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간의 운명은 자유이다 세계에 무(無)를 도래시키면서 자유로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탐구 실존주의를 열어젖힌 사르트르의 대표작 『존재와 무』의 새로운 번역본 출간 “자유는 인간의 본질에 선행한다.” 20세기 최고의 책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철학서 장폴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1999년 《르 몽드》는 독자에게 물었다. “당신의 기억에 남아 있는 책은 무엇입니까?” ‘20세기 최고의 책’ 100권을 뽑기 위해 1만 7000여 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존재와 무』는 13위를 차지했다. 이는 철학 저서 중 가장 높은 순위로, 프랑스 전역에 광범위한 판매망을 가진 프낙 서점이 함께한 조사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1943년 장폴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를 출판했다.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 식량까지 약탈해 가는 독일군을 대하며 프랑스인이 분열을 겪던 시기. 사르트르는 폭탄이 아니라 글쓰기로 저항하고자 결심한다. 그는 학생 시절 연구한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과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딛고 자신의 사상을 전개한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비참한 전쟁의 세계 속에서도 인간은 자유롭다고 말하는 사상이었다. 『존재와 무』는 빵처럼 팔려나갔다. 물자가 부족하던 시기에 저울 대용으로 쓰였고, 허기진 사람들의 정신에 양식이 되었다. “나는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정열을 가졌다.” 『존재와 무』는 이 정열의 실천이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근엄한 철학에 던져진 폭탄이자, 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오래된 길에 세운 새 이정표였다. 사르트르라는 존재에 대해 철학자 질 들뢰즈는 이렇게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사르트르가 있었다. 사르트르는 우리들의 바깥이었다. 신선한 바람이자, 새로운 질서를 견딜 힘을 주는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사르트르는 카페에 들어오면서 지식인들의 공기를 바꿔 버리는 그런 지식인이었다.” “자유롭다는 것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은 것이다.” 시대의 지식인 사르트르, 존재의 탐구를 통해 현실에 참여할 발판을 놓다 20세기는 폭력의 세기였다. 인간의 문화가 절정에 이른 19세기에 ‘현대’는 빛나 보였다. 그러나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고, 연이어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인류는 사상 최악의 위기에 치닫는다. 세계를 재편하는 전쟁과 사상의 충돌 속에 에워싸여 사르트르는 살아갔다. 『존재와 무』에서 탐구 대상은 고립된 인간이다. ‘나 대 타자’의 관계 정립에 머무는 개인.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어떻게 그토록 잔인할 수가 있는가? 인간이 스스로 칭송했던 위대함과 존엄성은 사라져 버렸는가? 인간은 이성의 주체가 아니라 비인간성의 심연에서 허우적거리는 존재에 불과한 것인가? 『존재와 무』는 이런 질문을 파고드는 장대한 존재론이다. “인간으로부터는 존재만이 나올 뿐이다.” 이로부터 벗어나려면, 인간은 자신을 존재의 바깥에 놓아 존재의 구조를 약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존재를 무화(無化)하는 것이다. 이처럼 현상을 넘어서 본질로 나아가는 하이데거의 ‘현존재’를 사르트르는 ‘인간실재’로 바꿔 쓴다. “인간실재가 자신을 고립시키는 무를 분비하는 가능성”은 있다. “그것이 바로 자유(liberte)이다.” 즉자존재에 머물 수 없는 대자존재로서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 존재의 탐구는 단지 사변적이지만은 않다. 카페의 종업원이 아무리 종업원다움을 연기하려고 해도 끝끝내 종업원 자체일 수는 없다는 『존재와 무』의 유명한 예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을 설명한다. 자기기만이라는 사태에서부터 불안으로부터의 도피, 슬픔·질투·수치와 같은 감정, 사랑과 성욕과 마조히즘의 문제까지 이 책이 다루는 모든 주제는 우리가 견디고 초월하는 삶의 문제다. 사르트르 후기 사상의 대표작 『변증법적 이성 비판』 번역에 참여하고 ‘시선’과 ‘폭력’을 중심으로 사르트르를 연구해 온 한국사르트르연구회의 변광배는 5년 만에 내놓는 이번 번역본에서 철학적 이론과 문학적 서술의 정교한 번역을 위해 고심했다. 프랑스 갈리마르에서 나온 1994년 신판을 저본으로 삼아 처음으로 선보이는 완역 한국어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