을 갚을 수가 없는 곳인데, 내 앞에 앉아 있는 검사가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20 성매매 업소에서 일한 20여 년간 만난 구매자들의 행태는 나이,학력,종교,결혼 여부,경제적 능력,사회적 지위,직업,정치적 성향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들은 돈으로 내 몸을 샀다고 여기며 마음대로 대했고 죄책감은 전혀 느끼지 않았다. 남성들의 성욕은 어떻게든 풀어야 한다고 여겼고, 내 몸을 그 수단으로 삼았다. 그들에게 나라는 '사람'은 배설구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거나 추악한 성행위를 거부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예사였다. 열여덟 살에 처음으로 일했던 업소에서 만난 구매자는 어린 내 얼굴을 바라만 봐도 좋다고 했다.(...)오빠라고 부르라며 팁을 건네주면서 밖에서 한 번만 만나달라고 애원하던 그 구매자는 50대였다. 업주에게 말하지 말고 몰래 만나자며 남자 친구가 있는지 꼭 물어보았다. 없다고 하면 자신과 애인 하자고 했고,한 번만 같이 자자는 말을 노골적으로 했다. 내가 대답을 회피하면 처음에는 언제든지 기다릴 수 있다며 오빠는 마음 넓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거의 폭언에 가까운 말을 했고, 비싸게 군다고 하면서 업주에게도 술장사 못 하게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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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험이 나를 갉아먹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폭력을 폭력이라고 계속해서 말하는 것이다.’
Joohyun Han
4.5
내가 그녀의 상황이었다면 그녀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 결과만을 보고 남을 손가락질 하기는 쉽다. 자신의 환경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은 생각하지 못한 채 나는 잘났다고 목소리 높이기도 쉽다.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더욱 쉽게 빠져들 수렁- 그런 수렁은 사회적으로 막아버려야 한다. 굳이 돈 내고 성매매집결지에 와서 부항기로 발기 안되는 성기를 억지로 발기시켜 성매매를 하고야 마는 영감. 남자의 성욕은 풀어야 한다는 사회적 으로 용납되어오던 대전제는 사실은 참인 명제가 아니다. 참인 명제인 줄 알고 부항기로 억지 발기를 시키는 애처로운 노인네들을 양산시킬 뿐이다. 노인네들이나 양산시키면 다행이지, 그 거짓인 명제로 말미암아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어린 여성은 얼마나 많은가. 성매매는, 금지되어야 하고, 구매자들을 처벌하여야 한다.
윤정
4.0
하면 할수록 빚만 늘어가는 일이라니, 너무 괴로워서 읽는것만으로도 힘이 드는데 견뎌준 작가님이 너무나도 존경스럽다. "성매매 여성은 돈 쉽게 번다"는 말은 이들의 삶을 모르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궤변 중의 궤변이다.
현민
5.0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예 인
4.0
남성들의 성욕은 어떻게든 풀어야 한다고 여겼고, 내 몸을 그 수단으로 삼았다. 그들에게 나라는 ‘사람’은 배설구에 지나지 않았다. 2020.01.13.
heyyun
4.0
어떤 이론도 어떤 이유도 사람을 짓밟는데 이유가 될 수 없다. 무조건 행복한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 + 읽는 게 고통스러운 , 그치만 지워서는 안 되는 이야기라서 이 책을 쓴 용기가 더 많은 곳에 가닿았으면 좋겠다. ++ 별점 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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