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배출한 세계적 지성 왕후이의 15년 연구 결산
‘신좌파 지식인’에서 ‘세계시스템 이론가’로 도약, 전회
중국 근대사 재서술로 유럽판 세계역사 해체하는 ‘아시아 구상’
2010년 홍콩 출간 이후 2011년 영어, 일어판 연이어 출간
“왕후이는 내가 가장 신뢰하는 현대 중국의 사상가다.
그는 중국을 세계적 상황 속에서 파악하며, 나아가 중국의
특수한 문제로부터 보편적인 인식을 도출한다.”
_가라타니 고진, 아사히신문의 서평에서
『아시아는 세계다』(원제: 亞洲視野, 2010)! 이 도발적 제목의 책은 중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사상가 왕후이汪暉(1959~)가 지난 15년간 쓴 논문을 묶어서 펴낸 책이다. 루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서평지 『독서讀書』의 주간으로 참여해 이 잡지를 중국 최고의 지성지로 키우면서 그 자신도 세계적 지성의 반열에 올랐다. 10년 전부터 한국에 소개되어온 그는 중국에서는 신좌파 논객으로 유명해졌지만, 한국에서는 백영서 등 창비 주도 동아시아 담론의 객원 플레이어로 조명되며, 새로운 ‘국경 없는 비판적 지식인 공동체’를 모색하는 학자의 이미지가 강했다.
『죽은 불 다시 살아나』(삼인, 2005) 이후 실로 오랜만에 한국어판을 선보였는데, 왕후이의 이번 신간은 ‘신좌파 지식인’에서 ‘세계시스템을 고민하는 이론가’로서의 왕후이의 도약과 전회轉回가 두드러지는 문제작이다. 여기서 왕후이는 ‘트랜스시스템사회trans-systemic society(跨體系社會)’라는 새로운 개념을 선보이는데, 이것은 마르셀 모스의 ‘초사회시스템supra-cocietal systems’에서 발전된 것으로, 중국과 그 인접국가들의 역사적 존재양태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이런 이론적 모색은 현재 전세계적 관심사로 떠오른 두 지역 ‘티베트자치구’와 ‘류큐’(일본 오키나와현)를 대상으로 삼아 강하게 전개된다. 여기 깔린 왕후이의 정치적, 역사적 안목과 떠오르는 대국 중국 지식인으로서의 강한 자의식은 독자들마저 긴장시키는 흡인력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왕후이가 갖는 가장 큰 문제의식은 ‘중국과 중국의 근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이다. 이것은 우리의 시각과 언어로 우리의 역사를 쓰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비롯된 인식이면서 동시에 서구 지식인들의 ‘아시아 상상’(오리엔탈리즘)의 허상에 대한 반발인데, 왕후이에게는 역사적 사료에 근거해 이러한 중국 이미지를 분쇄시키는 데 1차적 목적이 있다.
이 책의 제3장 ‘동양과 서양, 그 사이의 ‘티베트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왕후이에 따르면 티베트는 할리우드 영화와 대중문화를 통해 신비적, 정신적이고 계시로 충만하여 비기술적, 평화애호적, 도덕적이고 영혼과 소통할 수 있는 세계로 구축되었다. 기아와 범죄, 과음이 없고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국가이자 아직 오랜 지혜를 보유하고 있는 인간 집단이라는 형상을 창조했다. 왕후이는 그러한 이미지를 철저히 걷어내면서 동시에 티베트 정신을 통해 고대 철학으로 회귀하려는 흐름이 사실상 냉전시대의 정치 이데올로기와 밀접하게 연관됨을 확인하며 ‘티베트 독립’에 힘을 실어주는 서방 언론의 이데올로기를 분쇄시킨다.
이러한 오리엔탈리즘 해체 작업 이후 드러나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중국 청말부터 이어지는 중국 근대사의 새로운 면모가 그 하나이다. 가령 왕후이는 중국의 근대 언어운동이 음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언어시스템을 창출하려고 했던 한국, 일본 등 여타 국가들의 그것과 달랐다고 선을 긋는다. 그리고 중국만이 유일하게 근대시기부터 지금까지 미국에 대해 독립적인 정부를 유지해왔다는 점도 강조한다. 둘째, 티베트를 사이에 두고 유럽과 대면하고 있고, 류큐(태평양)를 사이에 두고 미국과 대면하고 있는 중국의 현재 상황이다. 왕후이는 류큐가 1870년 이후 일본에 속한 것은 무력에 의한 점령이며 그 이후에 국제법에 따른 공인 과정도 매우 불확실한 측면이 많음을 강조한다. 청나라 리훙장과 주중일본대사와의 문답식 대화를 인용하면서 왕후이는 류큐는 중국의 번속이었을 때 오랜 기간 평화롭게 지내온 하나의 자치왕국이었음을 은연중 강조한다.
이러한 교차서술을 통해 왕후이가 말하는 ‘트랜스시스템사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비교적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것은 이를테면 ‘중국모델’이다. ‘습속을 따르고 마땅함에 따름從俗從宜’으로 요약되는 청나라 천황시스템이 중앙과 지방을 관장한 방식, 다시 이러한 중앙과 지방이 합쳐진 제국이 주변 국가들과 소통한 ‘조공체제’라는 방식이 바로 트랜스시스템사회의 역사적 원류로 떠오르는 것이다. 그것은 “민족공동체의 시각에서 이뤄지는 각종 사회 서술과도 다르고 다원사회라는 개념과도 다르다. 그것은 상호 침투적인 사회가 독특한 방식으로 연결된 것이다”는 것이 왕후이가 던지는 선언이다. 오늘날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서 드러나듯 강대국의 필요에 의해 국제규약이 유명무실화되고, 민족국가의 경쟁체제가 약육강식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왕후이의 트랜스시스템사회는 중국적 황제 및 조공시스템에서 “상호 침투적인 사회가 독특한 방식으로 연결된” 그러한 장점만을 간취하여 현대 사회에 구현하자는 주장인 것이다.
왕후이는 이 책에서 중국 지식인이 약간만 긍정적이고 포용적인 발언을 해도 “정부의 대변인”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현실을 개탄하면서도, 그러한 지탄에서 비켜서려는 노력을 치열하게 경주했다. 여러 가지 장치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 하나가 유교사상이 서양에서의 기독교가 수행한 역할만큼, 동양에서 통합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다는 해석에 대한 유보적 판단이다. 왕후이는 “중국 사회의 여러 풍부한 맥락들을 고려하면 유교 문화는 청조의 정치 영역과 문화 영역의 통일을 표현하기에 부족하다.…유교사상이 청대에 주도적인 지위를 점했다면 그것은 곧 ‘유교사상’이 정치적 성격이 매우 강했고 중개 역할을 잘 수행해 다른 시스템들을 매우 탄력적인 네트워크에서 정교하게 조직하면서 이 시스템들 자체의 독특한 특성을 결코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왕후이는 이 책에서 말한다. “오늘날 미국의 금융 패권을 포함한 여러 가지 패권들은 미국의 군사적 패권과 국가적 패권이라는 기초 위에서 형성되었다. 이런 패권 없이는 어떤 금융적, 시장적 패권도 존재하지 않게 되며 모두 붕괴되고 와해될 수 있다.(289쪽)”고 말이다. 그는 분명 국가의 실체적 힘을 직시하고 있는 지식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결코 중국의 경제적, 정치적 패권화의 길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황해문화』 가을호에 백승욱 중앙대 교수는 왕후이의 이러한 행보를 문제삼으면서 “너무 정부 친화적이다” “쑨거나 첸리췬 등의 비판적 지식인 동료들에 비해 너무 빨리 반환점을 돌았다”라고 비판했다.
왕후이의 이번 저작은 확실히 문제적이다. 과연 한국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왕후이의 역사서술과 현실분석을 서양에 대한 대안적 역사담론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중심주의의 산물로 보고 접근할 것인가. 특히 그는 제4장 ‘류큐: 전쟁의 기억, 사회운동, 그리고 역사해석’에서 카이로회담 당시 중국 측이 매우 적극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조선의 독립’ 조항을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카이로 선언에 ‘조선 독립’ 조항이 들어간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왕후이는 중국 측 학설 외에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부분도 매우 조심스럽게 읽어야 할 대목이며, 왕후이라는 문제적 인물의 행보를 우리가 깊이 분석해봐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