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고의 극작가 유진 오닐이 가장 고통스럽게 써 내려간 자전적 희곡
비참했던 가족사를 향한 연민과 용서, ‘안개 인간’들을 위한 진혼곡
“안개는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가려 주고 세상을 우리로부터 가려 주지. 그래서 안개가 끼면 모든 게 변한 것 같고 예전 그대로인 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아무도 우리를 찾아내거나 손을 대지 못하지.”
『밤으로의 긴 여로』는 미국에서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극작가이자 사후 3년째 되던 해에 수상한 것을 포함하여 총 4회 퓰리처 상을 받은 작가 유진 오닐의 대표작이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이력과 달리 오닐의 삶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장엄한 비극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불행했다. 『밤으로의 긴 여로』에는 비극적인 그의 가족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현대 작가 중에서도 가장 음울하고 비관적인 작가로 꼽히는 오닐의 의식 세계를 가장 극명히 알려 준다.
안개 인간들을 위한 진혼곡
가난하고 무지한 아일랜드계 이민 출신으로 연극배우로 성공을 거두지만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가정과 자신의 배우 인생을 망치고 마는 아버지 제임스 오닐, 마약 중독자였던 어머니 엘라 퀸랜, 술에 절어 방탕한 삶을 살다가 결국 알코올 중독 합병증으로 일찍 세상을 마감한 형 제임스 오닐 2세. 이들을 발가벗겨서 드러내는 것은 오닐에게 “사랑에 대한 신념”과 용기가 필요한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오닐은 캘리포니아의 타오 하우스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1939년에 이 글을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소뇌 퇴행성 질환으로 인한 마비 증세로 손을 제대로 쓸 수도 없었을뿐더러, 자신과 가족들의 상처를 파헤치는 고통 또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것이었다. 부인 칼로타의 술회에 따르면 오닐은 “들어갈 때보다 10년은 늙은 듯한 수척한 모습으로, 때때로 울어서 눈이 빨갛게 부은 채” 작업실에서 나오곤 했다고 한다. 이 작품을 탈고한 뒤 오닐은 자신의 사후 25년 동안은 발표하지 말고 그 이후에도 절대 무대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에게는 그만큼 사적이고 아픈 이야기였던 것이다.
『밤으로의 긴 여로』에 등장하는 티론 가족은 어머니의 이름이 엘라가 아닌 메리이고, 두 살 때 홍역으로 죽은 둘째 에드먼드와 셋째 유진의 이름을 맞바꿔놓은 걸 제외하면 실제 오닐 가족의 모습과 똑같다. 따라서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닐의 가족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선 아버지 제임스 오닐 일가는 1848년 아일랜드에 감자병이 돌면서 무시무시한 기근이 아일랜드 전역을 덮치자 가난을 피해 미국으로 떠나온 이민자들이었다. 제임스 오닐의 부친은 미국에 온 지 1년 만에 아내와 자식들을 두고 조국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세상을 하직했으며, 남겨진 가족들은 가난하고 비참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제임스는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공장 일을 하면서 진저리나는 가난을 체험한다. 이후 그는 독학으로 연기 공부를 하고 아일랜드식 억양을 없애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로 인정받게 되지만 우연한 기회에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 역을 맡아 부와 명성을 거머쥐게 된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계속 흥행에 성공하자 돈에 눈이 어두워진 제임스 오닐은 25년간 미국 전역을 돌며 6천 회 이상의 순회공연에 매달린 끝에 결국 셰익스피어와는 거리가 먼 흥행 배우로 주저앉고 만다. 그는 가난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가족들에게는 병적으로 인색하게 굴면서 악착같이 땅을 사들인다.
한편 어머니 엘라 퀸랜은 유복한 중산층 출신으로 피아노 연주에 재능이 있고 수녀가 되기를 꿈꾸던 감수성이 예민하고 경건한 인물이었으나 19세에 미남 배우 제임스 오닐과 사랑에 빠져 자신의 꿈을 접고 그와 결혼한다. 조용하고 예민한 성격이었던 그녀는 ‘싸구려 호텔’을 떠돌며 가정다운 가정을 꾸리지도 못하고 사는 외로운 생활에 염증을 느낀다. 그러다 친정어머니에게 맡겨두었던 둘째 아들 에드먼드가 홍역으로 죽자 자신과 남편과 홍역을 옮긴 큰아들 제이미를 원망하고 증오하게 된다. 그러던 중 셋째 유진을 낳고 진통이 가시지 않아서 호텔의 주정뱅이 돌팔이 의사에게서 진통제로 모르핀 주사를 맞은 후 모르핀 중독자가 되고 만다. 이러한 그녀의 마약 중독은 두 아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만다. 큰아들 제이미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결국 인생의 실패자, 알코올 중독자로 죽음을 맞게 되며, 막내 유진은 책에만 파묻혀 살며 형 제이미를 숭배한다. 형처럼 방탕하게 살던 그는 결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쫓겨나 배를 타고 떠돌기도 하고 뉴욕 뒷골목에서 부랑자 노릇을 하다가 1911년에는 자살 기도까지 한다.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인 1912년은 어머니 엘라가 중독 증세가 호전되어 요양원에서 돌아오고 유진이 방랑 생활을 접고 신문사에 기자 겸 시 기고가로 입사한 시기이다.
작품 속에서 티론 가족은 그들의 유일한 집인 여름 별장에 모여 모처럼 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으로 생활한다. 그러나 커튼처럼 드리워진 자욱한 안개와 병든 고래의 신음 소리 같은 음울한 무적이 암시하듯 1막부터 이들은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이미 메리는 다시 모르핀을 맞기 시작했고, 단순한 독감인 줄 알았던 에드먼드의 병은 심각한 증세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짐짓 태연함을 가장하던 가족들은 두려움이 엄연한 현실로 다가오자 메리는 마약에서, 아버지와 두 아들은 술에서 도피처를 찾는다. 메리는 마약의 힘을 빌려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가 그곳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세 남자는 술기운으로 절망과 쓰라림을 견딘다.
4막에서 에드먼드가 아버지에게 “이 빌어먹을 집구석에선 이해를 해 줘야지 안 그러면 돌아 버린다.”고 했듯이, 아버지의 인색함은 가난 탓으로, 어머니의 마약 중독은 돌팔이 의사 탓으로, 제이미의 냉소주의와 뒤틀린 질투는 인생에 대한 좌절 탓으로, 에드먼드의 병적인 비관주의는 다우슨, 니체, 보들레르 탓으로 돌려진다. 식구마다 마약이나 술기운을 빌려 자신을 변호하는 장광설을 늘어놓으면 피붙이다운 연민과 애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보들레르가 노래한 “그대의 어깨를 눌러 땅바닥에 짓이기는” 현실의 무게는 그들이 서로 잔혹하게 할퀴고 증오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티론 가족은 순간순간 서로를 이해하는 듯하지만 끝내 화해하지도 구원받지도 못하고 죽음과 같은 절망의 나락에 빠져들 뿐이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 결코 가혹하지만은 않다. 그것은 오닐 자신이 그토록 고통에 차서 방황하던 네 사람에 대한 “깊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의 마음으로 쓴 글이기 때문이다. 실로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그는 “돌지 않기 위해서”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난 연민과 이해와 용서로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사랑하는 가족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를 끝없이 괴롭히고 방황하게 했지만 결국 그를 최고의 극작가로 키워낸 밑거름이었던 가족들에게 위대한 극의 형식으로 보답한 것이다. 그는 메리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운명이 저렇게 만든 거지 저 아이 탓은 아닐 거야. 사람은 운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까.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칼로타 몬트레이는 고인의 뜻에 따르지 않고 1956년에 『밤으로의 긴 여로』를 발표한다. 미국 관객들보다 더 오닐을 사랑하고 인정했던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있는 왕립극장이 초연 장소였다. 장장 4시간 반 동안 공연된 초연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스웨덴의 비평가들은 오닐을 그리스의 비극 시인 아이스킬로스와 셰익스피어의 맥을 잇는 최고의 극작가라고 극찬하였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같은 해에 미국 예일 대학교 출판부에서 책으로 출간됨과 동시에 뉴욕 무대에도 올려졌다. 뉴욕 공연 역시 “스트린드베리가 대사를 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같다.”는 찬사를 받으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밤으로의 긴 여로』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인간의 보편적 진실로 승화한 대표적인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으며 1957년에는 그에게 다시 퓰리처 상을 안겨주었고,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