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시인 단눈치오 vs 전쟁광 단눈치오 파시즘을 두고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분열적 인물에 대한 심오하고 자극적인 새로운 전기 ★2013 새뮤얼 존슨 상 ★2013 코스타북 상 ★2013 더프 쿠퍼 상 왜 지금 단눈치오를 읽는가 이 책은 이탈리아 파시즘을 예고한 인물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그의 이름은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쾌락』 『무고한 존재』 등 탐미주의 문학가로 저명한 그는 유럽을 핏빛으로 물들인 광포한 선동가이기도 했다. 그를 조명할 렌즈는 너무나 많다. 문학인, 정치가, 여성 편력의 호색한, 전쟁광, 민족주의 선동가, 혼성모방자, 비행기 조종사…… 그것들의 경중을 따지고 한쪽을 강조하다가 나머지 면모들을 배제해버린다면 결코 그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파시즘의 서막을 연 자로서, 어린 병사들을 전쟁터로 내보내 목숨을 앗아간 장본인이고 많은 여성의 몸을 탐했거나 엄청난 빚을 진 낭비가로서 그를 비난만 한다면 세기를 뒤흔든 그의 가장 중요한 면모를 놓칠 것이다. 당대 사람들은 누구나 단눈치오에게 못마땅한 점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의 매력에 빨려들어갔다. 그는 재능이 있었고 그 재능은 아름다웠다. 단눈치오는 자신의 지성에 양분을 제공하는 무언가가 주위에 어른거리기만 하면, 그것을 창槍으로 낚아채 게걸스럽게 소화한 뒤 더 나은 표현으로 세상에 내보냈다. 이 책의 저자 휴스핼릿은 단눈치오에 대한 조각들을 모아 거대한 서사를 만들어낸다. 연대기적 서술을 따르지 않고 픽션적 기법을 택했다. 저자는 시간의 보폭을 다양하게 취해 수십 년을 빠르게 훑어보다가도 어떤 주, 어떤 밤, 어떤 대화는 세밀히 들여다본다. 그러면 왜 지금 단눈치오를 읽어야 할까. 이 책이 쓰인 시점에도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상이 단속적으로 터져나왔는데 이는 파시즘의 서막 단눈치오의 사상과 유사했다. 그러니 그런 운동들의 부활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 운동들의 악폐를 인지할 뿐 아니라 그 유혹의 힘까지도 이해해야 한다. 단눈치오는 결코 파시즘의 지지자가 아니었지만, 1919년 지도자(두체)로서 그의 피우메 점령은 이탈리아 민주주의에 결정적인 상처를 입혔고, 3년 후 무솔리니의 권력 장악을 간접적으로 가능케 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 그의 인생이 흘러왔고 또 흘러들어간 물줄기들의 위치를 그려보며, 그것이 얼마나 먼 데서 발원했는지, 또 그 수원水源이 진흙탕인지 맑은지 가늠하며, 종국엔 피의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양상을 추적할 필요가 있다. 단눈치오의 삶의 이야기가 아무리 현란하고 파란만장하다고 해도 그런 이유로 그의 이야기를 개인의 놀라운 재능과 인생 드라마의 범위로 한정시켜서는 안 된다. 그의 이야기는 그 순수한 기원을 고전고대에 두고 있는 문화사의 흐름을 보여주며, 르네상스의 경이와 19세기 초 낭만주의의 이상론을 거치되, 궁극적으로는 파시즘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관통한다. 그는 한때는 무시되었으나 다시 때를 만난 이념들을 부활시키는 데 일가견이 있었고, 어떤 흐름이 막 출현할 때 대세가 될 것들을 분별해내는 통찰력이 있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의 문화적 유행 가운데 그가 탐구하지 않은 주제는 거의 없을 정도다. 그러니 무엇보다 이 전기는 단눈치오라는 한 인간을 통해 19세기 후반 유럽의 빛나는 예술과 문화가 어떻게 20세기의 광폭한 전쟁과 학살로 이어지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자체 빼어난 역사서다. 지린내 풍기는 노인네들이 로마를 다스려 하수구처럼 끔찍해졌을 때 시민들은 총체적 난국에서 단눈치오에게 빠져들었고, 그를 열렬히 환호했다. 그리고 그의 이념에 따라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거나 몸을 던졌다. 그들 모두 평범한 민주주의적 제도하의 시민들이었고, 예술을 사랑했다. 다만 어떤 애정과 애국주의는 자기 의도와 상관없이 파국을 예고하기 마련이다. 시인이면서 전쟁광 단눈치오, 극단의 동일 인물 두 명의 단눈치오가 있다. 한 명은 자연과 신화를 서정적으로 노래한 ‘안전한’ 단눈치오이고, 다른 한 명은 자신을 추종하는 이탈리아인들에게 세상을 피로 흠뻑 적시라고 요구하면서 불온한 애국주의의 서막을 연 ‘위험한’ 단눈치오다. 안전한 단눈치오를 칭송했던 이들은 그의 위험한 면모에 대해 눈을 감았다. 무솔리니가 몰락한 후 단눈치오가 여전히 아름다운 시를 쓴 걸 보면 그는 파시즘과 관계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세우면서. 하지만 저자는 일방적인 찬미와 비난 모두에 반대한다. 두 명의 단눈치오는 한 명의 동일 인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비난의 언어를 아껴둔다. ‘남성성의 극치를 보이는 시인’에 대한 글을 쓰는 여성이자 전쟁광에 대해 글을 쓰는 평화주의자로서 단눈치오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강한 비난만으로는 자기 소임을 다 했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눈치오는 그저 혐오스럽거나 광적인 인물로 치부될 수만은 없다. 그는 자신의 조국을 불필요한 전쟁에 끌어들이려는 선동에 골몰했고, 평생에 걸쳐 그가 표명한 견해는 역겨움을 불러일으키곤 했지만, 그의 생각이 역겹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제시한 문제의 위중함을 오히려 무시하는 것이 돼버린다. 단눈치오의 정치는 시학의 정치였고, 그의 시학은 감각의 시학이었다. 단눈치오의 소설은 반짝반짝 빛났다. 그는 대중에게 인기를 바랐지만, 그렇다고 대중과 타협하면서 그 취향을 그대로 가져오진 않았다. 가령 단눈치오의 『쾌락』은 비타협적으로 실험성이 강하면서도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문학사적으로 드문 작품이다. 특히 19세기에 모든 사상가를 괴롭힌 문제는 평등주의와 미의 숭배가 양립 불가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의 과장도 없이 미에 대한 찬미를 도덕성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탐미주의자였다. 단눈치오의 공적인 삶은, 가까이에서 보면 전제적인 윤곽을 가늠할 수 없는 모자이크 조각처럼 미세한 관계들을 포함한 사적인 삶과 공존했다. 정치적 연극의 대가, 스펙터클의 정치 20세기 초, 의회민주주의가 절망적일 정도로 불안해지자 이탈리아인들은 전제군주적인 남성을 갈구했다. 단눈치오 또한 당시 의회를 혐오하며 “농부의 입에서 나오는 트림처럼 천박하고 역겨운 하수구”에 빗댔다. 그런 그는 시대의 흐름을 잘 타 1919년 9월 186명의 이탈리아군 출신 폭동자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가 곧 점령하게 될 피우메에 도착하니 그의 추종자는 186명에서 2000명 이상으로 불어나 있었다. 그는 실지회복주의의 대표자로서 한때 이탈리아 땅이었던 곳을 모두 탈환하기를 바랐다. 그는 피우메라는 작은 땅에 원대한 전망을 투사했고 이곳에서 칙칙한 세계 전체를 압도해버릴 무언가를 창출하리라 꿈꿨다. 그곳에선 모든 불순물이 깨끗이 헹궈지지 않을까, 그는 기대했다. 하지만 단눈치오는 격정적이되 일관성 없는 정치적 견해를 지닌 지도자였다. 그는 닥치는 대로 이념들을 사냥했지만, 그걸 비판적으로 성찰할 능력은 결여되어 있었다. 그는 무언가와 거리를 두는 인물이 못 됐기에, 이념들의 세례 속에서 극도로 절충적이고 현학적인 인물로 변질되어갔다. 단눈치오를 비방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는 안방에서 나와 남성들의 거친 세계로 나아간 정치가가 아니라 거꾸로 정치를 자기 안방으로 옮겨버린 사람이었다. 즉 그의 정치는 타락하고 외설적인 면이 있는 데다 사적인 방식으로 그만의 유혹을 내뿜었다. 즉 피우메에서 단눈치오는 새롭고도 위험천만하게 강력한 스펙터클의 정치를 발전시켰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연설이었다. 단눈치오는 점점 더 선동적인 수사를 구사했다. “선거로 뽑힌 정치꾼들은 나약함, 무기력함, 나태함, 이기주의로 점철돼 있으니 이탈리아의 승리를 훼손하는 이 기생충들에 맞서 무기를 들자!” 하지만 언젠가 그의 수사학에서도 독설과 트림이 분출하기 시작한다. 조국에 대한 희생을 강조하는 그의 말은 외설적인 표현들로 덧칠되었다. 단눈치오의 가장 비인간적인 면은 자기 사상과 연설에 도취해 전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