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에 이은 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의 정수
해즐릿은 독자를 기쁘게 하려고 글을 쓰지 않고, 독자를 흔들고 깨우기 위해서 쓴다.
국내 초역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는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와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에 이은 윌리엄 해즐릿의 세 번째 에세이집이다. 해즐릿은 영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에세이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시나 소설이 아닌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해즐릿의 직설적이고 격조 높은 문장의 이면에는 급진적 공화주의자로서의 강력한 정치적 신념과 지적 활력, 인간 본성에 대한 주저 없는 비판이 살아 숨쉰다. 그에게 에세이는 단순히 성찰의 도구가 아니라 저항의 무기로 기능했다. 지식인의 역할과 권력에 맞서는 글쓰기를 중시한 해즐릿은 권위주의와 혐오가 팽배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해즐릿은 안개 속에서 지척거리다 자신의 하찮음으로 죽음을 맞는, 태도가 두루뭉술한 부류의 작가가 아니었다. 그의 에세이들은 단연 해즐릿 자신이다.” - 버지니아 울프
이번 선집에는 에세이스트 해즐릿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여덟 편의 작품이 들어 있다. 그의 문장은 가식적이지 않고, 근육처럼 단단하면서도 때로는 쓸쓸한 정조가 감돈다. 해즐릿은 독자를 기쁘게 하려고 글을 쓰지 않고, 독자를 흔들고 깨우기 위해서 쓴다. 표제작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에서는 청춘의 찬란함과 그 이면의 허상을, 「인격을 안다는 것은」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타인을 오판하는지를 보여 준다. 「돈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에서는 가난이 인간의 존엄성에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를 짚어 내며, 「종교의 가면」은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인간의 허위와 자기기만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또한 「진부한 비평가에 관하여」에서는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퍼지는 피상적인 언어의 풍경을 해부하고, 「인도인 곡예사」에서는 인간의 능력과 표현의 한계를 성찰하며, 고통과 고독에 바치는 조용한 비가인 「병상의 풍경」에서는 몸과 마음이 무너질 때 찾아오는 고요한 통찰을 담아낸다.
그 당시 낭만주의 작가들이 화려한 언어를 선호했던 것과 달리 해즐릿은 직설적이면서도 격조 높은 문체를 구사했다. 해즐릿은 대화체적 어조로 개인적 성찰과 철학적 탐구를 엮어 내기도 하고, 문학적 장치를 단순한 장식이 아닌 논리를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하며, 일화와 논증과 분석을 조화롭게 결합하여 지적이면서도 감성적인 형식의 글을 완성했다. 이런 면에서 해즐릿의 영향은 조지 오웰과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같은 정치 에세이스트는 물론이고 버지니아 울프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해즐릿의 에세이는 독자에게 깊이 있는 사고를 요구하며, 인간 본성의 복잡성을 받아들이도록 이끈다.
해즐릿의 에세이는 지금 우리 삶을 정면으로 꿰뚫는 거울
인간 본성과 사회의 맥박을 누구보다 정확히 짚어낸 영어 수필의 거장
해즐릿의 글은 계몽주의의 이성과 낭만주의의 감성을 잇는 다리였으며, 그의 문장은 때로는 시처럼 아름답고, 때로는 철학처럼 날카롭다. 또한 감성적이면서도 냉철했고, 도덕을 중시하면서도 위선을 경계했으며, 고독한 사색가이면서도 사회의 맥박을 누구보다 정확히 짚어 냈다. 해즐릿의 글은 오래된 철학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을 정면으로 꿰뚫는 거울이다.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는 통념에 도전하고 위선을 폭로하며, 인간의 모순을 직시하여 단순화된 해석을 거부하는 해즐릿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준다. 이번 선집은 해즐릿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그의 매혹적인 목소리를 소개하는 입문서가 될 것이며, 이미 그를 알고 있는 독자에게는 해즐릿이 왜 여전히 필독 작가인지 상기시켜 줄 것이다.