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극우세력이 사활을 걸고 개정을 꾀하고 있는 ‘일본국 헌법 제9조’, 일명 ‘평화헌법’은 어떤 경로를 통해 제정되었으며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가. 일본의 북방 영토문제는 어떤 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는가. 일본의 점령 기구를 고찰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책 GHQ를 읽다보면 명쾌한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1945년 8월, 태평양 전쟁이 종결되고 일본은 패망한 직후 남한에는 3년간 미군정이 들어섰고, 일본에는 6년간 GHQ(연합국 총사령관 총사령부)가 설치되었다.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 사령부는 GHQ를 통해 천황제 일본을 평화헌법체제 일본으로 탈바꿈시키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실험에 돌입하게 되는데, 이 책은 GHQ 성립 과정과 조직 형태는 물론이고 당시의 각 부서 담당자들을 추적하고 인터뷰하여 정책 결정 과정과 인물의 이력까지 면밀히 밝히고 있다. 나아가 미ㆍ소 냉전체제의 고착화와 더불어 애초의 개혁적인 조치와 그 문제의식이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지 또한 고찰하고 있다.
남한의 미군정 역시 GHQ의 직접 지시 아래 있던 하지 사령부였으며, GHQ로부터 정책 지원뿐 아니라 인적 자원까지 공급받았던 만큼 점령기구와 정책 결정, 그 담당자들에 대한 연구를 진척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GHQ, 맥아더 사령부의 일본 점령 정책에서
남한의 미군정을 읽는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고 나서, 일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일본 천황의 패망 선언과 함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은 일본 본토를 점령하였고, 전범재판을 비롯한 전후 처리와 함께 평화 헌법 개정 등 제 개혁을 단행하게 된다. 이러한 점령기 개혁을 주도했던 게 바로 맥아더 사령부가 이끌었던 GHQ이다.
GHQ가 일련의 개혁을 주도했던 점령기 일본은 일본인에게 ‘이민족에게 지배를 받았다는 굴욕감과 전쟁 및 천황제 권력으로부터 놓여났다는 해방감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시기’였다고 하지만, 연합국에게는 천황에서 신민에 이르는 전일적인 군국주의, 초국가주의 정치체제의 일본을 송두리째 바꿔보려던 역사상 거대한 실험을 단행했던 시기였다.
한평생을 이 GHQ 연구에 몰두하다가 실명에 이른 책의 저자 타케야마 교수는, GHQ의 점령 이념을 “일본이 ‘대동아공영권’과 ‘팔굉일우’라는 미명하에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하고 연합국과 전쟁을 벌인 전철을 다시는 밟지 않게 하기 위하여, 평화를 애호하고 유엔헌장을 존중하는 나라가 될 때까지 철저하게 비군사화, 민주화를 수행하는”(251쪽) 것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GHQ의 성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들 연합국의 전후 일본 개혁이라는 고민은 1942년 8월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1차 세계대전을 감행했던 독일이 패망 후 왜 다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되었나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미국 국무부 내 대일 정책 연구 그룹인 ‘동아시아연구반’에서 천황제 존치 문제 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 국무부의 「일본에 관한 합중국의 전후 목적」과 군부의 『민정가이드』에 기초하여 국무·육군·해군 3부조정위원회(SWNCC) 산하 ‘극동소위원회’에서 제출한 초기 방침 요강에 따라 미국은 1945년 6월 12일 「항복 후 미국의 초기 대일 방침(초기 방침)」을 결정하면서 전쟁 후 일본 개혁의 밑그림을 완성한다. 이 문서에 따르면, “비군사화, 민주화, 자유주의화 등이 강조되었고, 점령행정은 기존의 일본 행정기관을 활용하여 수행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에 기초하여 1945년 7월 26일 미영중 3상이 만나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이 발표되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위력과 소련 참전이 두려웠던 일본은 1945년 8월 15일 천황제 존치를 내걸고 조건부로 항복하게 된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런 항복 조건을 이행할 권한을 맥아더에게 부여하고 그를 연합국 최고사령관(SCAP)으로 임명한다. 마침내 1945년 10월 2일 토쿄에 있는 재일생명관 빌딩에 GHQ를 설치하게 되고, 1952년 4월까지 근 6년간 일본에 대한 이른바 GHQ에 의한 “점령 관리”가 시작되게 된다.
타케마에 교수는 1945년 9월 6일 트루먼이 맥아더에게 통달되었던 문서를 통해서 천명한 것처럼“천황과 일본 정부의 권한이 연합국 총사령관에 종속된다”며, GHQ는 “일본의 헌법과 법률적 제약뿐 아니라 일본 정부의 의사에 구애받지 않고 어떠한 조치도 합법적으로 집행할 수 있었다”고 GHQ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GHQ의 조직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한마디로 GHQ는 군부와 민간행정조직이라는 이중구조로 짜였고 일본의 정부기구를 통한 간접통치 방식이었다.
GHQ 조직은 일본 점령군, 미국 서태평양육군과 미국 중부 태평양육군까지 관할하는 미국 태평양육군 사령관(CINC/AFPAC)의 GHQ와 일본 점령행정을 소관업무로 하는 연합국 최고사령관(SCAP)의 GHQ라는 이중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연합국 최고사령관 겸 미국 태평양육군 사령관인 맥아더를 수장으로 하여 휘하에 두 부참모장이 각각 태평양육군 막료부와 연합국 최고사령관 막료부를 관장하였다. 그리고 양쪽에 각기 다른 막료부서의 책임자를 한 사람이 겸임하기도 하였다. (117쪽 그림 4)
또한 수정된 「초기 방침」을 살펴보면, ‘최고사령관은 천황을 포함한 일본 정부기구 및 제 기관을 통하여 그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간접통치 조항이 들어 있으며, ‘최고사령관이 일괄적으로 명령을 내리면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고 그 명령의 시행을 대행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각 레벨의 군정본부와 지방(도도부현)에 군정부를 두고 지시한 정책이 충실히 시행되는지를 점검하였다고 한다.(81쪽 그림 2) 명령에 대한 오해나 마찰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하여, 일본인으로 구성된 ‘종전연락사무국’을 중앙과 각 지방에 두어서 GHQ와 일본 정부 사이를 잇는 파이프 역할을 담당하게 하였다.
그리고 GHQ에 배치된 스태프들은 의외로 고학력 엘리트로 구성되었다. 선거제도 개혁 등 민주화를 맡았던 민정국장인 휘트니는 변호사 출신이었고, 차장인 케이디스는 하버드 법과대학원 출신이었으며, 재벌해체를 담당했던 경제과학국 국장 크레이머 대령은 기업인 출신이었다. 일본 여성의 해방과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했던 정보과 기획담당 위드 중위는 시민운동 경험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처럼 이들 중에는 미국 연방 정부의 요직에 있었던 사람에서 변호사, 재계인 등 전문직 경험자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알려진 것과 달리 완고한 군인과 무능한 관리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GHQ의 개혁 정책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이에 따라 GHQ는 전범 처벌, 군대의 무장해제, 군수공업 파괴 등 초기에 비군사화 정책을 전개했으며, 특고 해체, 탄압입법 폐지, 공직추방, 민주적 제반 조직의 지원 등을 행하였다. 특히 헌법 개정을 정점으로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음을 천명하고 천황을 상징적인 존재로만 국한시키기 위하여 국회와 내각의 권한을 강화하였다. 경찰, 교육, 행정의 지방분권화를 주도했으며 인권 보장 강화 등 정치개혁을 단행하였다.
또한 전쟁 수행의 중추 역할을 맡았던 재벌을 해체하고 농지개혁, 노동개혁, 경제 퍼지 등을 실시하여 일본 자본주의를 구조적으로 재편성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등 경제민주화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천황과 신민 관계의 사고방식을 혁파하기 위하여 종교와 정치의 분리, 교육개혁, 매스컴 개혁을 주도하였고, 일본인이 군국주의적, 초국가주의적, 봉건주의적 이데올로기에서 민주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전환하도록 지도하였다.
이렇게 GHQ는 일본의 민주화를 위하여 제도적 개혁에만 머물지 않고 물적인 기초와 정신적 풍토에까지 파고들어 개혁의 메스를 가했다. 저자는 이런 GHQ의 행정을 ‘점령 관리’로 표현하고 “국제정치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실험”(253쪽)이라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