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공자도 날 때부터 성인이 아니었다 오롯이 배우고 익혀 그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1998년 출간 이래 매년 쇄를 거듭하며 사랑받아온 『선인들의 공부법』이 새롭게 출간되었다. 편역자 박희병 교수는 동아시아 전통에서 말하는 ‘공부(工夫)’란 즐거움 속에서 평생 하는 것으로서, 살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은 삶의 태도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진정한 스승을 찾기 어려운 우리 시대에 배움의 극한 경지를 터득한 선인들을 불러와 그들의 가르침을 육성 그대로 들려준다. 『대학(大學)』『중용(中庸)』 등의 경전부터 공자(孔子), 왕양명(王陽明), 이황(李滉), 정약용(丁若鏞) 등 위대한 사상가 15인의 저작과 개인문집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자료 속에서 ‘공부의 정도(正道)’를 알려주는 명문(名文)을 가려뽑은 이 책은 배움의 길에서 방황하는 학생은 물론이고, 죽는 날까지 배우고 깨치기를 갈망하는 모든 이에게 공부와 인생의 귀중한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 책의 구성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를 시대순으로 배열하고, 각 장의 첫머리에 이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달았다. 이를 통해 간략하게나마 동약학의 거대 흐름인 성리학, 주자학, 양명학은 물론이고 한국에 와서 더욱 발전한 기(氣)철학의 흐름과 실학(實學)의 전통을 한눈에 살필 수 있도록 했다. 자신의 인격을 향상시키고 세상을 밝히기 위한 ‘진정한 공부’를 알려준다는 의미를 넘어, 한권으로 동양 사상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의 또다른 미덕이다. 공부란 학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 “학문이란 안에서 찾는 것이다” _ 정자(程子)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공부’란 특별한 것이거나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서양 근대학문의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면서 한 분야를 깊이 파는 전문적인 기술이자, 학자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서양 근대학문이 학문의 체계를 세웠다는 평을 받지만, 역효과도 만만치 않다. 분야를 넘나드는 ‘전인(全人)’이 더이상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통섭(統攝)’이 시대의 과제로 떠오르게 된 것이 대표적이다. 박희병 교수는 근대학문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한 새로운 삶, 새로운 세계관의 모색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아시아 학문론에서 대안을 찾는다. 동아시아 학문론에서 말하는 학문이란 좁은 의미의 학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부 일반’을 가리키는 아주 포괄적인 말이다. 오늘날의 맥락에서 본다면 그것은 전문 학자만의 전유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신의 인간적 완성을 위해 삶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수반하는 행위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 발전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동아시아 학문론에서는 삶의 과정 그 자체가 바로 공부의 과정이며, 삶과 공부는 별개의 것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공자님 말씀’을 어렵게만 생각하지만, 사실 공자가 설파한 진리는 ‘공부의 즐거움’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즐거운 공부’를 실천한 인물이다. 후학들도 마찬가지다.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이라고 평가받는 성리학자들이지만, 그들은 형식적인 규율에만 매여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학문이라는 것은 안에서 찾는 것”이며, “공부하는 자는 그 생각과 포부가 원대”하기를 주문한다. 스스로 깨닫는 공부를 하라 : “스스로 깨닫는 것은 일당백의 공부가 된다” _ 왕양명(王陽明) “난을 치는 것이 비록 작은 도이기는 하나 법도가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거늘, 하물며 이보다 큰 일에 있어서랴!” 김정희(金正喜)의 말이다. 서예가로만 알고 있는 김정희가 말하는 공부법은 극과 극은 통한다는 자명한 진리를 다시 한번 새기게 한다. 이어지는 말은 “난 치는 데 손을 대자면 마땅히 자신을 속이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라는 것으로, 공부란 자신의 진면목을 찾는 과정임을 일깨워준다. 옛사람들이 선인들의 말을 맹목적으로 좇기만 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오해에 불과하다. 왕양명은 “학문은 마음으로 깨닫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마음에 비추어 보아 옳지 않다면 설혹 공자의 말일지라도 옳다고 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공자보다 못한 사람이 한 말임에랴”라고 하여, 스스로 깨닫는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 선인들의 공부법이 한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자(朱子)가 “공부는 닭이 알을 품는 것과 같다”라고 하고, 이황이 “학문하는 것은 거울을 닦는 데 비유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주자나 이황은 따지는 공부를 많이 하고, 그만큼 엄정하게 자신을 관리했다. 반면 서경덕(徐敬德)이나 홍대용(洪大容) 등은 명상과 직관을 중요시해 깊이 생각하거나 뜻을 담대하게 가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외에도 조식(曺植)은 실천을 강조하고 박지원(朴趾源), 정약용은 공부를 천하를 이롭게 하는 방법으로 받아들였다. 가장 유명한 좌우명은 탕왕이 세숫대야에 써놓고 매일 아침 살펴보았다 글 ‘日新又日新’이다. 이처럼 누구나 가슴에 새긴 말이 하나쯤은 있을 텐데, 오늘날 사람들은 그마저도 빠뜨리고 지내는 듯하다. 매일 ‘日新又日新’를 점검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삶의 방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큰 차이를 보이게 마련이다. ‘공부 비법’을 기대한 이들에게 이 책은 실망감을 안겨줄지 모른다. 하지만 삶과 공부가 둘이 아님을 깨달은 선인들의 한마디 말은 지금까지의 공부와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특히 배움의 열정을 이어가는 이들이나, 이제 막 공부의 참맛을 알아가는 이들에게는 매일 아침 가슴에 새겨야 할 좌우명이자 인생의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