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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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수한 슬픔, 외롭다거나 삶을 새롭게 꾸미겠다거나 하는 따위와는 상관이 없는 슬픔. 사랑의 관계가 끊어져 벌어지고 패인 고랑.” ― 1977년 11월 9일 일기에서 “바르트에게 사랑의 대상은 경제학의 대상이 아니다. 사랑의 대상은 바르트에게 ‘대체할 수 없는’ 존재다. 대체할 수 없는 사랑이 상실되었으므로 그 상실이 남긴 부재의 공간 또한 그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패인 고랑’으로만 남는다.” ―김진영, 「해설」에서 * 『뉴욕타임스』 선정 TOP 10(2010년) * 『슬레이트』 『타임스문학부록』 선정 최고의 도서(2010년) 1. 롤랑 바르트의 후기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발견 이 책은 ‘현대 비평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으로 꼽히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가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일기다. 바르트의 어머니 앙리에트 벵제(Henriette Binger, 1893~1977)는 1977년 10월 25일 사망했다. 그 다음 날부터 바르트는 애도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이 일기는 2년 뒤인 1979년 9월 15일에 끝난다. 노트를 사등분해서 만든 쪽지 위에 바르트는 잉크로, 때로는 연필로 일기를 써내려갔다. 그리고 책상 위 조그만 상자에 이 쪽지들을 모아두었다. 현대저작물 기록보존소(IMEC)에 간직되어 있던 『애도 일기』의 원고는 분리된 쪽지 그대로의 모습으로, 생략되는 내용 없이 다시 편집되어 2009년 쇠유(Seuil)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애도 일기』는 『밝은 방』과 더불어 롤랑 바르트의 후기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텍스트이다. 지적인 여정에서든 글쓰기의 여정에서든 이 후기 스타일을 결정짓는 근간은 바로 ‘죽음’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일부라고 여겼던 사람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깊은 슬픔이 있다. 바르트는 이 아름답고 슬픈 텍스트에서 상실의 슬픔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파헤치고, 내지른다. 2. 격렬한 슬픔의 습격해올 때마다 써내려간 육체의 비명 바르트의 어머니 앙리에트 벵제는 1893년에 태어나서 스무 살 때 루이 바르트(Louis Barthes)와 결혼했고, 스물세 살 때 전쟁미망인이 되었다. 롤랑 바르트가 한 살 때 루이 바르트가 해군장교로 전사를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의 특별한 관계는 바르트가 1976년 62세 때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취임하면서 어머니를 불러와 맨 앞자리에 앉혀 놓고 취임강연을 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나를 질책한 적이 없었다.”는 바르트가 어머니를 그리워할 때, 어머니를 “관대함”, “선함”의 상징으로 이야기할 때 하는 말이다. “자궁 밖으로” 나오지 않은, 어른이 되지 못한 “늙은 아이”였던 바르트는 어머니와의 사랑이 끊어지자 거의 2년에 걸쳐 그의 외로움, 격렬한 슬픔,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서 재생된 삶에 대해 써내려갔다. 슬픔이 습격해올 때마다 짧게 써온 이 일기들은 텍스트를 넘어서는 절편적 글쓰기 형태를 취하고 있다. 어떤 구상도 없고, 체계화나 언어화가 되기 전에 멈추어버린, 바르트의 육체의 언어이자 비명이었던 셈이다. 3. ‘사랑을 잃어버린 슬픔’에 대한 집요한 추적 기호학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현대 세계에서 가장 활력적인 사유를 펼쳤던 바르트의 지적 커리어는 크게 어머니의 죽음 전과 죽음 후로 나눌 수 있다. 『애도 일기』를 써나가던 2년 사이에 바르트는 『밝은 방』을 집필했다. 또 「오래전부터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라는 프루스트에 관한 강연을 했고,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구상했던 소설 “비타 노바(Vita Nova)"의 스케치를 했고, 「소설을 준비하면서」의 강의를 계획하기도 했다. 사실 이 모든 작업들은 또 다른 애도 일기들이었다. 『밝은 방』은 “사진에 대한 노트”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적어도 『애도 일기』와의 관계에서는 사진론 텍스트가 아니라 슬픔에 관한 텍스트이다. 『밝은 방』도 어머니를 잃은 상실의 슬픔에 젖어 있지만, 제목에서처럼 빛이 있다. 그 빛이 작렬하면서 사랑이 죽음에 대해 승리하는 엑스터시의 체험, 사진 체험이 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어머니를 다시 만났다!”라고 바르트가 경이에 차서 외치듯, 『밝은 방』의 근본적인 사건은 사진을 통해서 어머니를 만난 것이다. 즉 푼크툼(punctum)의 순간에 죽은 어머니가 바르트에게 ‘온전한 현존’으로 귀환한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는 『애도 일기』에서는 끝내 어머니를 잃은 상처를 해소하지 못한다. 어머니에 대한 추억행위가 가능했던 『밝은 방』에서와 달리 『애도 일기』의 시기에 오면 바르트는 자신의 죽음과 만난다. 어머니의 죽음 후 끊임없이 죽음충동에 시달렸던 바르트는 『애도 일기』가 끝난 이듬해(1980년) 2월, 길을 건너다가 작은 트럭에 치인다. 사고는 경미했지만 심리적으로 치료를 거부했고 그는 한 달 뒤 사망한다. 1979년 5월 1일 일기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나는 마망과 하나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동시에) 죽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